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 문제가 됐다. 경찰이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를 "집시법에 어긋난다"며 불법집회로 규정해 사법처리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경찰의 이런 방침은 오히려 여론의 반발을 고조시키고 있다. '집시법'을 구실 삼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목소리를 짓누르고 있다는 것. (☞관련 기사: 경찰, '美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 사법처리, '이명박 탄핵' 서명 100만 돌파)
이에 따라 집시법의 존속·폐지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거질 전망이다.
집시법 제10조에 따르면, 해가 진 뒤에는 모든 집회가 금지된다. "누구든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후에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는 규정 때문이다. 다만 집회 성격상 해가 진 뒤에도 필요할 경우, 주최 측이 질서유지인을 두고 미리 신고할 경우에 대해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겨우 이틀만에"…이례적으로 신속한 불법 집회 규정
경찰은 4일 지난 이틀 동안 서울 청계광장에서 진행된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를 불법집회로 규정했다. 당초 '문화제'로 신고 됐으나, 참가자 일부가 연단에 올라 구호를 외치고, 참가자들이 피켓과 플래카드를 들었다는 점에서 '집회'로 봐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해가 진 뒤에도 집회가 이어졌다는 것 등이 이유다.
경찰은 청계광장 시위를 주도한 시민단체와 인터넷 카페 관계자 등을 곧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이는 과거 사례에 비춰 봐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 2002년 효순·미선 추모 촛불집회의 경우, 불법 집회 규정이 내려지기까지 3개월이 걸렸다. 또 지난 2005년 노무현 전(前) 대통령 탄핵을 규탄하는 집회 역시 개최 후 일주일이 지나서야 단속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번 촛불집회는 시작된 지 겨우 이틀 만에 경찰이 단속 의지를 밝혔다.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는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반대 여론을 조기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리고 광우병 쇠고기 문제가 역대 최저 수준의 임기 초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반발 여론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판단도 배경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죽음을 불렀던 강경 진압…"더 큰 저항 낳는다"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경찰의 방침이 더 큰 저항을 불러올 것"이라며 경고하고 있다. 누리꾼들 역시 "'백골단'으로 대표되는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탄압이 떠오른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실제로 군사정권이 물러난 뒤인 1990년대까지만 해도, 경찰의 강경진압에 의해 시위 참가자가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
이런 기억을 떠올린 이들이 경찰의 이날 발표를 접하며, 몸서리를 치는 것은 당연하다. 인권운동사랑방 유성 활동가는 "경찰은 헌법에 보장된 시민의 집회 권리를 제멋대로 제한해 왔다"며 "집회의 불법 여부를 판정하는 기준은 모호하기 짝이 없다. 집시법에 대한 자의적 해석만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힘으로 누를 경우, 시민들은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인지에 대해 깊은 의문을 품게 될 것이다. 이런 의문은 더 강한 저항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라고 덧붙였다.
누리꾼들의 분노 역시 계속 달아오르고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과 네이버에는 4일 오후 6시40분 현재 촛불 집회 불법 규정 관련 기사에 대해 수천 개의 댓글이 달리고 있다. 대부분 경찰의 방침을 규탄하는 내용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걱정하는 내용도 많다. 일부 누리꾼들은 인터넷 사용량에 따라 비용을 지불하는 '인터넷 종량제'가 실시될지 모른다며 걱정하기도 했다. 온라인 공간에서 이명박 반대 여론이 너무 뜨거운 까닭에 누리꾼들이 지레 느낀 불안감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인터넷 종량제'를 추진한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집시법 있는 한, 민주주의 미래 어둡다"
일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는 경찰이 이날 발표한 방침에 대한 여론의 뜨거운 반발이 집시법의 폐해를 시민들이 깨닫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다. "집시법, 그 자체가 이미 문제"라는 인식이 널리 확산될 필요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불법집회, 그래 좀 없애보자")
유성 활동가는 "집시법은 애초 시민의 자발적 움직임을 통제하기 위해 생겨난 악법"이라며 "집시법을 폐지하거나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경찰의 자의적 해석은 또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다산인권센터의 박진 상임활동가도 "기자회견을 해도 '집회'로, 문화제를 열어도 '집회'로 규정해버리면 국민은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할 길이 없다"며 "현행 집시법 자체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반민주적 조항이므로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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