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성화 봉송 폭력사태'에 대해 논평도 낼 생각이 없다던 기존의 입장을 번복하고 중국과 한국 정부를 정면으로 규탄하고 나섰다. 중국인들의 폭력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처가 뒷북 논란을 일으키는 가운데, 여론의 눈치만 보던 거대양당은 한 발 더 늦은 대응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민주당은 당 중진들이 잇달아 한국 정부의 소극적인 대응을 질타하는 발언을 쏟아내며 "대한민국 국가 체통과 권위의 문제"로 사건을 규정했다. '해프닝'이라던 사태 초기의 발언과는 180도 다른 반응이다.
"국가적 체통과 권위의 문제", "우리가 얼마나 얕보였으면 중국이 저러겠나"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30일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에서 성화 봉송 폭력사태는 "대한민국 국가 체통의 문제고 국가 권위의 문제"라며 "국가 외교의 중대한 위기"를 개탄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대체 얼마나 얕보였기에 중국 정부가 사과는커녕 '성스러운 성화 봉송을 위한 정의로운 행위' 운운할 수 있느냐"고 이명박 정부의 외교 정책에 맹공을 퍼부었다. "한미정상회담 하루 전에 검역주권을 내놓고, 일본에 가서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발언하는 식의 외교가 성화폭력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김효석 원내대표 역시 이명박 정부를 강력히 비판했다. 그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사는 것이 명예스럽고 자랑스러워야 한다"며 "중국 (유학생들의) 폭력시위를 보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모욕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중국 유학생의 폭력의 대상이 되는 나라가 과연 주권국가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강력히 규탄했다.
한나라당도 사건발생 이틀 후인 29일 "세계평화 추구라는 올림픽 정신이 중국인들의 폭력사태로 오염되고 말았다"고 논평했다. 김대은 부대변인은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중국인들의 폭력과 난동을 사전에 방지하지 못하고 내외국인의 안전을 보호하지 못한 경찰 또한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해프닝'이랄 때는 언제고…
문제는 양당의 이 같은 강력한 비난이 폭력사태 초기에 보였던 반응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사태 당일과 다음 날에 논평을 내지 않았고, 대변인들은 "당분간 당 차원의 공식논평을 내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통합민주당 차영 대변인은 28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이는 국제적으로 티베트와 중국의 문제가 불거진 가운데 일어난 해프닝"이라며 "중국과의 관계도 있는데 코멘트를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조윤선 대변인 역시도 같은 날 "이슈가 많은데 모든 것에 대해 다 코멘트를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양당이 이처럼 갑작스럽게 방향을 선회한 것은 격앙된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중국인 유학생들의 폭력사태가 발생한 27일 이후부터 관련 기사에는 수 백~수 천 건의 댓글이 폭주했고, 양당의 게시판에는 '왜 침묵하느냐'는 요지의 항의성 글이 빗발쳤다.
대화명 '김민철'은 한나라당 게시판에 글을 올려 "자국에서 외국인들한테 자국민들이 폭행당하고 경찰도 폭행당하는데 수수방관만 하느냐?"고 분노를 쏟아냈다. 민주당 게시판도 사정은 비슷했다. 대화명 '김정환'은 "중국인들의 난동사건에 대해 왜 민주당은 침묵하는 것인가" 하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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