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원리'에 대한 해석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2세기 경 한자학을 창시한 한나라 허신의 '육서이론'이다. 한자가 상형, 지사, 회의, 형성, 가차, 전주라는 여섯 가지 방법으로 만들어졌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2000년 간 유지돼 왔던 이 이론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주장이 제시됐다. 바로 한자는 '소리'로 만든 글자라는 것.
오랫동안 한자를 다루는 일에 몰두해온 이재황 고전 문화 연구가가 한자의 기원을 새롭게 해석한 책 <한자의 재발견>(뉴런 펴냄)을 펴냈다. 저자는 그간 <프레시안>에 '이재황의 한자 이야기'를 통해 이 책의 내용 일부를 소개해 왔다.
서점에 가면 한자 교양서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한자를 만든 원리를 설명한 책은 독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책이다.
저자는 "그런데 스테디셀러급에 속한다는 한자 학습서에 나오는 한자 자원(字源)설은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저자들만의 자의적인 추측이거나, 갑골문 발견 이후 나온 근대의 학문적 성과를 거의 반영하지 않은 한물 간 옛날식 설명이 많았다"고 지적한다. 그는 "당연히 같은 글자에 대해서도 책마다 전혀 다른 설명을 하고 있고, 그건 글자의 유래라기보다는 저자 나름의 암기법이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난해하거나 비논리적인 설명 대신 저자가 택한 방법은 '일반적 상식'이다. 그는 한자가 만들어질 당시 '육서'라는 원칙이 미리 정해져 있고, 그에 따라 글자를 만든게 아니었으며, 고도의 지적 작업도 아니었다는 점을 주목했다. 처음에는 주변 사물을 그렸고(상형), 발음이 같은 글자를 빌려 쓰다가(가차), 이미 만들어진 글자를 합치기 시작했는데 이때 복잡하게 여러 가지 개념을 조합해 만들기(회의)보다는 단순한게 발음을 나타내는 글자 하나와 의미를 나타내는 글자 하나를 합쳤을 것(형성)이라는 주장이다.
저자는 한자의 유래를 입증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증거는 각 글자에 매여 있는 발음이라고 지적했다. '의미+발음'의 구조를 가지는 한자의 발음과 옛 글자꼴을 맞춰보는 일이야 말로 한자 해석의 공백을 채워줄 열쇠라는 것이다. 그는 책에서 600여 자의 한자에 대해 이 같은 방식으로 그 기원을 집중적으로 추적했다.
마치 전공자가 아니면 감히 이론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기 힘든 것은 한자학 뿐만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한자학은 중국과 대만 학계의 전유물이다시피 해 왔고, 우리 학계는 대체로 이론을 수입하는 데 익숙했다.
저자의 주장은 이처럼 '엄숙'한 분위기가 아니라 '일반 상식'의 수준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고 써온 한자를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즉, 한국 한자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도인 셈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