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 '로드킬'을 다룬 다큐멘터리 <어느 날 그 길에서>가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변변한 광고 하나 없이 입소문만으로 사람을 극장으로 이끈 이 영화는, 관객의 요청의 최근 연장 상영을 이끌어냈다. 이 영화를 만든 황윤 감독의 또 다른 다큐멘터리 <작별>도 극장에 같이 걸린다. <프레시안>은 생명의 가치가 헐값이 된 시대에, 생명의 가치를 되묻는 이 영화를 응원하는 릴레이 기고를 싣는다. 소설가 김곰치 씨가 <어느 날 그 길에서>를 보고 글을 보내왔다. 그는 "<어느 날 그 길에서>를 보는 것이, 한 개인의 인생에서 중요한 경험이 될 수도 있겠다"며 관람을 권유했다. <편집자> ☞첫 번째 글 :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죽어간다" ☞두 번째 글 : "그들이 본 세상은 얼마나 추악한지요" ☞세 번째 글 :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 ☞네 번째 글 :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
오래 전에 한 지인이 '도로장(葬)'에 대해 말해주었다. "자동차가 고양이나 개를 치잖아. 그 주검을 다른 차들이 밟고 가거든. 밟고 또 밟고 또 밟다 보면, 쥐포처럼 납작하게 되고 햇볕에 말라 가루가 된다고. 바람이 불고 가루가 날리면, 흔적도 없어지지."
황윤 감독의 <어느 날 그 길에서>는, 최태영, 최동기, 최천권 씨 등이 88고속도로, 산업도로, 섬진강 강변도로에서 벌어지는 '로드킬(야생동물 교통 사고)'을 조사하는 모습을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그들이 2년 반 동안 살핀 도로는 지리산을 둘러싸고 있었다.
최태영 씨는 "1년 반 동안 지리산 주변 120㎞의 도로에서 4000건 정도의 로드 킬을 확인했다"고 말한다. 수년 전 내가 우연히 본 한국도로공사의 한 자료에는, 전국 도로에서 5년 동안 5~6000건의 로드킬이 발생했다고 되어 있었다. 엄청난 차이다. 영화의 말미에 그들은 생태적으로 우수한 공간인 지리산을 떠나 전국의 자동차도로를 달려본다. 결론은 '고속도로에서만 해마다 수만 내지 수십만 건의 로드킬이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끔찍한 참상을 보여주겠다는 식의 단순한 감정선을 가진 영화는 아니다. 끔찍함만을 목표로 했다면, 미성년자 관람불가가 되었을지 모르겠다. 로드킬 순간을 제대로 포착한 영상도 있었을 테지만, 영화에서는 제시되지 않는다. 이런 장면은 있다. 거북이 종류가 도로를 건너는데, 화물차량이 지나간다. 잠깐 거북은 보이지 않는다. 바퀴에 밟혀 터진 모습으로 나타날까?
중앙 차선 근처에서 거북은 머리와 다리를 껍질 속에 밀어 넣고 있었다. 사람도 차량이 돌진해온다면 팔로 얼굴을 가리는 동작을 취하게 되듯이 거북도 그러고 있는 것이다. 팔이 차량을 막아낼 수 없듯이 껍질 속에 보드라운 머리와 다리를 숨겼다고 합당한 조치라 할 수 있겠는가. 차가 지나간 뒤 머리와 다리를 밖으로 내지 못하고 한참 망설이는 것을 보노라면, 간이 콩알만해졌을 녀석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연민을 느끼게 된다.
또 다른 압권은 뱀인데, 세상에 땅꾼들 빼고 뱀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 나오는 뱀 다큐멘터리의 나레이터가 친근감 있는 어조로 설명해줬지만, 도무지 정이 가지 않아 1분도 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차량을 피하고 도로 절단면을 기어오르려고 무망하게 애쓰는 뱀의 모습을 보니까, 녀석들이 도로 위에서는 얼마나 약자인지를 알겠고, 즉 뱀이 징그럽지 않고 안쓰럽게 다 보이는 것이었다. 이 영화가 뿜어내는 만만찮은 호소력과 설득력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누구나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이런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시속 60㎞ 근방의 방어 운전, 야생동물 이동 통로 확보 등의 언급이 나오지만,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조사자도 황윤 감독도 관객도 안다.
그 귀하다는 사람마저 온갖 수단을 강구해도 해마다 6000명씩 교통사고로 죽어나가고 있지 않은가. 인류는 절대 자동차 문화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석유가 고갈되고, 자동차 대체연료는 개발이 되지 않고, 세계경제가 아주 예술적으로 망하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전국의 자동차도로는 자전거도로가 될 것이고, 멀리 사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몇박 며칠이 걸리는 것을 상상해본다. 개인적으로 크게 나쁘지 않을 것 같지만….
"우리는 이곳을 길이라 부르고, 이들은 이곳을 집이라 부른다"라고 영화 전단지가 말하고 있었다. 여기까지다. 해결책은 제시되지 않는다. 제시할 수도 없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영화는 절망적이지 않다. 죽어나가는 야생동물이 저리 많은 것을 보니 이 나라 산천이 아직 생명력이 굉장하구나, 이런 반가움과 이상한 의욕마저 생긴다. 우리가 들어 아는 바의 수십 배에 달하는 로드 킬 사태에 대해 황윤 감독은 관객을 막다른 절망감으로 밀어 넣지 않고 성공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였다. 사람이 야생동물을 죽이지만, 그걸 고발하는 것도 사람이라서 아주 약간 안도감이 든다.
근원적인 해결책 이전에 "더 이상의 도로 개설은 그만!"이라는 것도 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황윤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일부러 독립영화를 찾아서 보고 스스로 변화할 줄 아는 관객 1000명이 상업영화를 찾은 백만 명의 관객보다 우리 사회에 더 큰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한다"고 멋진 말을 하였다. <어느 날 그 길에서>를 봐야겠다고 결심하고 애써 실행하는 것도 한 개인의 인생에서는 중요한 변화의 기점이 될지 모른다.
<어느 날 그 길에서>, <작별> 개봉관 현황 "이 영화평이 조금이라도 누리꾼 분들의 눈에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정말 한 분이라도 더 많이 이 영화를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이, 인간만이 살지 않는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저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관객 'redglass2U' 서울 : 인디스페이스 (명동 중앙시네마. 4/20부터 화, 목, 일요일 상영) http://cafe.naver.com/indiespace 하이퍼텍 나다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4/28일부터 연장상영 시작) http://cafe.naver.com/inada ('하이퍼텍 나다' 극장에서는 <어느 날 그 길에서>만 상영됩니다.) 인천 : 영화공간 주안 (4/15일부터 상영) http://cafe.naver.com/cinespacejuan 공동체 상영 신청 : http://www.OneDayontheRoad.com | oneday2008@naver.com (극장 상영기간 동안은 되도록이면 극장에서 관람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극장에서는 좋은 화질과 음질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고, 단체관람 혜택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단, 극장과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는 공동체 상영을 통해 영화를 보실 수 있습니다. 문의: 이상엽 프로듀서 (유선전화) 070-7578-3628 | 011-9060-9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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