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들어 처음 맞은 노동절 기념대회에 임하는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비장했다. "대회사를 읽으려고 준비해 왔지만 이명박 정권은 노동자의 생일인 이날 그마저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며 시작한 대회사였다.
'규제 완화' 외에는 어떤 노동 정책도 없는 이명박 정부를 들어 처음 맞은 노동절이었다. 이름은 '기념 대회'였지만 이명박 정부가 밀어붙이는 공공부문 구조조정과 최근 몇년간 지속적으로 터져 나오는 비정규직 문제 등 최근 노동계는 앉은 자리가 가시방석이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노동계는 제각기 다른 길을 걷고 있다. 8년 동안 이어 오던 남북노동자의 노동절 공동행사마저 올해는 무산되면서 각각 기념행사를 열었다. 1만여 명이 서울 대학로를 가득 메운 민주노총의 기념 행사는 "이영희 노동부 장관 퇴진" 등 투쟁 구호로 가득찼고, 한국노총이 이날 오전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연 노동절 마라톤대회장에는 이영희 장관까지 참석해 행사를 함께했다.
"이영희 장관, 이제 파트너로 상대하지 않겠다"
이석행 위원장은 때마침 노동절 하루 전날 있었던 이영희 장관의 발언으로 더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이석행 위원장은 "이명박의 하수인 이영희 장관이 우리에게 대단한 노동절 선물을 줬다"며 전날 있었던 이 장관의 발언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이에 앞서 이 장관은 지난달 30일 '외국계 투자기업 CEO 대상 조찬 강연'에서 "현행 근로기준법이 근로자를 과보호하는 측면이 없지 않아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뿐만 아니라 이 장관은 "외국의 경우 단체 교섭이 2~3년 단위로 진행되지만 우리나라는 근로자의 임금을 매년 조정하고 있다"며 "임금과 단체교 섭을 하나로 이뤄 지금보다는 긴 기간 동안 효력을 갖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며 그런 방향으로 제도적 보완을 검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관련 기사 : 이영희 노동장관 '친기업 발언' 뭇매)
이와 같은 이 장관의 발언에 대해 이석행 위원장은 "더 이상 지켜볼 수가 없는 지경"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 위원장은 "이영희 장관은 물러나야 한다"며 "이제 (민주노총은) 그 자를 파트너로 상대하지 않겠다"고까지 말했다.
총력투쟁 앞두고 '애 타는' 건 위원장 뿐?
이 장관 뿐이 아니라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꼭 노동 정책에만 국한된 공격도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각종 정책에 민주노총은 모두 '반대'다. 교육 자율화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도 공공부문 구조조정도 한반도대운하도 반대다.
민주노총은 오는 6일 10대 영역 100대 과제로 구성된 대정부 요구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우문숙 대변인은 "대정부 교섭을 통해 일단 대화로 풀어보려는 시도를 하겠다"고 밝혔지만 현 정부가 민주노총과의 대화에 나설리가 만무하다.
결국 자연스럽게 "총력 투쟁"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이 위원장은 "파업을 포함한 민주노총의 6~7월 총력 투쟁은 '비즈니스 프랜들리'를 천명한 이명박 정부에 정면으로 맞서는 최초의 투쟁이 될 것"이라며 "끝까지 함께 해달라"고 호소했다. 현재 이 위원장은 이 총력투쟁을 위해 한 달째 산별 대장정을 벌이고 있다.
오는 24일 공공부문 사유화 저지 결의대회와 6월 비정규 노동자대회 등을 거치면서 단계적으로 힘을 모아간다는 것이 민주조총의 '총력투쟁 로드맵'이다.
위원장의 목소리엔 결기가 넘치는데 쉽지는 않아 보인다. 당장 몇몇 산별위원장들도 총력투쟁에 머뭇거리고 있다. 올해 노정 충돌의 핵심 원인 중 하나인 공공부문만 해도 그렇다. 총력 투쟁 시기를 놓고 민주노총 지도부와 이견을 보이고 있다. "국회에 관련 법안이 상정되는 9월에야 우리는 (총력 투쟁이) 가능할 것 같다"는 것이다.
핵심 당사자부터 "6~7월은 좀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다른 산별연맹들도 함께 주춤거리고 있다. 결국 시작도 하기 전부터 '늘 하던 것처럼 현대차만 앞장서는 총력 투쟁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노총, 이영희·이수영·어청수와 함께 '노동절엔 마라톤을!'
비록 정부의 공공부문 구조조정이라는 똑같은 장애물을 앞에 놓고 있지만 한국노총은 비교적 '여유 있는' 노동절을 보냈다. 한국노총은 이날 오전 9시부터 일반시민과, 이주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등 2만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비정규직·중소하청 노동자·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절 마라톤대회'를 열었다.
한국노총의 마라톤대회에는 이석행 위원장이 "파트너로 상대하지 않겠다"고 밝힌 이영희 노동부 장관을 비롯해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 오세훈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도지사, 어청수 경찰청장, 이수영 경총 회장, 정병철 전경련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한나라당과의 정책 연대 이후 18대 국회 진입에 성공한 강성천 당선자 등 4명의 국회의원 당선자들도 대회에 참석했다.
장석춘 위원장은 대회사를 통해 "한국노총은 중소하청노동자의 권익 보호 뿐만 아니라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가겠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지난 2006년부터 노동절 기념 마라톤대회를 열어 왔다.
118년이 지났지만 '노동자 대접' 못 받는 노동자들 세계 노동절이 올해로 118주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노동자 대접조차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정권이 바뀐 뒤 고용 불안을 호소하는 공공부문 정규직의 푸념이 부럽기만 하다. "우리도 분명 노동자인데 위탁계약이라면서 마땅히 받아야 할 권리도 인정해주지 않고 있어요."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11년차 베테랑 학습지교사 조정란 씨(41)는 특수고용노동자다. 정부도, 회사도 "너는 노동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하지만 조 씨는 "노동자가 노동절 집회에 나오는 게 뭐가 이상한가요?"라며 되물었다. 생후 36개월 아이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그가 하루에 만나는 아이들은 보통 20~30명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오후 1시부터 일이 시작되는 조 씨는 어떤 날은 자정이 돼야 집으로 돌아간다. 정해진 할당량을 채우려면 어쩔 도리가 없다. 조 씨는 "요즘은 젊은 사람들은 이 일을 잘 안 한다"고 말했다. 노동강도는 세지만 특수고용직이라는 이유로 4대 보험의 혜택도 못 받는다. 11년을 일한 조 씨도 "당장 내일 그만두더라도 퇴직금 한 푼 못 받는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조 씨는 가족과 떨어져 먼 타국까지 와야 했던 이주노동자 타미르 씨(가명, 39)보다는 사정이 나았다. 방글라데시에 7명의 가족들이 있는 타미르 씨는 한국에서 일한 지 어느덧 11년째다. 타미르 씨는 "그나마 나는 형들이 돈을 잘 벌어서 많은 돈을 고향에 부쳐줄 필요는 없다"며 웃었다. 문제는 그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는 것이다. 서울의 한 공장에서 옷을 만드는 그는 "평소에 늘 항상 단속에 대한 압박이 심하지만 다행히 사장님과 직원들이 사전에 알려줘서 매번 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새 정부 들어서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이 더 심해졌다"는 타미르 씨는 노동절에도 내일이 걱정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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