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지켜본 풍경이다. 이날 오후 이 자리에서는 국민주권수호시민연대가 주최한 집회가 열렸다. 이 집회는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시작해 이곳까지 행진한 뒤 마무리됐다. 이어 같은 자리에서 저녁 7시께부터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가 마련한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고시 철회, 연행자 석방"
이날 저녁 촛불문화제는 여느 때와 비슷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청와대로 향하기 위해 세종로 일대에서 경찰과 대치했던 시민들은 촛불이 피어오르자 다시 광장으로 모였다. 하루 뒤인 오는 26일 혹은 27일 정부가 새로운 수입위생조건 고시를 강행할 예정이라고 알려져 있는 까닭에 시민들은 '고시 철회' 구호를 거듭 외쳤다.
이와 함께 빠지지 않았던 구호가 '연행자 석방'이었다. 이날 연단에서 발언을 한 이들은 "경찰은 오늘 새벽 강제로 연행한 사람들을 즉시 석방하라"는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밤까지 경찰은 이런 요구를 무시했다. 이날 새벽 연행한 37명 가운데 한 명만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라는 이유로 훈방했을 뿐이다.
"경찰 앞에서 긴장한 경험은 기성 세대로 족하다. 왜 아이들까지 경찰에게 떨어야 하나"
일곱 살 아들과 함께 청계광장을 찾은 직장인 김윤용 씨는 "인터넷에서 오늘 새벽 진압장면을 본 뒤, 치밀어 오르는 화를 누를 수 없었다. 전투경찰의 방패를 보며 긴장했던 경험은 우리 세대에서 끝내야 했다. 왜 아이들까지 경찰 앞에서 떨어야 하나"라고 말했다. 김 씨의 이야기를 받아 적다 고개를 들었을 때, 김 씨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이날 청계광장에서 만났던 이들은 오히려 기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나는 "연행자들이 어떻게 될 것 같으냐"라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오늘이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며칠째 되는 날이냐"라는 것이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기자 역시 대답할 말이 없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이 대통령이 올해 2월 25일 취임했으므로, 오늘이 91일째"라고 대답했다. 이런 대답을 접한 이들의 반응도 한결 같았다. "그것 밖에 안 됐나. 앞으로 남은 날들이 너무 길다"라는 것.
한 고등학생은 인터넷에서 '이명박 퇴임 시계'가 유행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가고, 연애도 하고 싶은데 '이명박 퇴임 시계'만 보면 우울해진다. 언제까지 촛불을 들어야 하나"라고 말했다.
"될 때까지 싸우자"
촛불문화제에 다섯 번째 참석했다는 대학생 이정민 씨는 "질긴 놈이 이긴다"라고 말했다. 이 씨는 "벌써 지치면 안 된다. 정부가 국민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게 하려면, 더 끈질기게 집회를 이어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참가자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아직 100일도 안 됐다는 말이냐"라며 긴 한숨을 내쉬자 한 이야기다.
실제로 이날 문화제에서는 "될 때까지 싸우자"라는 구호가 자주 울려퍼졌다. 문화제 참가자들에게 "될 때까지"라는 말의 앞에 어떤 내용이 놓이기를 바라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다양했다. "장관 고시가 철회되는 것", "쇠고기 협상이 무효화되는 것"이라고 답한 이들 못지않게 "이명박 대통령이 물러나는 것", "대운하 건설 계획이 백지화되는 것", "조·중·동이 폐간되는 것"이라고 말한 이들도 많았다.
서울시내 곳곳에서 시위 이어져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단지 광우병 위험 쇠고기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 촛불문화제로 대표되는 시민들의 저항이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으리라는 점을 예상하게끔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날 촛불문화제는 저녁 9시 30분께 끝났다. 참가자 가운데 일부는 문화제가 끝난 뒤에도 서울 시내 곳곳에서 거리집회를 이어갔다. 시민들이 서울 을지로 일대에서 "독재타도", "고시철회, 협상무효" 등을 외치며 행진하자, 경찰이 이를 가로막았다. 이 과정에서 시민과 경찰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참가자 가운데 일부는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까지 가두행진을 해 연행된 시민들의 석방을 촉구했다. 이후 이들은 신촌 로터리로 향했다. 26일 0시 40분께, 경찰은 신촌 지역에 경찰을 긴급 투입해 시민들을 강제로 연행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휘두른 방패에 맞는 등 부상자가 속출했다.
이날 서울 도심 곳곳에서 연행된 시민은 31명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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