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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아, 딸들아, 강해져라!"

[프레시안-여성재단 공동캠페인] 어린이, 자기 방어 '힘' 길러야

작년에 '다른 몸 프로젝트'(한국성폭력상담소)와 '10대의 몸 애니메이션 : 날아오르며'의 작업(서울시 늘푸른여성지원센터)에 열심히 참여했던 딸은 모순 덩어리의 세상과 협상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2006년까지만 해도 자신의 성경험 에피소드를 신문지면에 썼다고 한 시간이나 울었던 딸아이이다. 성교육을 하겠다고 자청하는 엄마의 '극성'을 부끄러워하던 딸은 최근에는 학교에서 배우는 성교육이 엉터리라고 엄마에게 성교육을 요청한다.

그러나 세상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지 모르는 딸들은 수학여행 가기 전에 성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선뜻 시간을 내주지 않는 선생님을 이해할 수 없다며, 자기들이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투덜대고 있다. 그러더니 도덕 시간 토론주제로 동성애를 이야기했다가 '우리나라의 정서를 생각해야지' 라는 선생님의 코멘트에 아무 말도 못했다는 사실에 억울해한다. 또 안락사나 사형제도는 우리의 정서에 맞아 토론할 만하고 동성애는 우리의 정서가 왜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지에 흥분한다. 결국 딸아이는 요즘 위험한 성폭력(대처와 예방)에 대한 토론을 하겠다고 했더니 '너는 왜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주제를 좋아하는지' 오히려 되물음을 당했다. 성교육을 수학 공부하듯이 하면 절대로 어려운 주제가 아니라는 딸아이의 주장은 '어른들은 이상해'라는 불만과 함께 어디론가 날아가 버릴 듯하다.
▲ 자신의 행위가 성폭력이 되는지도 모르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한 어른, 남성, 상사들이 가장 문제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성폭력은 분명히 어려운 주제이다. 아니 복잡한 주제이다. 그렇게 열과 성을 다해도 줄어들기는커녕 우리 전부를 위험과 공포 사회에 밀어 넣고 있으니 그 실체잡기가 더더욱 묘연하다. 여성은 밤길이 불안하고, 남자들이 무섭다. 남자들도 딸, 아내, 누이 등이 있기에 불안하다. 전자팔찌부터 신상공개, 거세까지 가해행위자를 처벌하자는 목소리는 높다. 그러나 가해 행위자를 어떻게 하겠다는 소리는 커도 피해자나 가해자를 만들 수 있는 이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성교육을 수학공부 하듯이, 0교시를 성교육으로 하겠다는 말도 없다.

성폭력행위자 처벌, 피해자 치유 등 사후 해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폭력이 일상화되고 있는 이 사회의 회로를 바꾸어내는 것이다. '그냥 아무 뜻도 없는데', '그냥 사소한 장난인데'라는 가해행위자의 말대로 성폭력 행위는 의도가 없다. 그냥 재미있어하는 장난일 수 있고, 분위기를 좋게 하는 예의일 수 있고, 상대방에 대한 서비스일 수 있다. 때로는 데이트나 관계를 좋게 하려는 과도한 친절이거나 성적욕망의 표현일 수 있다. 또는 말을 잘 듣게 하려는 그냥 위협일 수 있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별 의도가 없는 어떤 행위가 누구에게 폭력으로 해석되고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럼에도 그 사실을 모른다는 것, 즉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전혀 하지 않음과 자신의 위치를 전혀 성찰하지 않음이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폭력 근절과 예방은 일상에 대한 성찰부터 시작해야 한다. 타인과 관계 맺는 방식에 스며들어있는 권력의 작동과 타인에 대한 감수성 없음을 몸으로부터 느껴야 한다. 또 권력의 작동에 저항할 수 있는 새로운 몸과 내공을 키워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가지고 다니며 상대방의 눈을 공격해라. 이를 위해 평소에 연습해라' 라는 성폭력 예방교육 등은 여러 의미에서 시끄러울 수 있다(한겨레신문 2008년 5월 20일 등 보도). 오죽했으면 '성폭력당하는 것이 나아요? 죽는 것이 나아요? 아니면 죽이는 것이 나아요?' 라는 질문은 어떤 누구에게는 황당하지만 정말 10대들에게 중요한 질문일 수 있다. 분명히 자기방어(self defense)는 중요한 성폭력 예방교육이지만 이것이 어떻게 전달되고 토론될지에 따라 '폭력을 재생산할 수 있다'는 지점에서 위험할 수도 있다. '이에는 이, 코에는 코'라는 함무라비 법처럼 같은 정도의 폭력을 강조해서이기도 하고 초등 5학년이라는 어린 나이를 배려하지 않는 강사의 눈높이를 지적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성폭력 근절을 위해서는 가해행위자의 특성인 공격적인 남성성도 변화해야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약하고 여려야 한다고 간주되는 여성성의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어린이답게 어른을 공경하라는 예의가 있는 한, 여성답게 남성들/상사들에게 서비스하라는 여성성의 기대가 있는 한 어른들/남성들/상사들에게 그들은 자기주장과 표현을 할 수 없다. 자기주장과 표현을 할 수 없는 한, 평등한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며, 의사소통을 하지 않는 한 어른들과 남성들은 그 속을 알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성폭력을 만들어내는 일상 회로의 중요한 부분이다. 물론 자신의 행위가 성폭력이 되는지도 모르고 여느 때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한 어른, 남성, 상사들이 가장 문제이지만.
▲ 단순히 인형 찌르기 등의 연습보다 우리 사회가 여성/남성을 만들어내는 성별규범에 대한 감수성과 '여성적이지 않은' 새로운 몸만들기를 통해 성폭력 예방이 가능하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따라서 성폭력 근절을 위해 누구나 새겨야 할 것은 남성, 여성,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자신의 주장을 할 수 있는 약자들의 세력화와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지 않는 강자들의 지속적인 자기 성찰을 통한 일상의 변화이다. 이를 위해 여성, 어린이들의 새로운 몸만들기의 하나인 자기 방어교육, 감히 폭력적이라고도 간주될 수 있는 '공격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성폭력대처와 예방에 중요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때의 공격은 타인을 가해하는 난폭한 힘이라기보다 자신을 지키는 용감성과 그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새로운 힘의 행사이다. 이는 단순히 인형 찌르기 등의 연습보다 우리 사회가 여성/남성을 만들어내는 성별규범에 대한 감수성과 '여성적이지 않은' 새로운 몸만들기를 통해 가능하다. 또한 성적지향, 계급, 나이, 인종/국가, 학력 등의 차별을 만들어내는 이 사회의 정치학 등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토론과 실천을 통해 가능하다.

우리의 딸들은 어른들의 속삭임을 당연하게 배우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즐거운 미래를 위해 어른들과 당당히 맞서기 시작했다. 어린이다움, 학생다움, 여성다움에 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른들이 지난 과오를 조금이라도 반성하려고 한다면, 어른의 입장에서 딸들을 보지 말고 딸들의 입장에서 왜 그들이 그러한 생각과 행동을 했는지 관찰하고 격려하기를 촉구한다. 너무도 힘든 일이지만 10년 후 20년 후의 성폭력근절과 새로운 세상을 위해서 말이다. 나도 딸들의 지적 아래 하나씩 실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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