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도 반대하는데 우리가 왜"
한국이 먼저 한미 FTA 비준을 처리함으로써 미국 의회를 압박해야 한다는 정부와 여당의 논리가 오바마 발언에 직격탄을 맞았다.
민주당이 미국 상하원 모두에서 다수를 점하고 있는 데다, 차기 미국 대통령에 가장 근접해 있는 오바마 상원의원이 부시 대통령의 한미 FTA 비준안 처리 요청을 정면으로 반대하면서 한국의 '액션'에 상관없이 미국 의회의 비준안 처리는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게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이와 상관없이 17대 국회의 임기가 종료되는 29일까지 나흘간의 임시국회를 열어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하자고 요구하고 있으나, 야당이 일제히 반대하고 있고 '오바마발(發) FTA 쇼크'까지 겹쳐 성사 가능성은 희박하다.
통합민주당은 오바마 발언과 관련해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을 통해 쇠고기를 개방하면 미 의회에서 금방이라도 FTA 비준동의를 해 줄 걸로 믿고 쇠고기 재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우리 정부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증명됐다"고 공격했다. 차영 대변인은 "한국 정부가 김칫국만 마시고 쇠고기를 완전 개방해 국민 건강권을 포기한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민주당은 '선(先)쇠고기 재협상-후(後)한미FTA 논의' 주장을 부각시키며 "국민의 80% 이상이 요구하는 쇠고기 재협상을 하고 한미 FTA 비준 이후 예상되는 피해산업에 관한 대책을 전략적으로 수립한 후 비준동의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18대 국회로 한미 FTA 문제가 이월되더라도 조기에 이를 처리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당권 도전 의사를 밝힌 정세균 의원도 25일 "미국의 유력한 대선후보가 한미 FTA를 반대한다고 공개적으로 이야기 한 것은 한미 FTA 지연이 한국 책임이 아니라 미국의 책임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라며 "미국과 관계없이 무조건 FTA를 비준하자고 하는 것은 국제적 관행이나 한국의 위상 등 여러 측면에서 온당치 못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선 미국 대선과 의회의 상황을 보면서 우리가 신축적으로 한미 FTA에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 박승흡 대변인도 "미국 정치권 변화에 따라 재협상을 요구해 올 가능성이 충분한데 우리가 냉큼 비준해버리면 재협상이 실제로 이뤄질 때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가세했다.
국내 여론과 미국 대선 향배가 관건
여론의 변화도 주목해 봐야 할 대목. 쇠고기 협상 파문의 여파는 한미 FTA 조기비준에 대한 여론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한국사회연론연구소(KSOI)가 지난 21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쇠고기 재협상이 없는 한 한미 FTA 비준을 추진해선 안 된다'는 응답이 59.8%에 달했다.
이는 한미 FTA 비준 문제가 한나라당이 과반인 18대 국회로 이월되더라도 연내 비준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나라당은 내부적으로 6월20일까지 원구성 협상을 매듭짓고 6월 말 한미 FTA 비준을 처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는 희망사항에 그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명박 정부가 쇠고기 협상과 한미 FTA 문제를 분리해 내는 데 실패한 이상, 쇠고기 재협상이 전제되지 않은 한미 FTA 밀어붙이기는 야당의 반발은 물론이고 또 다시 여론의 저항에 맞서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또한 6월 처리가 불발될 경우 정치권은 각 당의 전당대회가 예정된 7월, 베이징 올림픽 등의 굵직한 국제행사가 예정된 8월 '정치 방학기'로 접어든다는 점에서 이 시기에 정부여당이 한미 FTA 무리수를 두기 쉽지 않다.
또한 9월부터 미국 의회가 휴회에 들어가고 곧바로 11월 미국 대선 정국으로 빠져들 것으로 보여 한미 FTA는 추진 동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미국 대선이 오바마 상원의원의 승리로 끝날 경우 한미 FTA를 위해 쇠고기 협상을 서둘렀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이명박 정부는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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