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정교 분리를 엄격히 규정하는 나라다. 그러나 종교와 일상생활은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하다. 세계적으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많은 신도를 거느린 대형 교회가 여러 곳일 뿐만 아니라, 각종 종교 집단을 거론하는 뉴스는 늘 사람의 눈길을 끈다. 최근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다니던 특정 교회 신도를 중용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과연 한국의 종교가 일반인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는지는 따져볼 일이다. 예를 들어 한때 한국 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생명공학을 둘러싼 윤리 논란이 그렇다. 외국의 기독교계가 생명윤리를 아주 강조하는 것과는 달리, 한국의 기독교계는 사실상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다. 심지어 일부 불교계는 생명공학의 강력한 지지자를 자처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2007년에는 아프가니스탄으로 선교 여행을 떠났던 신도들이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되는 일도 있었다. 테러에 대한 비판과는 별개로, 이런 선교 여행이 '기독교 패권주의'라고 교계 안팎에서 강하게 비판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 사건과 맞물려 "신은 망상일 뿐"이라고 선언하는 외국 지식인의 책이 국내에서도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한국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21세기의 세계를 살펴보면 더욱더 상황은 복잡하다. 현대 사회를 과학기술시대라고 규정하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현대 사회에서 종교의 영향력 또한 계속 커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프레시안>은 이 시대의 두 가지 화두라고 할 만한 '과학'과 '종교'의 대화를 통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런 의문을 해결하는 단초를 찾아볼 생각이다. 이 쉽지 않은 작업에 김윤성(종교학자,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 신재식(목사, 호남신학대 조직신학과 교수), 장대익(진화론을 연구하는 과학철학자, 동덕여대 교양교직학부 교수) 세 사람의 젊은 지식인이 나섰다. 이들은 이미 지난 2006년 말부터 과학과 종교를 놓고 여러 차례에 걸쳐 서신을 교환해왔다. <프레시안>과 과학 전문 출판사 사이언스북스는 공동으로 이 서신을 정리해 <프레시안>에 1주일에 한 차례씩 싣는 기획을 마련한다. 이 기획을 통해 독자들은 과학과 종교를 둘러싼 국내외 최신 담론을 접하는 것은 물론,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장대익 교수는 "왜 지금 종교와 과학이 대화를 해야 하는지"를 묻는 것으로 논쟁을 시작했다. '과학의 시대'에 여전히 그 위세가 커지는 종교가 "또 다른 중세를 야기할지 모른다"는 그의 문제제기는 리처드 도킨스를 비롯한 최근의 지식인의 지적과 궤를 같이한다. 이런 장 교수의 문제제기에 목사 신재식 교수가 답했다. 신재식 교수는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원, 드루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존 템플턴 재단 '과학과 종교 교육 프로그램' 연구자, 풀브라이트 초빙 교수를 지냈다. <생태학과 기독교 신학의 미래>를 쓰고, <근대 신학의 이해>, <신과 진화에 관한 101가지 질문>을 옮겼다. 진화론을 비롯한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오래 전부터 깊은 고민을 해온 목사이다. 신재식 교수는 2006년 12월 26일부터 2007년 2월 8일까지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를 배낭여행했다. 볼리비아의 산타쿠르즈에서 시작한 여행은 코차밤바, 라파스를 거쳐, 칠레의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 산티아고, 푼타 아레나스, 토레스 델 파이네, 아르헨티나의 칼라파테, 부에노스 아이레스, 이과수 폭포로 이어졌다. 그는 사막부터 빙하까지 이어지는 여행 중에 시장과 성당에 머무르면서, 남아메리카의 사람, 자연, 종교를 둘러보았다. 이 편지의 초고는 코차밤바에서 작성된 것이다. <편집자> |
김윤성, 장대익 선생님께
여기는 코차밤바입니다. 배낭여행 중에 장 선생님 편지를 받았습니다. 코차밤바는 남아메리카 볼리비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로 해발 약 2500m 높이에 위치한 고원 도시입니다. 장 선생님께서 계신 미국 땅에서 비행기로 불과 예닐곱 시간 거리인데, 상당히 다른 세계입니다.
1월인데도 온통 따가운 햇볕으로 가득합니다. 이곳 남반구는 북반구와 계절이 반대이기 때문이지요. 이곳 사람들은 흰 눈으로 덮인 화이트 크리스마스나 새해를 축하하는 서설(瑞雪)을 경험해 본 적도 없고 상상해 본 적도 없습니다. 이곳에 머문 지 얼마 되지 않은 저에게는 한여름에 맞는 새해가 아직도 낯설게 여겨집니다. 그런데 낯선 땅 코차밤바에서 느끼는 것과 비슷한 방문자가 된 듯한 느낌(또는 타자가 되어 버린 듯한 느낌)이 처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 어디선가 이런 낯선 느낌이 든 적이 있고, 그것도 상당히 익숙한 느낌입니다.
그게 무엇이었을까? 아! 그렇군요! 제가 영화나 책을 통해서 과학의 세계로 들어갈 때 받은 느낌이 그랬습니다. 전혀 다른 세계는 아니지만 낯선 곳에 들어선 방문객의 느낌, 이방인의 느낌은 아니지만 아무튼지 익숙하지 않는 세계에서 느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입니다. 제가 낯선 남미 땅을 여행하면서 느낀 느낌이 처음 과학의 세계에서 느낀 느낌과 비슷하다니, 과학의 영토나 남미 원주민의 땅 모두가 저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낯선 곳인가 봅니다. 저에게 이 둘 모두는 미지의 땅이고, 이 땅에 들어서는 저는 방문객이고 타자입니다.
이웃사촌, 종교와 과학
장 선생님의 '왜 지금 우리가 과학과 종교를 이야기해야 하나?'라는 편지를 코차밤바의 한가운데에 있는 '9월 14일 광장'(Plaza 14 de Septiembre, 1834년에 건설된 코차밤바 중앙광장으로, 지명인 9월 14일은 코차밤바가 세워진 날짜이다 : 필자)의 나무 그늘 아래서 읽었습니다. '종교와 과학'에 관한 편지를 읽고 있는 저에게, 이곳 광장은 우리 삶에서 종교와 과학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학자인 저에게 "과학과 종교"보다는 "종교와 과학"이라는 말이 더 익숙해서 이렇게 쓰겠습니다. 그리고 종교라는 말도 주로 기독교적 입장이 배어 있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양에서 도시의 중심은 광장이지요. 유럽이나 북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서구 문명이 지배한 거의 모든 땅에서 광장이 도시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지요. 그리고 그 광장에는 서구 문명에서 주인 역할을 한 기독교가 떡 하니 버티고 있습니다. 남아메리카도 예외는 아니지요. 물론 이곳 광장에도 대성당(La Catedral)이 자리 잡고 있고, 주변에도 몇 개의 성당이 흩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고개를 들어 보면 성당 주위에 빼곡하게 인터넷 PC방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인터넷 전화를 하고 컴퓨터 게임을 합니다. 거의 한 집 건너 하나가 인터넷 PC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동 전화 등의 통신 관련 사회 기반 시설이 뒤쳐진 나라일수록 인터넷 전화를 사용할 수 있는 PC방이 많이 보입니다.) 성당과 인터넷 PC방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웃사촌입니다. 밤에는 성당 종탑과 회랑 조명 불빛과 인터넷 PC방의 네온사인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냅니다. 종교와 과학 기술이 이렇게 만나고 있습니다.
성당과 인터넷 PC방은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도록 항상 열려 있습니다. 형형색색의 전통 복장을 한 이 땅의 주인들이나, 오래전에 정복자로 이 땅에 온 유럽 백인들의 후손들이 성당을 지나다가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잠시 후에 인터넷 PC방에 들러 전화를 하거나 게임을 합니다. 성당에서는 기도를 통해 신과 대화를 나누고, 인터넷 PC방에서는 인터넷 전화나 게임을 통해서 인간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이들에게 성당과 인터넷 PC방은 그냥 대화를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장소입니다. 전통 종교의 상징인 성당과 현대 과학 기술의 상징인 인터넷이 도시 한가운데서 나란히 이웃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모습이 우리의 삶에서 종교와 과학의 관계라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와 과학은 우리 삶의 일부
제가 보기에, 종교와 과학이 여전히 이야기되는 까닭은 이 둘이 개인이나 사회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함께 체현되는 현실적인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종교와 과학은 개인의 삶과 무관한 분리된 실재가 아니라 한 개인 안에서 함께 엮여 있는 현실적인 실재입니다.
이것은 꼭 이곳 볼리비아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닙니다. 장 선생님이 머무르고 계신 보스턴에는 하버드 대학교나 MIT를 비롯해 좋은 학교들이 많이 있지요. 그런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가운데 많은 수가 종교인, 특히 기독교인이지요. 그곳에 있는 과학자들이나 과학과 관련된 사람들 대부분이 열심히 교회에 나가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 시대에도 전자 현미경이나 입자 가속기를 통해 원자와 기본 입자의 세계를 보고, 전파 망원경과 거대한 우주 망원경을 통해 거대한 우주를 들여다보고, 수학을 사용해서 미시 세계에서 대우주까지를 설명하는 과학자가 종교를 갖는 것이 낯설지 않습니다. 24시간 실험실을 지켜야 하는 과학자가 잠시 짬을 내어 예배나 예불에 참여하고 다시 실험실로 급하게 향하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의 흔적을 찾겠다고 열심히 자연 세계를 탐구하는 기독교인도 있습니다. 이렇게 종교를 가지지 않는 과학자들도 있지만, 현대 과학을 거부하거나 무관심한 종교인도 있습니다. 여전히 불교도인 생물학자도 있고, 이슬람교도인 화학자가 있고, 천체 물리학자인 신부도 있고,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목사가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한 여전히 많은 사회에서 종교와 과학은 일정한 접점을 지니고 있는 당면한 현실입니다. 과학이나 과학 기술이 적용되는 문제를 다룰 때, 자연 과학자나 공학자뿐만 아니라, 종교나 윤리 관련 연구자나 이해 당사자들을 참여시키고 있는 것이 현대 사회의 일반적인 현실입니다. 사회적 활동인 종교와 과학은 과학 지식과 종교 신념의 충돌이라는 지적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는 다차원적 현상이지요. 그래서 이 둘에 대한 논의의 양상은 항상 복잡할 수밖에 없습니다.
종교와 과학은 여전히 개인이나 사회에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현상으로 드러납니다. 저는 종교와 과학이 구체적인 사회적 현실이며, 개인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 둘에 대한 논의를 특정한 범주로 일반화시키면서 이 둘을 파악하는 것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합니다. 다시 말해,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갈등이나 조화라는 단순한 범주로 이해하는 것은 너무 손쉬운 일반화인 동시에, 둘이 가지고 있는 역사성과 구체성과 다양성을 간과하는 접근법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 선생님도, 진화 생물학자가 쓴 최근의 종교나 종교와 과학에 대한 저작에서 이 둘을 바라보는 입장이 다양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이것이 바로 종교와 과학이 맺고 있는 관계의 현실을 단순하게 범주화시킬 수 없음을 그대로 보여 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종교와 과학의 만남, 그 과거, 현재, 미래
그럼 '왜 지금 우리가 과학과 종교를 이야기해야 하나?' 하는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저는 종교와 과학의 만남의 역사적 경험을 되돌아보고, 오늘의 만남의 현실을 파악하고, 미래로 나갈 방향을 살피는 순서로 나가는 것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코차밤바의 광장에서 고개를 들면, '크리스토 데 라 콘코르디아'라는 세계에서 제일 큰 그리스도 상(Cristo de la Concordia, 철근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6.24m의 받침대 위에 세워진 34.20m의 높이의 그리스도 상이다 : 필자)이 멀리 보입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그리스도상보다 더 큰 40m 높이의 그리스도 상이 두 팔을 벌린 채 높은 언덕 위에서 도시를,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그리스도 상이 도시를 두 팔 벌여 품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갑자기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도시를 내려다보는 높은 곳에 그리스도 상을 세웠을까?' 하고 궁금해졌습니다. '혹시 그리스도상이 도시의 모든 것, 광장의 모든 것, 성당뿐만 아니라 PC방마저 품을 것을 믿거나 기대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높은 곳에서 성당과 PC방을 함께 품는 그리스도, 종교와 과학마저도 내려다보고 함께 품는 기독교를 꿈꾼 것은 아닌가? 글쎄, 기독교인들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상의 이름을 생각하니 더 그렇게 느껴집니다. 이름에 들어 있는 "concordia"는 원래 "조화와 평화"를 의미하지요. 그래서 그리스도 상을 우리말로 하면 "평화의 그리스도"나 "조화의 그리스도"가 되지요. 어쩌면 이들에게 그리스도 상은 '종교와 과학의 조화'나, '종교와 과학의 평화'를 향은 꿈이 투사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종교와 과학의 평화와 조화의 꿈을 실현하고자 하나 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현대인은 이런 꿈을 허망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리처드 도킨스 같은 사람들은 어처구니없는 망상으로 여기겠지요. 기독교가 외래 종교인 한반도 땅에 사는 사람으로서도 선뜻 수긍할 수 없습니다.
왜 수긍할 수 없을까요? 우리는 종교와 과학이 함께 있는 것이 왠지 모르게 불편합니다. 과학 혁명과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종교와 과학은 각각 서로 다른 영토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성직자와 과학자는 다른 땅을 다스리는 두 영주이고, 이 둘은 늘 긴장과 갈등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니 종교와 과학을 하나로 품으려는 시도는 상당히 무모하게 여겨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모하다고 느끼는 이러한 시도, 즉 그리스도 안에서 종교와 과학을 함께 포용하려는 시도는 서구 기독교가 지닌 오랜 전통이었고 궁극적인 목표였습니다.
근대 이전, 종교와 과학이 두 권의 책으로 만나다
이 문제를 역사적인 측면에서 잠깐 짚어 볼까요. 제가 머무르고 있는 남아메리카를 떠나 잠시 유럽으로 가 봅시다. 4세기경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된 이래 헬레니즘과 더불어 서구 문명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과학 혁명과 계몽주의를 거치기 전까지 기독교의 권위와 영향이 절대적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서구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이 없어졌다는 말은 아니지요. 장 선생님이 지적하셨듯이 여전히 서구 사회에서 무신론자는 예외적인 사람입니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구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 어느 영역도 기독교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기독교는 서구 문명의 모태였고 심장이었습니다.
이런 서구 문명을 이끈 지성인은 누구였을까요? 유럽의 대학은 원래 성직자와 교회 관련 직무를 수행할 사람을 교육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지적 활동의 중심지가 대학과 수도원이었습니다. 당시 지식의 중심에는 기독교 성직자들이 있었던 거지요. 13세기 이슬람 세계를 통해서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과학이 중세 유럽으로 들어왔을 때, 이를 가장 먼저 접한 사람들도 성직자였습니다. 이들이 종교적 지식은 물론, 철학, 수학, 수사학, 공학 등 그야말로 '모든' 지식을 담당했습니다. '신에 관한 탐구'와 '자연에 대한 탐구'는 이들의 활동 영역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 자연 과학(science)에 해당하는 자연에 대한 탐구는 당시 '자연 철학(natural philosophy)'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죠. 중세 지성인들에게 자연 탐구는 기독교 신앙과 분리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 때까지, 자연을 탐구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교회에 속한 사람들이었으며, 자연에 대한 탐구는 기독교 신앙의 실천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중세 최고의 지성인 가운데 한 사람인 로버트 그로세테스테(1175-1253년, 아리스토텔레스 저작에 주석을 달고, 그리스 어와 아랍 어 과학 저술들을 라틴 어로 번역했다. 옥스퍼드 대학교 총장 역임하고, 기하학과 광학, 천문학 분야에 저작을 남겼다 : 필자)는 주교였으며, '중세의 갈릴레오'로 불린 로저 베이컨(1214-1294년, 영국 서머싯 출신으로, 실험 과학을 중시한 대표적 중세 인물이다. 수학, 천문학, 광학, 연금술 등에 관심을 가졌다 : 필자)은 프란체스코회 수도사였으며, 15세기의 최초 물리학자로 무한한 우주에 대한 견해를 처음으로 제시했던 쿠사의 니콜라스(1401∼1464년, 독일 출신 신학자이며 철학자로, 기하학과 논리학, 천문학 등에 관심을 가졌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지구와 같은 세계가 무한히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 필자)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추기경이었지요.
17세기에 과학 혁명의 위대한 개척자나 설립자로 불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과학이 자신들의 신앙과 조화를 이룬다고 믿었던 신앙인들이었습니다.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와 뉴턴은 그들의 새로운 견해가 자신들의 신학에서 파생한 결과라고 믿었습니다. 특히 뉴턴은 종교적인 열광자로 불릴 정도로, 전 생애에 걸쳐 신에 대한 탐구의 작업을 수행했었죠. 뉴턴에게 과학과 신학과 연금술은 분화되지 않은 통일된 전체였습니다. 이렇게 근대 물리학의 아버지 뉴턴과 근대 화학의 아버지 로버트 보일을 비롯해 18세기까지 유럽에서 과학 작업에 종사한 대부분의 과학 혁명의 선구자들은 실제로 과학자가 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신학 연구를 했던 깊은 신앙인들이었으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정식으로 신학 교육을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신학 교육이 사제가 되지 않더라도 꼭 들어야 하는 일종의 교양 과정과도 같은 것이었죠. 그중의 예외는 뉴턴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과학 혁명의 시기까지 기독교는 자연에 대한 탐구를 의식적으로 억압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장려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 권의 책"이라는 생각이 그 대답입니다. 기독교가 문화의 모태였던 당시 사람들은 신이 이 세상을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은 사람들에게는 두 권의 책, 즉 '성서라는 책(Book of Bible)'과 '자연이라는 책(Book of Nature)'을 주었습니다.
신이 성서와 자연이라는 두 권을 책을 쓴 저자이기 때문에 두 권의 책의 내용이 서로 모순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두 권의 책을 읽는 것이 저자를 훨씬 더 잘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신이 쓴, 인간을 위해 준 두 권의 책은 서로 보완하면서 그 저자를 더 잘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자연을 탐구하는 것은 장려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자연이라는 책의 탐구를 통해서 신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 기독교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전통입니다.
과학의 독립 선언, 종교에 도전하다
이런 상황이 과학 혁명과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점차 바뀝니다.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오늘날 과학을 의미하는 'science'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활용되고, 19세기 후반에는 이 분야의 작업을 전담하는 새로운 지식 계급에 '과학자'(scientist)라는 명칭이 사용됩니다. '과학자' 집단의 등장과, 이들이 자연에 대한 탐구, 즉 과학을 전담하게 되면서, 종교인들은 더 이상 모든 지적 작업을 독점할 수 없게 됩니다. 특히 자연 법칙에 따른 자율적인 세계라는 기계론적 인식과 진화론의 등장은 전통적인 기독교의 가르침을 반박하고 도전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후 자연 과학의 발전과 기술의 진보에 따라, 과학과 이를 응용하고 적용한 기술의 효율적 결과가 잘 확인되면서, 종교의 영역은 축소되고 영향은 약화됩니다.
결국 자연은 과학자의 영역(물리적 세계는 뉴턴 물리학의 영역, 생명 세계는 다윈 적자 생존론의 영역)에 속하고, 역사와 인간과 사회와 윤리 도덕은 여전히 종교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그 영역은 조금씩 넓어집니다. 종교가 맡고 있던 설명들이 하나씩 차례차례 과학적 설명으로 대치되고, 이 과정에서 종교는 수세와 방어로 일관한 것이 지난 300년간 종교와 과학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종교가 과학에게 자연이라는 영토를 순수하게 이양한 것은 아니지요. 17세기 이후 성직자와 과학자 사이에서 벌어졌던 다툼은 자연적 지식에 대한 권한과 지식 판단의 우월권이라는 특권을 어느 집단이 갖느냐 하는 주도권 싸움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19세기 전까지 서구에서 기독교와 과학이 철저하게 대립하거나 화해할 수 없는 긴장을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계몽주의라는 새로운 합리주의적 분위기에서도, 칸트나 루소와 같은 철학자들은 과학과 종교는 두 개의 분리된 영역이라고 주장했을 따름입니다. 즉 18세기까지 종교와 과학의 관계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듯이 '전쟁'으로 치달은 적이 없습니다.
종교와 과학이 전쟁 상태라는 인상을 사람들에게 심어 준 것은 구체적인 계기가 있습니다. 19세기 말에 출판된 존 드레이퍼(1811∼1882년, 영국 출생 미국 과학자, 철학자, 역사학자, 사진작가. 뉴욕 대학교 교수, 뉴욕 대학교 의과 대학 설립자, 미국 화학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 필자)의 <종교와 과학 사이의 갈등사>(1874년)와 앤드루 화이트(1932∼1918년, 뉴욕 출신으로 역사학자이며 교육자. 코넬 대학교 공동 설립자로 초대 총장이 되었으며, 이후 외교관과 미국 역사학회 초대 회장 역임했다 : 필자)의 <기독교 국가에서 과학과 신학의 전쟁사>(1896년)는 책 이름만큼이나 기독교가 과학을 전투적으로 억압했다고 표현합니다. 이 책들의 출판과, 더불어 진화론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부정적인 태도와, 창조-진화 문제와 관련해 벌어진 몇 번의 재판이 오늘날 종교와 과학이 갈등 관계나 전쟁 상태에 있다는 인상을 결정적으로 심어 주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볼 때, 종교와 과학의 역사를 갈등 관계로 보는 것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이미지일 뿐입니다. 오히려 서구 역사에서는 오랫동안 종교와 과학은 동거하던 상태였습니다. 코차밤바를 내려다보면서 종교와 과학을 한품에 안으려는 듯한 그리스도 상의 꿈은 과거의 사실(史實)과 이에 대한 향수를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는 것이라고 느껴집니다.
19세기적 화두, 종교가 더 이상 존재할 수 있는가?
오늘날 과학자들의 종교에 대한 설명, 특히 진화론적 입장에서 종교를 설명하고, 종교의 존립 문제를 논하는 것에 대해 좀 생각해 보죠. 사실 과학이 야기한 문제로 인해 종교가 고민하는 것은 이것이 처음은 아니지요. 멀리는 팔레스타인 땅에서 출발한 유대교가 지중해 문화권 전체로 확장되고 헬레니즘 문화 속에서 고대 그리스의 합리적 사유를 만날 때부터 이런 종류의 고민은 있었습니다. 가까이는 코페르니쿠스에서 뉴턴에 이르는 과학 혁명기 이후 과학의 독립 선언과 지속적인 영역 확장을 마주하게 된 기독교가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었습니다.
19세기 초에 서구 지성인 사이에서 제일 중요한 화두는 '종교가 과연 더 이상 존재할 수 있는가?' '더 이상 신학이 가능한가?'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과학 혁명과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서구 기독교의 권위와 가르침이 도전을 받았습니다. 데이비드 흄을 비롯한 많은 서구 근대 사상가들은 기독교의 권위의 정당성과, 그때까지 당연시해온 교회의 가르침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종교적 권위의 뒷받침에 의해 신비의 영역, 신의 활동 영역으로 남아 있는 많은 부분들을 순순하게 합리적이고 경험적인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연 법칙과 자율성을 지닌 세계라는 새로운 세계관은 당연히 신의 존재와 기적을 비롯해서 이제까지 신의 활동으로 여겨졌던 영역에 대한 비판을 제기했습니다.
기존의 교리가 도전받고, 세계와 자연에 대해 종교적인 설명보다 과학적이거나 자연주의적 설명이 훨씬 더 설득력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찾아왔습니다. 자연의 영역에서 자연 과학이 그 주권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은 물론이고, 점차 인간과 사회의 영역마저 자연 과학은 그 주권을 주장하게 됩니다. 이제 사회는 신이나 교회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시대로 질주하는 것 같았습니다. 자연에 대한 탐구에서 과학의 자율성뿐만 아니라, 서구 사회의 전반적인 영역이 교회로부터 또는 기독교로부터 자율성을 선언하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뭉뚱그려서 '세속화'라고도 말하지요. 이러니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종교의 위기, 신학의 위기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타났습니다. 이게 19세 초반 서구 사회의 문제, 보다 정확하게는 기독교의 문제였습니다.
물론 기독교는 이 문제를 나름대로 해결할 방도를 찾습니다. 자연 과학의 도전에 대한 19세기의 종교적 대응은 주로 과학이 침범할 수 없는 종교만의 고유한 영역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슐라이어마허, 칸트, 헤겔입니다. 이들은 자연 과학과 구별되는 종교만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영역을 각각 제시합니다. 슐라이어마허는 인간의 내면적 감정을, 칸트는 도덕이나 윤리의 영역을 과학이 침범할 수 없는 종교만의 영역으로 제시합니다. 심지어 헤겔은 역사가 바로 종교의 영역이라고 선언합니다. 이후 서구 문화에서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태도는 이 둘이 각각의 영역을 달리한 채로 각자의 길을 간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학 전통에서도 신학의 주된 관심사는 인간이나 인간의 내적 상태였습니다.
코차밤바의 광장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재미있는 현상이 눈에 뜨입니다. 사람들은 성당으로 들어가지만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습니다. 아마 잠깐 기도를 드리고 나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PC방으로 들어간 사람은 한참 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습니다. 인터넷 전화를 해도 컴퓨터 게임을 해도 금방 나오는 법이 없습니다. 성당과 인터넷 PC방 모두 거의 거쳐 가는 곳이지만 머무르는 시간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또 다른 흥미 있는 상황이 눈에 뜨입니다. 성당은 오랜 건축물입니다. 이곳저곳 훼손된 곳이 많고, 또 퇴락한 채 거의 방치되고 있는 성당도 눈에 자주 뜨입니다. 아마 성당을 수리하거나 새로 짓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PC방의 수는 나날이 늘어납니다. 물론 새로 짓고 단장한 곳이라 깔끔하고 합니다. 쇠락한 성당과 새로 단장한 인터넷 PC방의 대조는, 그리고 어느 곳에 오래 머무르는가는 퇴락한 종교와 욱일승천하는 과학이라는 오늘날 둘의 현실적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과거 서구 문명의 상징을 하늘로 치솟는 첨탑을 지닌 고딕식 대성당이라고 한다면 오늘날 우리 문명의 상징은 거대한 입자 가속기나 전파 망원경, 컴퓨터나 이동 전화가 될 것 같습니다. 문명의 상징이 바뀐다는 것은 이미 다른 문명이라는 이야기지요. 설사 기독교인이라 하더라도, 이제는 성당의 첨탑이 아니라 전파 망원경이나 휴대전화를 통해서 신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지난 300년 동안 놀라운 발전을 한 과학은 오늘날 우리 문명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과학자는 과거 중세에 성직자가 했던 역할을 대신하는 오늘의 사제와 같습니다. 종교는 여전히 존속하지만, 그 영향력은 예전과 같지 않고, 어쩌면 우리 삶과 사회에서 향신료와 같은 부수적인 존재가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연극이 끝나고 막이 내리고 무대 뒤로 사라진 줄 알았던 종교가 다시 등장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장 선생님이 언급한 것처럼, '종교 그것'이 다시 문제가 된 것이지요. 그리고 '종교와 과학'이 다시 함께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천년에 종교와 과학이 다시 만나다
서구 지성계에서 한동안 따로 놀던 '종교와 과학'은 20세기가 끝날 즈음부터 다시 서로 만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1990년대 이전까지도 종교'와' 과학 또는 종교와 과학의 '만남'이라는 주제는 사람들의 주목을 별로 끌지 못했고, 특히 학문적인 담론의 변두리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를 거치면서 동시 다발적으로 종교와 과학에 대한 학술활동과 저술이 급격히 늘어나고, 언론의 대대적 조명을 갖게 됩니다.
<자이곤: 종교와 과학 저널(Zygon: Journal of Religion and Science)> 이외에 이 분야의 학술지와 소식지가 새롭게 창간되고, 유럽과 북아메리카에 종교와 과학의 대화에 집중하는 전문 연구 기관이 15개 이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렇게 관련 연구소의 증가, 학술지의 증가, 관련 학술 행사의 빈번한 개최, 미국의 '동등 교육법'(진화론과 창조론을 과학 시간에 동등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창조론자들의 주장이 반영된 법으로 미국 아칸소 주와 루이지애나 주에서 1980년대 초반에 통과되었다가 위헌으로 판결을 받았다 : 필자) 재판 등에 대한 언론의 집중적인 주목, 관련된 학자와 저술의 급격한 증가 등이 불과 10여 년 사이에 겪은 변화입니다. 이 변화의 현실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이 아마 지난 10여 년간 엄청나게 늘어난 '종교와 과학' 분야의 출판물일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종교와 과학이 새롭게 만난다고 하는데, 도대체 누가 무슨 말을 하느냐를 조금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두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해 보지요. 하나는, 이 분야의 학술 활동이나 저작에 관련된 당사자들이 누구인가? 다른 하나는 이슈가 되는 것이 무엇인가? 그러고 나서 이런 만남에 대한 나름의 평가를 말씀드리지요.
장 선생님이 언급했다시피, 최근 들어 진화론적 입장에서 종교를 바라보는 저작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습니다. (조금 전까지 저는 대성당 옆 의자에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읽었습니다.) 생물학, 철학, 심리학, 인류학 등 각 분야에서 제시하는 종교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은 마치 온갖 색깔의 폭죽이 동시에 터지면서 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의 화려한 '절정'이자 '마지막'처럼 느껴집니다. 이것은 이전에 다른 폭죽들이 벌써 이런저런 모습으로 하늘을 밝혔다는 말이지요. 누가 폭죽을 터트렸는지 색깔별로 살펴볼까요?
'종교와 과학'이라는 주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분야별로 보면, 거의 모든 학문 분야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선 종교 쪽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신학, 종교학, 여러 분야의 생물학, 철학, 역사학, 인류학 등등을 언급할 수 있겠네요.
물론 전공 분야에 따라 종교나 과학 또는 종교와 과학을 바라보는 태도가 획일적인 것은 아닙니다. 신학자라고 과학에 대해 모두 부정적이라거나, 과학자라고 해서 종교에 부정적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종교와 과학에 관련된 사람들의 태도는 매우 다양합니다. 예를 들면, 기독교인 가운데서 현대 과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종교와 과학의 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진화론을 비롯한 현대 과학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한 장 선생님도 언급하셨듯이, 진화 생물학자 가운데서도 종교의 가치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 종교와 과학이 다른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 종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사람 등 여러 부류가 있습니다.
신학이나 종교 쪽에서 보면, 자연 과학과 대화는 두 부류로 나뉩니다. 우선 대화에 적극적인 대표적인 사람들로, 아서 피코크, 존 폴킹혼, 이언 바버, 로버트 러셀, 셀리아 딘드럼먼드 등을 언급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과학자-신학자(scientist-theologian)'로 불리는데, 자연 과학 분야의 박사 학위 소지자로 과학계에서 활동하다 성직자가 된 사람들입니다. 또한 테드 피터스, 필립 헤프너, 존 호트 등의 신학자들이 종교와 과학의 대화에 적극적입니다. 한편으로는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죠. 창조 과학자나 지적 설계론자의 공통점은 이 세계가 지성을 가진 존재, 즉 신적 존재에 의해 설계(design)되었으며, 진화론을 반대하죠. 윌리엄 뎀스키, 마이클 비히, 필립 존슨, 뒤앤 기시(Duan Gish) 등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자연 과학이나 철학 쪽에서 보면 많은 사람을 언급할 수 있을 겁니다. 근래 종교에 관한 저작을 출판한 사람들로, 대니얼 데닛, 스콧 애트란, 파스칼 보이어, 스티븐 핑커, 마이클 루스,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제이 굴드, 에드워드 윌슨, 데이비드 윌슨 등등. 모두 화려한 스타들이죠. 물론 이들 중 몇을 제외하고는 종교에 대해 비교적 진화론적 시각에서 설명하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와 달리 프랜시스코 아얄라, 케네스 밀러, 존 러프가드 등은 자연 과학자이면서 과학 지식과 기독교 신앙과 조화를 시도하는 사람들입니다.
현재 진행되는 종교와 과학의 대화는 관심에 따라 몇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종교와 과학의 역사적 상호 작용에 대한 관심인데, 주로 과학사가들이나 역사학자들이 논의에 참여합니다. 존 부룩, 데이비드 린드버그, 로널드 넘버스, 리처드 올슨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둘째로 종교와 과학의 방법론에 관심을 가지면서 둘 사이의 구조적 유사성이나 차이 등을 논의합니다. 주로 과학 철학이나 종교 철학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웬츨 밴 호이스틴, 낸시 머피, 마이클 스텐마크 등을 언급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종교와 과학의 이슈를 주로 '창조와 진화', '인지 과학과 종교', '대폭발과 창조', '인공 지능과 종교'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종교와 과학의 대화를 다루는 학자들은 직・간접적으로 이런 논의에 참여합니다.
왜 종교와 과학이 최근에 다시 논의되는가?
그렇다면 최근 들어 종교와 과학에 관한 관심과 논의가 급격히 증가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런 변화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나타난 결과이지만, 저는 그 요인을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으로 나누어 살펴보려고 합니다. 내적으로 신학과 과학은 각각 자신의 지적 능력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자기 학문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고 서로를 보는 시각에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사회적・경제적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가 길어졌기 때문에 아주 간략하게 말씀드리죠. 먼저, 신학은 20세기 후반부터 다른 사회적 활동과 마찬가지로 신학 작업 역시 구성적(constructive)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신학 역시 시대와 상호 작용하면서 새롭게 만들어진다는 인식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동안 경원시했던 자연 과학에 익숙해질 필요성이 생겼습니다. 생태 문제와 관련한 생태 신학 작업에서 자연 과학의 도움이 필요해졌고, 현대 과학 기술의 성취로부터 현대 신학이 해결해야 할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새롭게 제기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과학을 이해할 필요성이 증가함에 따라 신학자들과 종교인들은 최근 과학의 본질에 대한 과학 철학의 논의 등을 꼼꼼하게 살피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을 기반으로 과학의 객관성과 중립성 등에 문제의식을 갖게 되고, 과학이 더 이상 만능열쇠가 아니라는 인식을 갖게 됩니다. 그 결과 과학을 무조건 피하던 태도를 바꾸게 됩니다. 자기 한계를 인식하게 된 것이, 서로를 보는 눈을 바꾸었으며, 오히려 대화를 촉진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렇게 과학의 자기 한계를 직시하는 흐름과 조금 다른 과학적 흐름도 있습니다. 과학 지식의 영역이 확장되면서, 자연 현상 말고도 인간 문화의 모든 영역을 과학적 관점에서 일관성 있게 발언하려는 시도가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아마 이것은 과학자들이 한 명의 학자로서 당연히 마주하게 되는 지적 도전이겠지요. 사회 생물학이나 진화 심리학 등의 관점에서 종교를 바라보는 시도는 이런 흐름에 속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외부적 요인, 즉 사회적・경제적 측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종교와 과학에 대한 담론이 거의 서구 기독교권, 특히 영미를 중심으로 영어권에서 전개되고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문제는 기독교 영향 아래에 있는 사회에서 발생한 것이죠.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야기되는 결과가 기존의 기독교 가르침과 충돌을 일으킬 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사회적 압력이 증가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아직도 지속되는 창조 대 진화 논쟁, 유전자 조작과 생명과 인권 논쟁 등 이런 문제는 사회적 압력으로 작용해서 관련된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와 과학의 문제를 다루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물론 언론도 여기에 일조하고 있고요. 여기에 경제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1990년대 들어 존 템플턴 재단(John Templeton Foundation, 영국 투자가였던 존 템플턴 경이 1987년에 세운 재단으로 흔히 템플턴 재단으로 불린다.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 상을 매해 수여하며, 최근에는 과학과 종교(영성)에 관련해서 집중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 필자)은 종교와 과학의 대화를 촉진하기 위해 학술 활동에 엄청난 지원을 했고 이것이 '종교와 과학'이라는 주제의 복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출판사들의 상업주의도 많은 서적들이 출판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지적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왜 지금 종교와 과학을 논의하는가?'에 대한 제 입장을 좀 더 거시적으로 이야기하면서 답장을 마무리 할까 합니다.
저는 종교와 과학은 인류가 오랜 역사 과정에서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 낸 '메커니즘'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예술이나 정치나 경제도 일종의 메커니즘입니다. 메커니즘 대신 '생존을 위한 시스템'이나 '모듈'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습니다. 인류나 또는 특정 사회는 생존을 위한 메커니즘을 다양하게 가지고 있고, 동시에 사용합니다. 각 메커니즘은 일정 부분 자기 영역과 자기 담론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다른 메커니즘과는 서로 보완적일 때도 있고 경쟁적일 때도 있습니다. 인류는 이런 메커니즘 하나에만 독점적 지위를 주지 않고, 상황과 필요에 따라 다양한 메커니즘의 비중을 달리하면서 각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조정합니다.
그런데 특정 메커니즘이 그 메커니즘이 만들어진 기능이나 활동하는 영역을 벗어나서 지나치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 인류나 특정 사회는 자동적으로 자율적으로 그 비대해진 특정 메커니즘을 제어하려고 합니다. 즉 특정 메커니즘의 독주로 인해 인류나 특정 사회가 생존의 위협을 받거나 적응의 정도가 심하게 훼손될 때, 그 메커니즘을 제어하기 위해 다른 메커니즘을 사용하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종교가 사회의 생존을 위협할 지경에 이를 때, 종교는 다른 메커니즘에 의해 속박을 받았습니다. 그 제어 과정이 혁명처럼 과격하게 이루어진 경우도 있었고, 지속적이고 완만한 사회적 변화 속에서 이루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서구 문화에서 종교에서 과학으로의 주도권 이행을 과도한 종교의 역할에 대한 인류 또는 서구 사회의 자동적인 제어 과정이라는 흐름에서 보고 싶습니다. 저는 오늘날 종교와 과학의 만남을 강요하는 듯한 사회적 압력 또한 마찬가지 시각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류의 생존력 강화를 위해 봉사해야 할 과학이라는 메커니즘이 이제는 핵무기나 환경 파괴 등의 부작용을 통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에 이르자, 과학을 제어하기 위한 다른 메커니즘이 부상해야 했고, 그 역할이 현재 종교에 맡겨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다른 경제나 정치와 같은 메커니즘도 있지만, 가장 큰 제어 역할을 종교라는 메커니즘에게 맡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교가 뭔지 과학이 뭔지 잘 알고 있는가? 이 둘이 서로를 보는 시선은 무엇인가? 이런 것이 더 궁금해집니다.
'왕의 귀환'인가 '탕자의 귀가'인가?
저는 서구 기독교 문화권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과학자들이 종교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이나, 신학자들이 과학과 치열하게 대화하려고 하는 최근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느낌을 갖게 됩니다. '우리 안의 타자', 서구 사회에서 종교와 과학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구 문화에서 한때 함께 지내다 언제부터인지 서로에게 타자가 되어 버린 종교와 과학이 다시 만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자의 귀환!
종교와 과학이 다시 만났습니다. 그렇다면 종교와 과학은 서로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무척 궁금합니다. '왕의 귀환'인지 '탕자의 귀가'인지? <반지의 제왕>처럼 왕의 귀환을 통해 당면한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고 할지,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실패한 아들로 여길지는 앞으로의 만남이 보여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서로가 타자성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고 여겨집니다.
이를 위해서 내 안의 타자성을 서로 확인하고, 우리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를 토대로 종교는 과학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과학은 종교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좀 더 논의를 이어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김윤성 선생님께서 도대체 종교가 무엇이고, 과학이 무엇인지, 비슷한 점이 있다면 그것대로,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대로, 좀 이야기를 풀어 주시길 기대합니다.
여행은 우리에게 일상적인 상식을 깨는 경험을 줍니다. 남반구에서는 햇볕 따뜻한 양지는 북쪽입니다. 당연히 북향집이 훨씬 비싸지요. 한 여름에 성탄절과 새해를 맞이합니다. 여행은 저를 낯선 것에 익숙하게 만들고, 새롭게 배우게 합니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언어가 다른 낯선 사람들과 만날 때는 더욱 조심스럽습니다. 그때는 공통의 의사소통 수단이 필요합니다. 제가 스페인어를 하거나 이곳 사람들이 한국어를 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둘 다 불가능하다면 대안을 찾아야죠. 가령 영어로 이야기를 한다거나 말입니다. 둘 모두가 자신의 언어만을 고집한다면 서로의 의사소통은 힘들고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아주 어려워집니다. 그냥 배움의 태도가 우선인 것 같습니다.
저는 종교와 과학의 만남도 여행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낯선 타자와의 만남, 이것에 필요한 것은 상대방의 언어를 이해하는 과정이겠죠. 아니면 의사소통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가 필요하거나. 자신의 언어만을 말하는 것은 독백이며, 다른 말하면 지역주의나 영역주의를 고수하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종교와 과학의 만남으로 인해서, 종교가 존재 근거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까지 온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귀 기울임의 태도라고 여겨집니다. 김윤성 선생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2007년 1월 3일
코차밤바에서
신재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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