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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같은 시간…경찰이 그럴 줄 정말 몰랐어요"

[인터뷰] 15시간 경찰에 구금됐던 고3 '촛불소녀'

"정말 지금 말이 아닌 거 같아요."

지난 27일 오후 5시, 전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한혜진(18·가명) 학생의 목소리에는 기운이 없었다. 경찰에 연행돼 15시간 동안 구금돼 있다 풀려난 직후였다.

"설마 고등학생까지 잡아갈까 생각했죠"

지난 26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가 스무 번째로 열리고 있었다. 평소 인터넷으로 미국산 쇠고기 소식을 접하던 혜진 학생은 이날도 뒤늦게 집회 장소로 나갔다. 벌써 다섯 번째였다.

이날은 다른 촛불 집회와 달랐다. 이미 24일과 25일 거리 행진에서 68명이 경찰에 연행된 터였다. 이날도 경찰은 촛불 집회를 '불법'으로 간주해 참가자를 연행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래도 한 학생은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이 날도 좀 위험할 수 있겠다 생각은 했어요. 그래도 '고등학생이니까, 설마 잡아가기야 하겠나'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그건 그만의 생각이었다. 오후 9시 30분경, 행사가 끝난 뒤 또 다시 거리 행진이 시작됐다. 혜진 학생도 종로와 광화문 일대에서 산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시위 행렬을 찾아 손수 만들어 가져왔던 피켓을 들고 돌아다녔다.

그 와중에 혜진 학생은 거리에 세워져있던 경찰 차량 한 대를 발견했다. 시위 현장에서 해산 명령 등을 방송하는 경찰의 방송차였다. 그러나 집회 경험이 없던 혜진 학생은 그 차를 보자마자 경찰이 거리 행진 참가자에 물대포를 쏘아 진압했다는 기사를 떠올렸다. 혜진 학생은 이 차를 살수차로 오해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 그는 차에 올라탔다.

"그때 경찰이 다가오는 거에요. 그래서 엉겁결에 가져왔던 물총을 막 쐈어요. '평화시위 보장하고 독재정권 타도하자'고도 외쳤어요. 경찰이 저보고 막 차에서 내려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살수차를 빼면 내려오겠다'고 했죠. 그랬더니 여경들이 저를 둘러싸기 시작하더니 잡아서 경찰차로 끌고 갔어요."

"배후 없다 말해도 믿지 않았어요"
▲촛불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행진을 이어가는 27일 저녁 서울 명동입구에서 한 참가자가 연행되고 있다. ⓒ뉴시스

혜진 학생이 연행된 시각은 11시 20분 무렵. 거리 행진에 대기 중이었던 경찰차 속에서 그는 2~3시간 가량을 보내야 했다. 속속 거리 행진 도중 연행된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27일 새벽 2시께 서대문경찰서로 송치됐다. 그때부터 새벽 5시까지 그는 잠도 자지 못한 채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그에게 질문지를 건네줬다. '어떻게 참가하게 됐나', '들고 있던 피켓은 누가 준 건가', '누가 시켰나', '배후가 누구인가' 등의 질문이 적혀 있었다. 혜진 학생은 질문에 솔직히 답했다.

"'피켓은 내가 썼고, 시킨 사람 없다. 네이버에서 보고 혼자 찾아온 거다'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경찰이 '혼자 한다는 게 말이 되냐'며 제 말을 믿질 않았어요."

같은 질문은 조사를 받는 3시간 동안 반복됐다. 새벽 3시께, 연락을 받고 아버지가 찾아왔다.

"조사가 끝나고 새벽 5시에 유치장으로 들어가라고 하더라고요. 그 때가 진짜 무서웠어요. 학교 가야 된다고 말했더니 옆에 있던 경찰이 '학교 못 갈 것 같다'고 말했어요."

"그 15시간은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혜진 학생은 경찰이 조서를 끝낸 오후 2시가 되어서야 풀려났다. 그는 당장 다음 날부터 학교에 나가면 어떤 상황이 될지 알 수 없다고 했다.

"학교에서 가정통신문을 나눠줬었거든요. '휴교 문자 같은게 오는데 애들이 동요된다며 촛불 집회 나가지 못하게 집에서 지도하라'고요. 내일 학교에서 아버지랑 같이 오라고 그랬는데, 학교에서 뭐라고 할 지 아직 모르겠어요."

혜진 학생은 아직 이번 사건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얼떨떨하다고 했다. 계속 촛불 집회에 나갈 거냐는 질문에 그는 "아니다"라고 했다.

"부모님이 이제 촛불 집회는 나가지 말래요. 그래서 혼자 집에서 마음으로 참여하려고요. 경찰에 연행돼서 유치장에 있었던 15시간은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큰 상처가 됐고, 안 좋은 기억으로 남을 거예요. 다른 친구들은 이런 경험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경찰이 이럴 줄은 정말 몰랐어요."

혜진 학생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경찰이 정말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어요."

차도 아닌 인도에서, 고등학생까지 마구잡이 연행

24일부터 27일까지 계속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거리 행진에서 연행된 시민이 200여 명에 달했다. 정부는 앞으로도 거리 행진 참가자들을 모두 연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경찰의 방침이 시민들의 반발을 불러오면서 논란을 더 키우고 있다.

전국 170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는 28일 서울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27~28일 이뤄진 '대규모 연행'에 항의하는 기자 회견을 열었다. 이날 경찰은 거리 행진을 마치고 청계광장에서 마무리 집회를 위해 이동하던 100여 명을 전원 연행했다.

시민·사회단체는 28일 "시위대가 청계 광장으로 가서 해산 집회를 하겠다며 인도를 통해서 가겠다고 요청했지만 경찰은 이를 묵살하고 도리어 서울광장에서 연행했다"고 비난했다.

이들은 "해산하겠다고 밝힌 시민들을 도로도 아닌 인도에서 불법 연행한 것은 지난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도 보기 어려운 일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심지어 경찰은 주변 시민들이 나서서 '미성년자 석방하라'고 외쳤지만 끝내 고등학생 2명을 연행하는 폭거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 역사는 탄압이 거세질수록 국민들은 더욱 거세게 저항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경찰은 어리석은 선택을 한 것"이라며 "잘못된 쇠고기 협상에 대한 진심어린 사죄와 재협상에 나서는 것만이 시민들의 거리행진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경찰은 지금 당장 연행자를 석방하고, 지난 며칠간의 불법 연행 과정에 대해 사과해야 할 것"이라며 "어청수 경찰청장은 이 모든 사태를 진두지휘한 책임을 지고, 지금 당장 사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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