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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다움'을 잃어가는 프리미어리그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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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다움'을 잃어가는 프리미어리그의 고민

[프레시안 스포츠] 선수도, 자본도 외국인이 좌지우지

유럽 최고의 축구 클럽들이 자웅을 겨루는 챔피언스리그는 '잉글랜드 천하'다. 지난 시즌과 올 시즌 모두 4강에 진출한 팀 가운데 3팀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소속 클럽이다. 특히 오는 5월 21일(한국시간)에는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소속팀이 결승에서 맞붙는다.

FIFA(국제축구연맹) 제프 블라터 회장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챔피언스리그 독점 현상에 우려를 표명하며 '6+5 플랜'을 가속화 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6+5 플랜'은 자국선수 6명, 외국인 선수 5명으로 팀을 이뤄야 한다는 규정. 이 제도가 시행된다면 외국인 선수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프리미어리그 팀을 포함한 유럽 명문 클럽들은 일시적으로 타격을 볼 수밖에 없다. 프리미어리그 팀 중 외국인 선수가 선발 라인업에 가장 많이 포함되는 팀인 아스날에 '6+5 플랜'은 독이 될 수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세계 최고의 축구리그로 발전했지만 내부적으로는 문제가 많다. 프리미어리그가 '영국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비판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들이 너무 많아졌고, 팀 자체도 해외자본에 많이 넘어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다.

외국인 선수가 독점하는 프리미어리그 득점 랭킹

최근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프리미어리그로 향했다. 이에 따라 외국인 선수들의 영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오른 맨유는 올 시즌 30골을 넣은 호날두(포르투갈)의 팀이다. 호날두는 아직 23세에 불과하지만 올 시즌 자신이 세계 최고의 선수라는 것을 보여줬다. 그는 주급 12만 파운드(약 2억 4천만 원)를 받는다. 첼시는 골잡이 드록바(코트디브아르)와 발락(독일)에게 각각 주급 10만 파운드 이상의 투자를 하고 있다. 리버풀도 스페인이 자랑하는 전천후 스트라이커 토레스를 데려와 공격력을 한 층 강화시켰다. 아스날은 외국인 선수들이 점령하고 있다. 중원의 파브레가스(스페인), 전방의 아데바요르(토고)가 팀의 핵심이다.
▲ 프리미어리그 득점 1위를 달리는 포르투갈 출신의 호날두(맨유).ⓒ로이터=뉴시스

스타급 외국 선수들의 파워가 프리미어리그를 세계 최고의 리그로 만들기는 했지만 이에 대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현재 프리미어리그 득점 랭킹을 살펴보면 10위 안에 드는 선수 가운데 잉글랜드 출신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호날두(포르투갈), 토레스(스페인), 아데바요르(토고), 베르바토프(불가리아) 등 각 팀의 킬러들은 대부분 '이방인'이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외국인 선수의 영향력 증대는 잉글랜드가 유로 2008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부정적 면이 크게 노출되기 시작했다. 잉글랜드는 자국 리그의 성공이 대표팀의 성적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이유가 외국인 선수 때문이라는 비난에 휩싸였다. 흥미로운 대목은 잉글랜드가 유로 2008 예선에서 러시아에 고배를 마셨던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첼시와 맨유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이 펼쳐진다는 점이다. 잉글랜드 축구의 양면성이 같은 장소에서 드러나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자국 리그가 세계 최고가 됐을 때, 외국인 선수의 유입은 막기 힘들다. 잉글랜드의 경우도 외국인 선수가 많아져 자국 유망주들이 설 자리가 좁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다른 유럽의 축구 강국들도 거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결국 이 문제는 잉글랜드 대표팀이 풀어야 할 숙제라는 지적도 있다.

1970년대 중반 유럽 축구의 중심은 서독이었다. 막강한 서독의 경제력을 앞세운 분데스리가는 유명 스타들의 보고였다. 리버풀에서 활약했던 잉글랜드의 영웅 케빈 키건도 1977년 서독 함부르크로 떠났다. 한국의 축구영웅 차범근도 70년대 말 서독 분데스리가에 안착했다. 80~90년대는 스페인, 이탈리아가 유럽 프로축구 시장을 좌지우지 했다. 이탈리아의 AC 밀란이 89, 90년 유럽 정상에 등극할 때 주축선수는 네덜란드에서 건너 온 '튤립 3총사' 반 바스텐, 레이카르트, 훌리트 였다. 이들이 없었다면 AC 밀란은 유럽 정상에 오를 수 없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실제로 이 세 선수들은 두 차례 유러피언 컵 결승에서 골을 넣었다. 이런 흐름이 그저 90년대 말부터 차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로 옮겨 왔을 뿐이다.

외국자본에 잠식당하는 프리미어리그

프리미어리그의 성공이 곧바로 잉글랜드 축구의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문제점보다 더 심각한 것은 프리미어리그의 클럽들이 외국인들에게 넘어가고 있다는 점. 20개 프리미어리그 팀 가운데 무려 10개 팀이 외국 자본에 잠식 당했다. 2003년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외국인 구단주는 단 한 명이었다. 그 한 명이 바로 풀럼의 구단주인 대부호 모하메드 알 파예드. 그는 11년 전 사망한 다이애나 비와 운명을 같이 했던 도디의 아버지로 유명하다. 하지만 모하메드는 영국에 거주한지 30년이 넘는 준영국인이다. 축구가 아니라 투자 수단으로 프리미어리그 구단을 집어삼키는 최근의 외국 자본과는 달랐다는 의미다.
▲ 조지 질레트와 함께 리버풀을 매입했던 미국인 톰 힉스ⓒ로이터=뉴시스

미국 프로미식축구(NFL) 탬파베이의 구단주 말콤 글레이저가 맨유를 사들였을 때, 영국인들은 충격에 빠졌다. 축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글레이저에게 영국 근대화가 낳은 유물이 팔렸기 때문이다. 글레이저는 물론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해 맨유를 사들였다. 스포츠 마케팅의 측면에서 아직 맨유를 통해 얻을 게 많다는 분석을 한 뒤, 그는 차근차근히 맨유의 주식을 매입했다. 모하메드 알 파예드와는 다소 다른 접근 방식이다. 영국 축구 팬들이 모하메드를 존경하는 이유는 그가 모은 재산을 축구를 통해 영국인들에게 서비스 해주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유럽 축구 클럽의 구단 가치를 집계했다. 상위 25개 클럽 중 잉글랜드 클럽이 무려 10개였다. 맨유, 아스날, 리버풀이 각각 구단 가치 1,3,4위를 차지했다. 상대적으로 다른 유럽 국가의 클럽에 비해 가치가 높은 잉글랜드 클럽을 외국 자본이 탐내는 이유다.

해외자본 유입을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가 없는 프리미어리그

외국 자본이 잉글랜드 클럽 매입에 열중하는 이유는 또 있다. 외국 자본의 잠식을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는 없다는 점이다. 스페인은 클럽의 열광적인 서포터스인 소시오(Socio)에 의해 소유된다. 그들이 직접 클럽의 사장과 이사진을 투표를 통해 뽑는다. 잉글랜드 첼시의 구단주가 된 러시아 석유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맨 처음 스페인 클럽을 주목했었다. 하지만 소시오의 힘이 큰 스페인 클럽을 매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인식했고, 곧 잉글랜드로 시선을 옮겼다.

독일 분데스리가의 팀들은 주식의 51% 이상을 반드시 팬들이 소유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지역 주민과 클럽간의 유대감이 없어진다면 분데스리가가 붕괴할 것이라는 점 때문에 독일 축구 협회는 이 규정을 만들었다.

이탈리아는 전통적으로 지역 사업가들이 그 지역의 축구 클럽을 소유하는 경우가 많았다. 세계적 자동차 회사인 (FIAT)피아트가 토리노를 연고지로 하는 유벤투스를 소유하는 게 대표적인 경우다. FIAT의 마지막 T는 토리노를 뜻하는 것이다. 결국 그들이 사업을 하는 데에 축구 클럽의 운영이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 때문에 명문 축구 클럽을 소유한 이탈리아의 사업가들은 외국인에게 클럽을 내주지 않는다.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전 수상은 자신의 사업 뿐 아니라 정치적 이미지를 고려해 AC 밀란의 유대를 계속 유지해 오고 있다.

21세기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는 이른바 국제화와 지역화가 절묘하게 결합된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이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인 스포츠 컨텐츠인 축구 산업이 가장 발달한 유럽도 마찬가지다. 잉글랜드를 포함해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등의 명문 클럽들은 해외 스타들 없이 챔피언스리그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그들이 자국 선수들과 다른 스타일의 축구를 보여 주는 것도 적지 않은 볼 거리를 제공하는 게 사실이다. 그라운드에서의 국제화는 이처럼 피하기 힘들다. 하지만 클럽의 운영과 클럽이 가지고 있는 무형의 자산은 그 지역 주민들의 몫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결국 축구 클럽의 존립기반은 팬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두 가지를 모두 잃어가고 있는 시점에 있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모두 국제화가 매우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지역성은 많이 퇴색됐다. 막강한 자본력으로 잉글랜드가 유럽 축구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그들이 축구를 통해 느껴왔던 영국적인 요소를 잃어간다는 게 프리미어리그의 고민이다.
영국인들이 그들의 축구에 자부심을 갖는 이유

영국인들이 기본적으로 축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이고 그들의 축구 문화에 자부심을 갖는 이유는 영국이 근대 축구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더 깊게 들어가 보면 잉글랜드 축구의 프로화가 영국인들이 전통적으로 높게 평가했던 '타협'을 통해 나왔다는 점 때문이다.

근대 축구는 대부분 영국 남부에 위치한 명문 공립학교에서 출발했다. 대영제국의 미래를 짊어져야 하는 학생들에게 규정에 순응하는 법과 협동심을 가르치기에 축구는 매우 좋은 교재였기 때문이다. 공립학교를 통해 축구를 배운 사람들은 '돈'이 아닌 '체력단련'을 위해 축구를 했다. 순수한 아마추어리즘과 축구의 결합이었다.

하지만 산업혁명의 중심지인 영국 북부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축구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였다. 축구 클럽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자 구단주들은 축구를 잘 하는 노동자를 스카우트했다. 몰래 돈을 주기도 하고, 일 자리를 주는 경우도 많았다. 1880년대 초반, 영국에서 가장 큰 축구 이벤트였던 FA 컵에서 신분이 낮은 선수들로 구성된 북부 클럽들이 득세하자 남부 엘리트들이 장악하고 있던 잉글랜드 축구협회(FA)는 이를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았다. 급기야 북부 클럽들이 선수들에게 돈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 폭로됐고, 아마추어리즘을 숭상하던 FA도 이에 대한 강도높은 조사를 했다.

결국 북부 클럽들은 이같은 FA의 탄압을 참지 못하고, 따로 북부 클럽들 간의 협회를 만들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하지만 FA는 실력이 출중한 북부 클럽 들 없이는 FA 컵의 장사가 되지 않을 거라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FA는 결국 프로화를 선언했다.

영국 남부의 엘리트들이 축구의 문명화를 이뤘다면 북부의 노동자들은 축구 상업화의 물꼬를 텄다. 남부와 북부, 그리고 귀족과 노동자들 간의 타협이 19세기 후반 축구를 통해 제시됐다는 점은 아직도 영국인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이런 배경하에 1888년 문을 연 FL(풋볼리그)는 프리미어리그로 잉글랜드 축구가 발전하는 데에 기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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