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온라인 모임인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국민 탄핵 촛불문화제'에는 2000여 명이 참석했다. 이야기는 이미 미국산 쇠고기나 광우병 불안의 수준을 넘어서 있었다. 그들은 "이제 대통령을 정말 못 믿겠다"고 입을 모았다.
"전문가만큼 아는 국민을 속이려고?"
"국민들도 이제 쇠고기, 국제 무역에 대해 웬만한 건 전문가만큼 안다. 사료금지조치, SRM 이런 걸 이명박 정부 아니면 어떻게 알았겠나. 그런데 그런 똑똑한 국민을 슬쩍 속이고 덮고 넘어가려 하다니… 말이 안 되지 않나."
이새민(가명·30) 씨는 "하도 답답해서 이전부터 몇 번 나왔다"며 "어제 발표로 달라진 건 없다"고 잘라 말했다. 황사섞인 바람 때문에 들고 있던 촛불은 자꾸 꺼졌다. 그는 "평일이고, 날씨도 좋지 않은데 이 많은 사람이 모였다는 건 나만큼 그저 집으로 돌아가기엔 뭔가 답답해서가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윤종진(35) 씨의 말은 그 '답답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짐작케 했다. 그는 "(이제 정부를) 못 믿겠다"며 "오후에 이런 말을 해놓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면 딴 소리를 하고 있는데, 정부는 신뢰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을 섬긴다면서 머슴을 자처했던 대통령이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며 "정말 끌어내리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정부"라고 말했다.
김경호(33) 씨는 "친구가 교육, 먹을거리 문제 때문에 호주나 뉴질랜드로 이민을 갈 준비를 하고 있다"이라며 "대선 때 'oo가 되면 이민 갈거야'라고 했던 농담이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거리로, 거리로…정부가 부추긴 선동, 아이들이 이끈 셈"
시간이 갈수록 참가자의 연령대는 다양해졌다. 지난 2일 첫 집회에서 대거 참여했던 중·고등학생들은 평일에 열리는 집회에서는 좀처럼 눈에 띠지 않았다. 대신 먼 발치에서 촛불을 들고 발언에 귀기울이는 중·장년층 참가자를 쉽게 볼 수 있었다.
박상원(49) 씨는 "조중동에서 어른들이 애들을 선동했다고 하는데, 사실 애들이 우리를 선동한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 (이명박 대통령이) 잘 하길 기대했다"며 "그런데 기다릴 틈을 안 준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쇠고기는 여러 일 중에 하나밖에 되지 않는다"며 "이 작은 것 하나 처리를 못하고, 국민을 속이는 걸 보면 괴롭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고향이 같다는 김헌민(44) 씨는 '탄핵'을 바라는 건 아니라면서 운을 뗐다. 그는 "지난 대선 때 이 대통령 선거운동을 했다. 당선 됐으면 잘해줬으면 좋겠다. 성공하는 대통령이 됐으면 한다. 그러나 행동이 잘못됐으면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하지 않나. 우리는 힘을 실어줘야 하는데 벌써 지지율이 22%로 하락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은 현대건설 출신이다. 나는 박정희 대통령을 나쁘게 보지 않는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밀어붙이면 되는 나라가 아니다. 남의 말, 국민의 말에 귀기울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유발언, 침묵시위가 반복되며 이어진 이날 문화제는 자정에 가까운 시간까지 계속됐다. 한편, 시민단체가 아닌 온라인 모임에서 주최한 이날 집회에서는 민중가요가 여러 차례 울려 퍼졌다. 사회자는 "우리가 이렇게 민중가요를 부르게 될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나"라며 "평범한 우리에게 촛불을 들고, 다시 거리로 나오게 만드는 건 다름아닌 정부"라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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