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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우주시대. 高山의 영화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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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우주시대. 高山의 영화를 위하여

[오동진의 영화갤러리]

(*이 글은 4월27일자 영화주간지 '무비위크'에 실린 글임) 아폴로 13호의 우주비행사들은 이제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다. 선장은 짐 러블(톰 행크스). 그와 함께 대망의 우주여행을 떠날 비행사들은 프레드(빌 팩스톤)와 잭(케빈 베이컨), 그리고 켄(게리 시니즈) 등이다. 모두들 마음이 한껏 들떠있는 것은 불문가지. 온갖 힘든 훈련을 다 겪은 후다. 이제 모든 사람들의 기대와 선망의 눈초리를 뒤로 하고 우주로 치솟아 오르기만 하면 될 터이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늘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그토록 우주여행을 꿈꿨던 켄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한번도 홍역을 앓지 않았다는 이유로 결국 그는 우주여행에서 제외되는 비운을 맞는다. 그것도 발사 이틀 전에. 그를 남겨두고 친구들은 성공적으로 우주 궤도에 진입했다. 켄은 차마 그 광경을 지켜보지 못하고 나사(NASA)밖으로 나와 실의에 빠져 지낸다. 하지만 곧 나사 상황실이 긴급으로 그를 호출한다. 우주에 나가있는 동료 비행사들이 큰 위기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켄은 모든 일을 마다하고 지구 밖 우주 비행사들을 구해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아폴로 13
론 하워드의 1995년작 <아폴로 13>은 영웅적인 우주비행사들의 모험담만을 그렸기 때문에 흥미로운 작품이 아니다. 그보단 비록 영웅이 되지 못했다 해도 오히려 더 영웅적인 행동을 한 보통 사람의 노력을 그렸기 때문에 돋보인 작품이다. 이 영화엔 우주로 나간 사람과 지구에 남은 사람, 주목을 받는 사람과 그 뒤에서 묵묵히 일을 하는 사람, 슈퍼 히어로와 보통 사람이라는 현대사회의 이분법적 구조를 뛰어 넘으려는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아폴로 13>은 바로 그런 시각에서 봐야 비로서 올바르게 읽혀지는 영화다. 이번 이소연의 우주 여행은 그런 면에서 할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여기저기서 한국 우주과학의 쾌거라는 둥, 우리나라가 드디어 우주시대를 열었다는 둥 호들갑을 떨었지만 이 거대한 이벤트 뒤에는 우리사회가 늘 무심하게 지나가는 소외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우리는 왜 늘 영웅에만 열광하는가. 가까운 신문사 친구의 하루 일과는 매일매일 외신 사진을 체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친구와 어느 날 밥을 먹다가 흥미로운, 그러나 알고 보면 사실은 가슴아픈 얘기를 들었다. 이소연이 소유주 로켓 엔진의 굉음을 뒤로 하고 하늘로 올라가기 훨씬 전부터 카자흐스탄의 바이코누르 우주기지로부터는 매일매일 관련 사진들이 날아 들었다고 한다. 신문사 친구는 밥을 한숟가락 뜨다 말고 고개를 갸웃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소연과 고산이 함께 찍은 사진도 꽤 많았던 것 같아. 근데 말야. 그 많은 사진 속에서 고산은 한번도 웃지를 않더라구. 한번도 웃고 찍은 사진이 없었어." 그래서 냉큼 이렇게 얘기했었다. "당신이라면 웃음이 나오겠어? 나같으면 사진도 찍지 않았을 거야." 신문사 친구의 의미심장한 말은 다음에 이어진 것이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웃고 있든 웃고 있지 않든, 왜 국내 모든 언론은 고산의 사진을 한 컷도 게재하지 않은 것일까. 둘이서 같이 찍은 사진이라도 낼 수 있었을텐데 말야." 쿵. 그래 맞다. 왜 우리는 모두 고산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일까. 왜 오로지 이소연만 얘기하고 있는 것일까. 고산은 정말 모든 사람들에게 잊혀질만큼 우주기지 내에서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일까. 그게 아니라 어쩌면 우리가 오직 영웅만을 찾기 때문만은 아니었을까. 패배자보다는 승리자에게만 집중하려는 승자독식의 이데올로기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스페이스 카우보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만든 2000년작 <스페이스 카우보이>도 선장인 프랭크 말고도 제리와 호크, 탱크, 밥이라는 이름의 모든 우주인들, 더 나아가 우주여행의 꿈과 그 이상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이 사실은 똑같은 비중의 영웅임을 강조하는 작품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이소연과 고산의 얘기는 영화와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가. 언젠가 한국에서도 우주여행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가 만들어질 것이다. 부디 이소연과 고산 모두의 에피소드가 함께 다뤄지기를. 영화에서만큼은 그 누구도 소외시키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고산을 위하여! 진정한 우주시대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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