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 유학 가 계신 신부님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한 사십 명쯤 되는 중학생들과 자전거여행을 하다가 이상한 밤나무를 보았습니다. 아람이 벌어지는 모습이 너무나 탐스러워 한 입 깨물었다가 아주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 씁쓰레한 맛은 도토리의 아린 맛에 비교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이게 너도밤나무? 생긴 것은 진실로 밤일진대 맛이 그러하니 기만당한 감정을 야유로 돌려서 사람들이 붙여 준 이름이겠죠. 주제에 네가 밤나무냐? 하는 거지요."
신부님의 이 편지 구절은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너도밤나무, 너도밤나무' 하며 맴돌았습니다. 신부님은 돌아오는 길 내내 너도밤나무의 웃음소리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너도 사제?' '너도 사람?' 이런 소리와 함께.
신부님 말씀대로 '너도 사람이니?' '너 정말 좋은 사람이니?' 이렇게 저 지신에게 물어 보았다가 저는 아주 크게 부끄러웠습니다. 그런 사람의 모습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얼굴을 갖고 있고 그 얼굴에 어울리는 빛깔과 향기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빛깔과 향기를 느끼게 하는 그의 삶이 있고 사회적인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이름에 걸맞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 보아야 합니다.
생긴 것은 분명 밤나무처럼 생겼는데 쓰고 아려서 도저히 씹을 수 없는 너도밤나무처럼 우리도 생긴 모습과는 다르게 도저히 남들로부터 그런 이름에 걸맞은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지 않는지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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