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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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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

['어느 날 그 길에서'를 보고] 감독 임순례 씨

야생동물 '로드킬'을 다룬 다큐멘터리 <어느 날 그 길에서>가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변변한 광고 하나 없이 입소문만으로 사람을 극장으로 이끈 이 영화는, 관객의 요청의 최근 연장 상영을 이끌어냈다. 이 영화를 만든 황윤 감독의 또 다른 다큐멘터리 <작별>도 극장에 같이 걸린다.

<프레시안>은 생명의 가치가 헐값이 된 시대에, 생명의 가치를 되묻는 이 영화를 응원하는 릴레이 기고를 싣는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임순례 감독이
<어느 날 그 길에서>를 보고 글을 보내왔다. 그는 영화를 보고 "인간 아니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고 고백했다. <편집자>

☞첫 번째 글 :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죽어간다"
☞두 번째 글 : "그들이 본 세상은 얼마나 추악한지요"

<어느 날 그 길에서>는 인간들의 이기적인 호기심을 만족시키느라 좁은 울타리에서 그들의 야생적 본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동물원 속 야생동물들의 이야기, <작별>을 만든 황윤 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지리산 인근 도로로 나선 영화이다.

동물원의 울타리에 갇혀있지 않은 야생동물들은 그럼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느냐는 황 감독의 질문의 연장으로 보이는 이 영화에서, 우리는 그 어떤 죽음보다도 처참한 죽음들을 목도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죽음의 한가운데는 인간의 이기심과 동물 생태에 대한 무지, 생명에 대한 철저한 무감각이 도사리고 있다.

영화 속 연구원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지리산 인근 120㎞의 도로에서 30개월 동안 발견된 야생동물의 '로드킬'만 5800여 건에 달한다니 총연장 10만㎞에 달한다는 한국의 도로에서 얼마나 많은 야생동물들이 죽어가고 있을지 계산이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좁은 국토에 도로가 너무 많다는 각계의 지적에도 한국도로공사는 총연장 길이 20만km 도로 건설을 추진 중이란다.

도로를 건설할 때, 야생동물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야생동물들의 번식 및 부화 경로 ,먹이 및 식수 경로, 집단생활에 따른 이동 경로 등 어떠한 배려도 없이 인간 편의의 무시무시한 개발 논리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야생동물의 출몰이 잦은 곳에 도로 횡단 통로를 마련해 준다던지, 감시카메라를 동반한 강력한 속도 제한 장치라든지, 울타리를 낮추거나 구멍을 만들어 동물이 통과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과 같은 작은 배려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영화 속에서 시속 120㎞가 훌쩍 넘는 자동차의 속도와 비교했을 때, 도로를 건너는 야생동물의 속도는 아주 느려서 그들이 도로를 다 건널 때까지 손에 땀이 배어나올 정도이다. 느릿느릿 간신히 도로를 건넜으나, 키 높은 옹벽과 다시 목숨을 건 사투를 벌어야하는 두더지와 뱀의 모습은 처절해 보였다.
▲야생동물 '로드킬'을 고발한 황윤 감독의 <어느 날 그 길에서>. ⓒ프레시안

영화 속에서 '팔팔이'라는 이름의 어린 삵이 한 마리 나온다. 얼핏 보면 큰 고양이 같기도 하고 어린 새끼호랑이 같기도 한 모습의 삵 팔팔이는 88도로에서 차에 치여 죽어가고 있다가 최태영 연구원에 의해 구조되어 그와 팀원들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건강을 회복한다.

회복중인 팔팔이가 야생 우리에서 일시보호를 받고 있을 때 팔팔이의 단짝친구가 찾아와 그 주위를 맴돌다 가는 것이 여러 번 목격되기도 했는데 그 이름 없는 친구의 로드킬로 이 진하고 귀한 우정은 인근 도로에서 종말을 맞는다. 이후 팔팔이는 애초 구조된 도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방사되지만, 그는 12개의 도로를 넘어(즉 12번의 사선을 넘어) 수십㎞ 떨어진 고향으로 돌아갔고 애초에 차에 치였던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다시 교통사고 사체로 발견된다. 연구원들이 오래오래 팔팔하게 살라고 명명해준 이름을 배반하고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된 팔팔이의 장례식을 치르는 장면에서는 눈물을 참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늘 지구는 인간과 다른 동물들이 함께 나눠 써야 할 소중한 대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인간임을 아니 한국인임을 부끄럽게 만드는 그런 일침을 주고 있는 영화이다.

황윤 감독은 3년간의 꼼꼼한 취재로 이 영화를 완성했고, 차분한 시선으로 나직나직하게 그러나 묵직하고 예리한 슬픔과 성찰을 던져준다. 대운하 문제로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는 이즈음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지구의 동반자인 동물들에 대해 다시 한 번쯤 생각해보는 그런 시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어느 날 그 길에서>, <작별> 개봉관 현황

"이 영화평이 조금이라도 누리꾼 분들의 눈에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정말 한 분이라도 더 많이 이 영화를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이, 인간만이 살지 않는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저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관객 'redglass2U'

서울 :
인디스페이스 (명동 중앙시네마. 4/20부터 화, 목, 일요일 상영) http://cafe.naver.com/indiespace
하이퍼텍 나다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4/28일부터 연장상영 시작) http://cafe.naver.com/inada
('하이퍼텍 나다' 극장에서는 <어느 날 그 길에서>만 상영됩니다.)

광주 :
광주극장 (4/11부터 2주일 상영 예정) http://cafe.naver.com/cinemagwangju

인천 :
영화공간 주안 (4/15일부터 상영) http://cafe.naver.com/cinespacejuan

공동체 상영 신청 : http://www.OneDayontheRoad.com | oneday2008@naver.com
(극장 상영기간 동안은 되도록이면 극장에서 관람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극장에서는 좋은 화질과 음질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고, 단체관람 혜택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단, 극장과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는 공동체 상영을 통해 영화를 보실 수 있습니다. 문의: 이상엽 프로듀서 (유선전화) 070-7578-3628 | 011-9060-9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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