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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이 100년 같다"

MB 백일상에 오른 '분노의 촛불'…"국민들 상대로 국어시험 치나"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백일상에 국민들은 기어이 분노의 촛불을 올렸다. 이틀 연속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도 3일 저녁 시청 앞 서울광장에 모인 국민들은 이 대통령이 밝힌 자괴감보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100일이 100년 같다"고 했다.

미국 수출업자들에 대한 '자율규제' 요청을 마치 쇠고기 재협상으로 가장한 이명박 정부의 '6.3 대책'은 분노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적어도 이날 촛불문화제에 모인 2만(주최측 추산, 경찰 1만) 촉의 촛불 민심에게 이 대통령은 우화 속 양치기 소년이었다.

"자율규제가 국민적 요구였나"

"고시철회, 협상무효"를 외쳤다.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했다. "이명박은 물러나라"는 구호엔 힘이 더욱 실렸다. 여권의 수뇌부가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나름의 '필살기'를 내놓았는데 왜 사람들은 촛불을 더 높이 들었을까?

자유발언대에 선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이 묻고 국민들이 답했다. "국민의 요구는 이번 협정을 전면 무효화하고 재협상하라는 것 아니었나. (맞습니다) 30개월 이상 쇠고기만, 그것도 협상문 한 자 안 바꾸고 자율규제 하는 것이 국민적 요구였나. (아니오) 이런 정부를 어떻게 해야 하나. 국민들이 심판하자. (와~)"

40대로 보이는 남성 시민이 바통을 이었다. "대통령이 국민을 흑싸리 껍데기로 안다. 뭐가 경제를 살린다는 건가. 앞으로 4년이 걱정이다. 침묵하는 기성세대가 일어나야 한다."
▲ 어청수 청장의 퇴진 구호가 담긴 플래카드를 선두에 내세워 행진 중인 시민들 ⓒ프레시안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인 듯한 여성 발언자는 "오늘 정운천 장관이 얘기한 재협상은 그야말로 흉내에 불과하다. 아무도 믿지 않고 아무도 속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차라리 이것은 재협상이 아니라 수출 중단을 구걸하는 굴욕청탁"이라며 "이번 과정을 통해 이명박 정권이 추진하려는 모든 정책이 얼마나 큰 음모가 있는지를 파악했다"고 했다.

연단 아래 일반 시민들도 생각은 마찬가지였다. 조리사 복장을 입고 나온 중식 조리사인 정 모 씨는 "요리하는 사람으로서 시장 논리 따르면 재료비가 싸겠지만 나는 그렇게 못하겠다"고 '값 싸고 질 좋은 쇠고기'를 운운한 이 대통령을 비웃었다.

그는 이날 발표된 정부 대책에 대해서도 "흉흉한 민심 무마용"이라며 "처음에는 쇠고기 문제 때문에 나왔지만 지금은 대운하와 민영화 등 다른 문제도 걱정이 돼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야구동호회인 'MLB 파크' 회원들과 함께 촛불집회에 참석한 전윤석 씨는 "정부 대책은 기만책이다. 관보 게재와 고시 연기에 이은 오늘 정부의 발표는 고비고비마다 시간을 끌면서 촛불이 꺼지기를 두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청 찍고 청와대로

이렇게 간단한 예열만으로 달아오른 서울광장의 촛불은 저녁 8시 40분부터 일렁이기 시작했다. 사전행사를 마치고 거리 행진이 시작된 것. 마침 내리던 비는 감쪽같이 멎었다. 경찰은 광화문 세종로 이순신 장군 동상 쪽으로 '닭장차 바리케이드'를 쳤으나 행선지는 청와대가 아니었다. 서울지방경찰청이 있는 서대문 사거리가 첫 번째 항로.

선두의 플래카드는 "폭력진압 어청수는 물러나라"였다. 뒤를 따르는 인파들의 구호도 이렇게 바뀌었다. "연행자를 석방하라", "폭력경찰 구속하라", "어청수를 처벌하라"…. 어느새 3만여 명으로 불어난 인파는 서대문 로터리를 가득 메웠다.

경찰버스가 이중 삼중으로 벽을 친 경찰청 앞에서 국민들은 "어청수 나와라", "어청수를 구속하라"고 목청을 돋웠다.

올해 72세 된 서경순 할머니는 "멀쩡한 애들이 다 맞고 있는데 어떻게 집에 있느냐"며 "내가 죽더라도 미쳐서 죽기는 싫다. 그래서 나왔다"고 울분을 토했다. 서 노인은 "김영삼 시절부터 경제, 경제 하는 사람 치고 경제 살리는 것 못 봤다"고 이 대통령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 서울 서대문 경찰청 앞에 운집한 3만여 시민들 ⓒ프레시안

7살, 6살 난 아이들을 데리고 집회에 참석한 부부도 있었다. 엄마 이혜정 씨는 "시위는 평화적인데 진압이 폭력적이어서 애들 데리고 나오기를 망설이다가 오늘 용기를 내봤다"며 경찰의 강경 진압을 비판했다. 아빠 김 모 씨는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을 상대로 국어시험을 보는 것 같다. 논리적 오류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맞히라고 하는 것 같다"고 이날 정부가 내놓은 대책을 비판했다.

아직까지 경찰의 이렇다 할 대응은 없는 상황. 이들 가족은 가슴 속 분노와 함께 평화 시위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듯 간간이 웃음 띤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아이들도 그저 "재밌다"고 했다.

청계광장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별도의 촛불집회를 가진 뒤 결합한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은 "어린 소녀들이 공권력을 무서워하지 않고 경찰이 물대포를 쏴도 흐트러짐이 없다"며 "민주노총이 더 이상 뒤에 있지는 않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이 위원장은 "경찰은 더 이상 소년과 소녀들을 때리지 말라. 차라리 우리를 밟고 지나가라"고 했다.

이렇게 경찰청 앞에서 시민들은 1시간 가량의 규탄시위를 마친 뒤 9시 40분 께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청와대다.
▲ ⓒ프레시안

▲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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