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을 빚고 있는 학교 자율화 조치에 대해 서울·경기 외 지역에서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사교육 시장이 활성화돼 있지 않은 환경에서 학생들이 과열 경쟁에만 시달리게 된다는 것. 지난 29일 청와대 근처 청운동사무소 앞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소속 40여 명의 학부모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자율화 조치를 조속히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교육 양극화, 지역은 더 심각"
"아이 셋이 중학교에 다니는데 그 중 작은 아이 학교에서는 벌써 0교시를 하고, 밤 9시까지 '야자'를 하고 있다. 학원도 아닌데 시간당 3만원 내면서 보충수업을 듣고 있다. 하루는 아이가 '엄마, 대통령이 바뀌고 나서 와 이리 학교에서 공부를 많이 시켜요'라고 물어보더라."
채승영 참교육학부모회 부산 지부장은 "오늘 아침에 엄마가 서울에 간다고 말을 해주니 아이들이 '힘껏 싸우고 오라'고 응원해 줬다"며 "새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아이들은 교육 환경이 너무 바뀐 걸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율화 조치가 시행되면서 부산시에서는 같은 학군 내에서도 벌써 부자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 사이에서 교육 환경의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며 "보통교육을 받아야 할 학생들이 차별 교육을 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채승영 지부장은 "지역에서는 소득에 따른 교육 양극화가 더 심하다"며 "방과후 학교를 단체로 운영한다고 해도, 내야하는 돈이 만만치 않을 뿐더러 아이를 학원에 보낼 수 있는 학부모들은 또 그 틈새로 학원에 보내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더군다나 시도교육감 간에 경쟁을 하게 하면서 교장 임명권까지도 교육감에게 이양되면 결국 평가 요소는 '시험 성적'이 되지 않겠나"라며 "그 경쟁 체제 아래서 가장 깨지는 건 결국 학생과 학부모"라고 지적했다.
"어차피 서울 못 따라가는데…누가 경쟁 반기겠나"
경북 상주에서 온 김영선 상주지회장은 "아직 지역에서는 학교 자율화 조치의 부작용을 잘 모른다"고 말했다.
김영선 지회장은 "지역에서는 사실 좋아할 게 없다"며 "아무리 해봤자 어차피 사교육 기회가 풍부한 서울을 못 따라가는데 경쟁 위주로 가는 풍토를 반길리가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교과과정 외에 덤으로 하는 방과후 학교 같은 수업을 학원에서 할 수 있도록 해주면 시골에 훌륭한 강사가 얼마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차라리 공교육 내에서 해결이 되던 옛날에는 시골에서도 서울대를 갈 수 있었다"며 "그렇지만 이제 공교육 범위에서 해결되지 않은 입시 경쟁이 치열해진다면 지역 주민으로선 좋은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학부모들의 경우 시골에 기숙학교를 짓겠다는 장밋빛 전망에 기대를 걸고 있는 이들도 있다"며 "하지만 0교시, 보충수업 얘기를 접한 대다수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애들을 들들 볶는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김 지회장은 "어쨌든 지방 교육청에서는 주로 서울에서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그대로 (정책을) 내려받는 형국"이라며 "사실상 지방은 논란의 무풍지대"라고 덧붙였다.
"학교 자율화가 아니라 학교 포기화"
오승주 참교육학부모회 전남지부장은 "학교 자율화 조치는 먼저 특정 소수를 위한 정책일뿐 아니라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의 교육은 다 죽게 만드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오승주 지부장은 "강사 질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에서 한꺼번에 개방해버리는 건 오히려 교육격차를 더욱 확대하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지역의 교육주체 입장으로서 이번 자율화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율화라는 대명제는 좋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국가로서 책임을 방기해버리는 조치에 지나지 않는다"며 "학교 자율화가 아니라 포기화"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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