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을 든 10대 학생도 편치 않았다. 그들은 숨바꼭질 중이었다. 약 850명의 교감, 장학사가 촛불 집회가 열리는 청계 광장으로 들어오는 길목마다 눈을 부릅뜨고 학생을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중 일부는 집회가 열리는 곳곳을 누비며 10대 학생의 참여 여부를 따졌다.
당당한 10대 "정부·조·중·동이 우리 선동한 '배후 세력'"
이런 감시의 눈도 10대 학생의 참여의 열망은 막지 못했다. 그들은 당당했다. 촛불 집회를 연 계기를 마련한 이명박 대통령 탄핵 온라인 서명을 제안했던 누리꾼 '안단테(고2)'도 그랬다. 그는 "촛불 집회에 계속 참석했다"며 "학생들이 누군가에게 선동을 당했다고 하는데, 나를 비롯한 학생들은 모두 다 자발적으로 참석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촛불 집회에 직접 오지 못하더라도 이런 움직임에 관심을 가지는 친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며 "미국산 쇠고기 문제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이 바로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탓"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이명박 대통령과 조·중·동과 같은 '어용 언론'이야말로 우리를 길거리에 나오도록 만든 배후 세력"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10대의 움직임에 무관심한 20대를 향해서도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형, 누나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며 "정치가 우리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10대도 아는데, 왜 20대는 침묵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뉴스를 조금만 들여다봐도 이명박 정부가 문제가 많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 영등포에서 온 정우태 학생(고1)도 당당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친구들과 함께 나왔다"며 "물론 누구의 '사주'도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어른들은 촛불 집회를 보면서 '쓸 데 없는 짓'이라고 하는데 그런 생각이 바로 이런 사태를 불러온 것"이라고 꼬집었다.
꿈을 잃은 어른 vs 꿈꾸는 10대
이름을 밝히기를 꺼려한 한 학생(고2)은 "걸릴까봐 겁이 나는 건 사실"이라며 "그러나 계속 숨어있으면 세상은 영원히 이 모양 이 꼴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음 같아서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 선생님에게 달려가서 같이 촛불을 들자고 권하고 싶다"며 "이 촛불이 꺼지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의 마음이 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들은 어른이 잃어버린 꿈을 꾸고 있었다. 그리고 그 꿈에 어른이 동참하기를 진정으로 원하고 있었다. 비록 청계 광장에서 학생이 든 촛불은 5000개뿐이었지만, 전국 곳곳에서 다른 세상을 꿈꾸는 수십만 개의 촛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촛불이 앞으로도 계속 타리라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눈치였다.
"앞으로도 언제든지 촛불을 들겠다" 집회의 열기가 한참 달아오르던 오후 9시께 동아일보 사옥 옆에 설치된 중앙 무대 뒤에서 촛불을 들고 서 있는 세 명의 교복 입은 학생을 만났다. 자신을 고등학교 1학년이라고 소개한 이들은 질문에 망설이지 않고 당당하게 답했다. 이들과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프레시안 :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에 나온 이유는? 이혜미(16·가명) :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왔다. 학생으로서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나. 이곳에 와서 촛불을 들고 자리를 지키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촛불이 대통령을 탄핵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국민의 뜻을 전달할 수는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따로 연락을 받았나? 심지원(16·가명) : 촛불 집회와 관련된 여러 소식이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많이 왔다. 이명박 대통령 탄핵 서명을 할 때 연락처를 남겼는데, 그 곳에서도 온 것 같다. 또 이런저런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입이 돼 있어서 그 곳에서도 문자가 왔다. 문자 내용은 특별한 건 없다. 집회 장소·시간과 주의할 점을 몇 가지 당부하는 수준이다. 프레시안 : 10대들이 집회에 나오는 걸 보고 어른이 많이 놀라고 있다. 곱지 않은 시선도 있는데…. 손아름(16·가명) : 엄마가 집회 나가는 걸 안 좋아해서 비밀로 하고 나왔다. 이렇게 나온 대부분의 10대는 인터넷을 통해 접한 기사를 보면서 문제점을 인식했다. 10대는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빨리 습득한다. 어떤 사안은 웬만한 어른보다 우리가 더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철이 없는 게'아니라 '더 많이 알아서' 이렇게 먼저 나선 것이다. 프레시안 : 왜 어른들이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 오히려 소극적이라고 생각하나? 심지원 : 어른은 TV, (종이) 신문을 통해 뉴스를 접한다. TV, (종이) 신문에 나오는 내용은 인터넷을 통해서 보는 내용과 많이 다르다. TV, (종이) 신문은 진실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을 때가 많고, 그러다보니 어른은 사태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아마 사태의 심각성을 알면 어른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프레시안 : 10대는 쇠고기 문제 외에도 이명박 정부를 향한 불만이 많은 듯하다. 예를 들어 교육 정책과 같은…. 이혜미 : 우리 셋은 서민층에 속한다. 학원도 다니지 않는다. 교육 자율화 정책은 돈이 많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하고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는 정책이다. 교육 정책뿐 아니라 의료 보험 민영화도 심각한 문제다. 돈 많은 사람은 민간 의료 보험이 도입돼도 상관없겠지만, 돈 없는 사람은 다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프레시안 : 그런 지식은 주로 어디서 얻나? 손아름 : '다음'이나 '네이버'에서 뉴스를 클릭해서 본다. 물론 그런 데 나오는 뉴스가 다 정확하지 않은 걸 안다. 그래서 TV, (종이)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본 기사가 서로 다른 얘기를 하기도 한다. 이런 것을 비교하다보면 나름의 관점을 갖게 된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도 그렇게 진실이 뭔지 알게 되었다. 프레시안 : 촛불 집회에 나온 학생이 다들 그렇게 생각이 많을까? 심지원 : 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냥 친구 따라 나온 학생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 생각 없이 놀러 나온 것은 아니다. 그냥 집에서 TV를 보며 놀 수도 있는데 이렇게 집회에 나와서 촛불을 드는 건 쇠고기 수입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촛불 집회에 나와서 서로 얘기를 나누다 보면 더욱더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된다. 프레시안 : 쇠고기 수입 문제 말고 앞으로 다른 정치·사회적 문제가 또 생긴다면 또 촛불을 들 생각인가? 이혜미 : (잠시 생각하더니)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또 이런 집회에 나올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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