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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뺀질이!"

석원정의 '우리 안의 아시아' <60> 이주노동자들의 한국어 버릇, 한국인에 달렸다.

아주 넉살 좋은 네팔청년이 있었다. 그는 한국여성과 결혼하여 예쁜 딸도 생겼고 한국 땅에 정착하여 아주 열심히 일하면서 살고 있다. 그는 내가 한국의 다른 이주노동자에게서 발견하지 못한 뛰어난 재능을 몇 가지 가지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입담이다(물론 한국어다). 입담만 뛰어난 게 아니라 눈치 100단에 순발력 또한 뛰어나서, 그의 입담이 넉살과 순발력과 함께 어우러질 때면 나는 언제나 웃거나 감탄하기에 바빴었다. 그의 그런 재능은 주변인들이 자신에게 호의를 갖도록 하는데, 그런 그도 한국에 온 지 오래되지 않았을 때에는 한국인들에게서 많은 상처를 받았었다고 한다. 그 중의 하나.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그가 다니던 공장에는 유난히 그를 얄미워하던 중간관리자가 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는 그를 '뺀질이'라고 불렀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던 때였던 터라 그는 그게 무슨 뜻인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중간관리자는 '좋은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나 말을 모른다 해도 눈치가 어디 가랴! 그는 그걸 그대로 믿을 수 없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그는, 어느 날, 외부에서 일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온 사장님을 향해 소리쳤다.

"사장님, 뺀질이!"

그의 말에 의하면 그 회사 사장님은 좋은 분이었다는 데 정말 좋은 분이었던 것 같다. 사장님은 그에게 화를 내는 대신 한국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그에게 그런 말을 가르쳐준 직원이 누군지를 알아보았고 상황을 모두 파악했다. 당연히 중간관리자는 혼찌검이 났다고 한다.

또 다른 네팔노동자는 자신이 들었던 한국어 욕설을 잘 기억해두었다가 그 말을 했던 한국인에게 똑같이 뱉어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 한국인은 자신이 늘 내뱉던 말인데도 그 말을 듣고 펄펄 뛰었다고 한다.

자주는 아니지만 예의 바르게 한국어를 배운 이주노동자를 만날 때가 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파키스탄인 알리 씨가 그랬다. 임금체납 때문에 우리 단체를 찾아왔던 알리 씨의 한국어는 유창하지는 않았지만 정확했다. 자연히 누구에게서 한국어를 배웠는지 궁금해져서 물어보았더니 먼저 다니던 회사의 사모님이 가르쳐주었다는 것이다. 얘기를 들어보니 그 사모님은 알리 씨가 일상생활 중에 한국어를 자연히 습득하게 둔 것이 아니라 정성을 들여서 한국어를 가르친 것 같았다. 예를 들면, 물건을 가져오라고 지시할 때, "저쪽에 있는 무엇무엇 가져다주세요."라고 또박또박 말하고 그것을 두세 번 반복함으로써 알리 씨가 정확하게 습득하게 했다는 것이다.

지원단체가 이주노동자의 한국어 구사능력에 따라 이들을 차별하지는 않는다. 몇 년 상담하다 보면, 아무리 안타까운 사연이고 호감이 가는 사람이라 해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고, 아무리 기분 상하게 한 사람이라 해도 가장 적절한 해결방법을 찾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 지원단체의 활동가들이다. 그렇지만 예의 바른 한국어를 구사하는 이주노동자들과 얘기할 때면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상대에 대해 우호적이 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많은 이주노동자와 한국어로 얘기해본 경험에 의하면, 초기에 한국어를 어떻게 배웠느냐에 따라서 이후 한국어 실력과 버릇이 좌우되는 것 같다. 즉, 일상한국어를 아무리 유창하게 한다 해도 존대어를 전혀 모르기도 하고, 서툴게 한국어를 말하기는 하지만 예의 바른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면 이주노동자들이 예의 바른 한국어이든, 거친 한국어이든, 한국어를 누구에게서, 어떤 상황에서 배웠겠는가.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이주노동자라 하더라도 상대방이 자신을 존중하는지 욕설을 퍼붓고 있는지는 금방 알아챈다. 그리고 금방 배워간다. 욕설을 자주 퍼붓는 사업장이라면 욕설이 아닌 말을 할 때 어떤 말을 사용할지 쉽게 짐작이 간다. 이주노동자들은 이렇게 한국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생활한국어를 하나씩하나씩 그대로 배워간다.

이주노동자들의 한국어 습득과정이 이러니 우리를 불쾌하게 하는 한국어를 구사하는 이주노동자를 만나면 당사자가 아니라 그에게 그런 한국어를 가르치고 사용하게끔 한 어떤 한국인을 탓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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