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면 전환의 모멘텀은 역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였다. 대국민 담화의 진정성을 인정할 수 없다거나 쇠고기 안전성 문제와 관련한 구체적 대안제시 없이 FTA 비준안 처리만 밀어붙이려 했다는 비판이 대세를 이루고 있음에도 대통령이 직접 국민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송구스럽다'는 사과의 표현을 한 것에 대해서는 다들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치 예정된 수순을 밟는 듯 보일 수도 있는 장관고시 등 후속 조치들이 좀 더 여유 있고, 사려 깊게, 악화된 국민감정을 다독이고 추스르는 정치적 배려 속에서 조심스럽게 이루어진다면 여권은 한 달 가까이 빠져 있었던 쇠고기 수렁으로부터 마침내 탈출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통합민주당마저 17대 국회 마지막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해임결의안 부결이라는 헛발질로 장식해버리면서 여권을 도와주고 있지 않은가.
해임결의안의 부결로 팽팽했던 정국은 일거에 긴장의 끈을 놓아버렸다. 야권이 보여 온 결기는 돈키호테식 돌출행동으로 희화화 됐고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는 비판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정국전환의 모멘텀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정국의 초점은 과연 여권이 얼마나 부드럽게 국면 전환을 해나갈 것인가. 그리하여 집권초의 위기 상황을 얼마나 슬기롭게 잘 극복해 나갈 것인가 하는 데로 모아지게 되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듯 이명박 정부가 집권초의 위기 상황만 잘 극복하면 경제 살리기와 민생안정이라는 핵심 국정과제에서 의외로 효율성 높은 국정 운영을 보여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가 다시 모아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면전환은 대통령이 언명한 '소통의 정치'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집권 초 국정 혼선의 원인으로 '소통의 부재'를 꼽았으므로 그렇다는 것이다. '소통'은 '잘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대통령의 한마디가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으려면 먼저 백 마디 국민의 소리를 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대통령도 대통령실의 비서관들도 총리 이하 장관들과 한나라당 의원들도 모두 한마디 하기 전에 백 마디 국민의 소리를 제대로 잘 들어야 '소통의 정치'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잘 들으려면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고 마음을 열고 '역지사지'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추고,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눈높이와 감성을 갖추어야 한다. 기존의 프레임에 갇혀 자신의 눈높이에서 내려다보면서 쓸 말만 실용적으로 받아들이고 못 쓸 말은 기능적으로 걸러버리는, '머리로 듣는 방식'으로는 제대로 들을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이란 잘 관리하면 점차 수그러들 촛불문화제를 강제 진압함으로써 국면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긴장도를 높이는 식이다. 이런 사람들이 있는 한, '인적쇄신 없는 국정쇄신'은 가능하지 않다. 대통령도 이미 지적하지 않았던가. "고소영, 강부자 내각"으로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제대로 된 "소통"이 어렵지 않겠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 말이다.
국민을 제대로 설득하지도 못한 대국민 담화에 기대 국면전환을 밀어붙이고 있는 여권과 17대 국회 마지막을 해프닝으로 장식한 야권이 만들어내고 있는, 별로 심각하지도 처절하지도 않는 정략적 대립구도 속에서 '국정쇄신'이 '소통의 정치'라는 또 하나의 정치적 상징 속에서 형해화되고 있는 '정치 위기의 현장'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자꾸 주위를 둘러보게 되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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