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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못 먹는 약도 '약'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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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못 먹는 약도 '약'이냐"

백혈병 치료제 '스프라이셀' 약값 산정 논란

백혈병 치료제 '스프라이셀'의 약값 산정을 두고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제약회사(1정당 6만 원대)와 국민건강보험공단(1정당 5만 원대)이 가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데다, 환자단체도 "건강보험공단의 약값도 비싸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서 앞으로 갈등은 더 커질 전망이다.

보건복지가족부는 28일 제3차 약제급여조정회의를 개최했으나, 결국 스프라이셀의 약값을 정하지 못했다. 이 약은 다국적 제약회사의 압박 탓에 식품의약품안전청이 2007년 1월 25일 시판 허가를 내준 지 500일 가까이 값을 정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애초 정부는 2006년 12월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도입하면서 최장 127일이면 약값 결정 등이 완료될 것이라고 공언했었다.

스프라이셀은 다국적 제약회사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퀴(BMS)'이 내놓은 차세대 항암제다. 이 약은 기존에 널리 쓰이는 항암제 글리벡의 내성을 극복할 수 있어서 '슈퍼 글리벡'이라고 불리며 글리벡이 효과가 없는 일부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전체의 10%)의 관심을 모았다. 또 이 약은 약제비 적정화 방안에 따라 약값을 정하는 첫 타자로 주목을 받아왔다.

"연구개발에 천문학적 비용 들어서…" vs "연구개발 비용 부풀리지 마라"
▲정부가 다국적 제약회사의 압박 탓에 시판 허가를 한 차세대 항암제의 가격을 500일 가까이 정하지 못하고 있다. 애초 정부는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도입하면서 의약품을 등재하는 데 최대 270일이 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었다. ⓒ프레시안

스프라이셀의 약값 산정이 500일 가까이 표류하는 가장 큰 이유는 BMS와 건강보험공단 사이의 가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BMS는 스프라이셀 100㎎ 1정당 6만2000~6만9350원을 제시했으나, 건강보험공단은 1정당 5만1000~5만5000원을 맞서며 가격 협상은 계속 난항을 겪었다.

BMS는 "하루 복용량을 기준으로 삼을 때 스프라이셀의 가격은 기존의 항암제 글리벡에 비해 결코 높지 않다"며 "더구나 연구개발에 드는 천문학적 비용으로 인해 약값이 비쌀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건강보험공단 측은 "스프라이셀이 약값 산정에 필요한 근거 자료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런 BMS 측의 주장을 반박해 왔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도 "초기 연구개발 비용을 근거로 비싼 약값을 산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반박했다. 이 단체는 "노바티스는 글리벡 연구개발에 8000억 원을 썼지만 약값이 비싼 덕분에 1년 만에 1조5000억 원이라는 수익을 거둬 연구개발 비용을 단시간에 회수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단체는 더 나아가 "스프라이셀의 적정 약값은 1정당 1만8900원"이라고 주장했다. 이 단체 강아라 사무국장은 "BMS가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완제품 생산단가를 추정해보면 1890원"이라며 "일반적으로 연구개발 비용을 감안해 완제품 생산단가의 3~10배 수준에서 약값이 결정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스프라이셀 가격은 최대 1만8900원"이라고 설명했다.

"환자가 먹을 수 없는 약을 어떻게 약이라 부르나"

한국백혈병환우회, 건강세상네트워크 등 환자단체, 시민단체는 이날 3차 조정회의가 열리는 경기도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정부와 BMS는 환자의 생명과 건강권은 안중에 두지 않고 터무니없이 높은 스프라이셀 가격을 책정하려 하고 있다"고 정부와 BMS를 동시에 비판했다.

한국백혈병환우회 안기종 사무국장은 "우리나라 택시기사가 한 달에 200만 원 정도를 벌고,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은 120만 원 정도를 번다"며 "만약 이 분들이 백혈병 환자가 됐을 때 한 달에 40~50만 원에 달하는 약값을 어떻게 감당하겠냐"고 말했다. 그는 "환자가 먹을 수 없는 약을 어떻게 약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덧붙였다.
▲환자단체는 "BMS, 건강보험공단이 제시한 스프라이셀의 약값을 상당수 환자는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며 "환자가 먹을 수 없는 약을 어떻게 약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프레시안

BMS가 제시한 가격으로 약을 구매하면 백혈병 환자 1명당 매월 4~500만 원의 약값이 지출된다. 이 약값 중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하는 90%를 제외하고, 환자는 매월 4~50만 원을 직접 지불해야 한다. 물론 건강보험공단이 지불하는 90% 역시 전 국민이 내는 건강보험요금에서 나온다.

한편, 이들 단체는 "보건복지가족부가 약가 산정을 할 때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정부는 스프라이셀 약값 산정에 꼭 필요한 자료인 생산 비용, 연구개발 비용, 실거래가 등을 놓고 '이것은 제약회사의 기밀이라 알 방법이 없다'고 발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운동사랑방 재용 활동가는 "2차 조정회의 당시 조정위원 중 한 명이 '약가 산정의 기준은 우리도 당신도 알 수 없고 오직 신만이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며 "결국 정부가 아무런 준비 없이 약값 결정 협상에 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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