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측 사람들 중에는 "아직도 꽤 높은 수치"를 보면서 아직 잘 버티고 있다고 자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제 본격적인 추락이 시작된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대통령과 정부의 밀어붙이기, 형식적으로만 이뤄지고 있는 당·정·청 정책협의, 거기에 점차 주변화되고 있는 한나라당의 위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필자는 아무래도 후자, 즉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추락이 시작된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는다.
그러나 전자, 그러니까 아직 잘 버티고 있다고 자위하는 측도 사실은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일종의 자포자기의 느낌을 갖고 있는 듯 하므로 따지고 보면 전자, 후자 모두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정치적 추락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현 상황을 이렇게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정치적 추락으로 규정할 때, 추락원인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갖게 된다. 정부·여당이 그냥 추락해 버릴 것이라면 모르겠으되, 그렇지 않고 추락을 면하기 위해 무언가를 할 요량이라면 추락원인에 대해 어떻게 진단하는가, 그리고 어떤 처방을 내리는가가 곧 정부여당의 향후 정국운영 기조로 구체화되어 나타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위기에 처한 정부가 더 큰 위기를 초래하는 때도 위기 원인의 진단과 처방 과정에서다. 원인진단을 잘못하고 잘못된 처방을 내림으로써 사태를 수습불능으로 만든 사례가 허다하다는 뜻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참여정부만 봐도 그렇다.
참여정부의 실패원인이 노무현 대통령의 정제되지 않은 거친 언행과 당·정·청 간 갈등, 그리고 이를 수습할 대안적 리더십의 부재였음에도 참여정부는 실패원인을 홍보의 부족, 보수언론의 악의적 왜곡과 야당의 정략적 공세 등에서 찾았다. 따라서 참여정부가 임기 마지막까지 언론과 "대못질"을 해가며 전쟁을 치르고 야당과 무한 대립각을 세웠던 것은 참여정부 나름으로는 논리정합적인 선택이었다고 하겠다. 그로 인해 국민들로부터 완전히 버림받기는 했지만 말이다.
출범 두 달째를 맞는 이명박 대통령이 새삼 홍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그렇지만, 이번 쇠고기 파동에 대처하는 정부, 여당이 한 목소리로 야당의 정략적 공세와 일부 언론의 과장보도와 네티즌들의 근거 없는 괴담 유포를 질타하는 모습도 참여 정부의 마지막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과연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다.
위기는 위기를 인식하지 못할 때 더욱 깊어지나 일단 위기를 인식하면 그때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갈 수 있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위기 극복의 실마리를 풀어나갈 수 있겠는가.
그러나 정작 위험한 때는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때가 아니라 위기를 어설프게 인식하는 때이다. 아예 위기를 인식하지 못할 때는 나름의 평상적 국정 운영이라도 가능하지만, 어설프게 위기를 인식하면 위기를 극복한답시고 밀어붙이기로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면 대통령부터 귀를 열고 몸을 낮추나 어설프게 인식하면 마음을 닫고 자신이 설정한 구도를 향해 일로매진하는 것이 동서고금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는 바이다. 더구나 밀어붙이기가 장기인 이명박 정부임에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답답할 것이다. 화도 날 것이다. 자신과 정부의 충정을 몰라주는 국민이 야속할 것이고, "터무니없는 괴담"이나 퍼뜨리고 있는 네티즌들이 얄미울 것이며, "뻔히 들여다보이는 정략적 공세"를 하는 야당이나 "그 야당에 변변한 대응 한번 제대로 못하는" 여당이 한심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한 번 더 돌아보라. 국민을 섬기고 네티즌들의 마음을 얻으며 여기까지 오지 않았는가. 여당이 탄복하고 야당도 승복할 정치력만이 현재의 위기 국면을 극복할 수 있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이 진정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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