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이 모일 때면 자주 나누는 말이 있다. "5·6공 시대로 돌아간 것 같다." 이때 사람들의 기억을 이어주는 한 가지 고리가 있다. 바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이른바 '집시법'이다.
이 집시법은 5·16 쿠데타가 일어난 직후인 1962년에 만들어져, 현재까지 정부가 집회를 손쉽게 '불법'으로 몰아세우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해가 진 뒤 야외에서 집회를 하면 불법'이라는 규정은 요즘 계속되는 촛불 집회, 거리 행진에 여지없이 '불법'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독재 정권 시절, 국민의 저항과 반발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던 법이 민주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대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MB 정부의 천박한 민주주의관
정부 규제를 '전봇대'에 비유하며 뽑아버리자던 이명박 대통령이었지만, 당선 이후 지난 몇 달 동안 집회와 관련돼 새로 발표된 규제는 이미 '수십 개'에 이른다. 이 대통령의 신년사는 그 신호탄이었다. 이 대통령은 "편법과 불법은 이제 더 이상 시도하지도 말고, 용인하지도 말자"며 "'떼법'이니 '정서법'이니 하는 말도 우리 사전에서 지워버리자"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 당선자가 이런 말을 하자마자 지난 1월 14일, 경찰은 "경찰 저지선(폴리스라인)을 넘는 시위자를 전원 연행하고 집회·시위 도중 '폭력을 휘두르는 자'에게 전기충격기, 최루액, 물 대포를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하루 뒤에는 행정안전부가 "오는 9월부터 전경 대신 경찰관으로 구성된 체포 전담조를 신설해 배치하고, 시위현장의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가압류), 즉결 심판(구류) 등 예외 없는 사법 처리를 가하겠다"고 이 당선자에게 보고했다.
이어 지난 3월 경찰은 "집회나 시위 참가자의 복면 착용을 금지하고, 쇠파이프·죽창 등을 소지한 것만으로도 형사 처벌을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김경한 법무장관이 대통령 업무 보고에서 "시위대 검거에서 경찰에 과감한 면책을 보장하고, 법질서 파괴 행위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관철하겠다"며 경찰의 공권력 강화 조치를 밝힌 뒤였다.
법무부와 경찰의 보고에 이 대통령은 "법과 질서를 지키면 GDP가 1% 성장한다", "집회·시위로 인한 손실이 연간 12조 원이다"라고 화답했다. 모든 걸 '경제 수치'로 환원하는 이 대통령다운 반응이었다. 그러나, 그가 하는 일이 늘 그렇듯이 이 반응에 인용된 수치는 검증 불가능한 엉터리 분석을 통해 나온 것이었다.
집회와 시위로 인한 손실액이라고 제시된 12조 원은 한 해 동안 열리는 모든 집회가 불법 집회라고 가정했을 때 나온 계산이었다. 더구나 한국개발연구원이 분석한 "1%"라는 수치는 선후관계가 검증되지 않은 사이비 명제였다. 더구나 이 대통령의 이 발언은 집회, 시위를 통한 시민의 의사 표현을 '손실'로 표현함으로써, 이 대통령 스스로 천박하고 무지한 민주주의관을 드러냈다.
집시법과 집회의 자유, 웃지 못할 숨바꼭질
사실 집시법의 위헌성은 그간 수차례 제기돼 왔다. 헌법 21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며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또 같은 조 제2항은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엄밀히 따지면 언론·출판의 자유가 미디어나 경제 권력을 가진 자에게 가능한 자유인 데 비해 집회·결사의 자유는 모든 이가 누릴 수 있는 자유이기 때문에 사회정의 실현에서 더 보호받아야 하는 기본권이다.
그러나 이 '기본권'은 현장에서 번번히 짓뭉개졌다. 크게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평택 미군기지 반대 집회부터 사회 곳곳에서 크고 작게 계속되는 노동자들의 농성까지…. 현실에서 경찰의 원칙은 간단했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와 시위, 기업의 이익에 어긋나는 노동자들의 집회와 시위는 경찰이 막아야할 대상이었다.
집시법은 이런 경찰의 방패가 되어주었다.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기는커녕 제한하려는 의도가 뻔한 이 법을 경찰은 곳곳에서 진압의 근거로 들이댔다. 2006~2007년, 경찰은 한미 FTA 반대 집회가 불법 집회로 '변질'됐다는 이유로 집시법에 근거해(집시법 8조) 이를 '원천 불허'했다. 2007년에는 매년 같은 길을 따라 행진을 해왔던 이라크 파병 반대 집회의 동선이 '주요 도로'라는 이유로 역시 집시법을 들어(12조) '불허'했다.
원칙적으로 집시법은 신고제를 보장하고 허가제를 금지하고 있지만 경찰은 이를 사실상 무시하고 있다. 집회는 경찰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허가 또는 불허됐으며, 이에 따라 집회 역시 불법도 되고 합법도 됐다.
이처럼 우스꽝스러운 집시법 때문에 차마 웃지 못할 기발한 아이디어가 속속 등장했다. 2명 이상 모여 같은 의견을 주장하면 '집회'로 규정하는 집시법을 피하기 위해 '1인 시위'가 등장했다. 공공기관, 외교기관 100m 내에서 집회를 금지하는 집시법 조항에 따라 이런 곳 근처에서는 '기자 회견' 형식이 널리 쓰이고 있다.
연일 열리는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 집회를 '촛불 문화제'라 부르는 이유도 야간 옥외 '집회'를 금지하는 집시법 때문이다. 이로 인해 경찰은 촛불 집회를 '허가'하면서도 피켓, 연설, 구호 등을 금지하는 조건을 붙였다.
일선 경찰도 집시법 자체를 100% 집행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일례로 집시법 시행령은 확성기의 소음 기준은 주간 65 데시벨(dB) 이하로 규정해놓고 있다. 그러나 집회가 주로 열리는 도심에서는 차량 소음만으로도 이 수치를 넘나든다. 이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집시법의 현실을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에 불과하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 1월 "집시법의 적용과 해석이 자의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며 정부가 이 법을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 거리 행진, 집시법 논의 물꼬 틀까
이처럼 수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집시법을 놓고 이명박 정부는 '위헌성'에 대한 일말의 고민도 없이 오히려 이 법을 강화하겠다며 발벗고 나서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일성에 법 개정을 서두르는 정부와 경찰의 질주에는 좀처럼 브레이크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와 거리 행진을 계기로 집시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여론이 점차 커지고 있다. 애초 집시법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오던 인권·사회단체를 넘어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라는 당연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촛불 집회에 대한 정부의 사법처리 방침은 어쩌면 집시법에 대한 민심의 향방을 결정하는 하나의 결정적인 모멘텀으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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