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경제개혁연대가 지난 1980년 이후 삼성그룹 계열사의 타법인 출자현황을 조사한 결과 이같은 삼성특검과 삼성측의 주장('삼성생명의 차명 주식 전부는 이병철 회장의 유산')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졌다.
경제개혁연대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병철 회장의 사망 이후인 1987년 말 현재 삼성생명의 주식은 신세계와 제일제당(현 CJ)이 각각 29%와 23%를 갖고 있었다. 따라서 삼성그룹 임직원 명의의 차명 주식 지분은 48%를 넘을 수가 없다. 그런데 삼성특검 결과 확인된 임직원 명의의 차명 지분을 모두 합치면 51.75%에 이른다. 3.75%의 오차가 발생한 것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이어 이건희 회장 재임 시절인 1988년 9월 삼성생명의 유상증자 시 신세계와 제일제당이 증자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실권된 26% 지분의 향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만일 실권주 전부가 삼섬그룹 임직원들에게 차명으로 인수됐다면 삼성생명의 지분 중 최대 26%가 이병철 회장이 사망한 뒤인 1988년 9월 유상증자 시점에 만들어졌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임직원 지분, 48% 못 넘어"…특검 수사 결과와 모순
경제개혁연대가 한국신용평가정보(Kisline)를 통해 확인한 결과에 따르면, 이병철 선대회장 사망 당시 삼성 임직원 명의의 삼성생명 지분은 48.00%를 넘을 수 없다.
과거 삼성 계열사였던 신세계와 제일제당(현 CJ)이 1984년 말부터 1987년 말까지 각각 29.00%와 23.00%의 삼성생명 지분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체 지분에서 이들 두 법인주주의 지분을 빼면, 48.00%가 된다.
그런데 특검 수사 결과 확인된 임직원 명의의 삼성생명 차명지분을 모두 합치면 51.75%에 이른다. 특검과 삼성은 "삼성생명 차명주식 전부가 임직원 명의로 차명된 상태에서 이병철 선대회장이 작고한 1987년에 이건희 회장에게 상속됐다"고 밝혔다.
한국신용평가정보 자료가 사실이라면, 특검과 삼성이 거짓말을 한 셈이다. 법인이 아닌 삼성 임직원의 지분이 51.75%로, 48.00%를 넘기 때문이다.
"신세계와 제일제당 실권주, 어디로 갔나?"
경제개혁연대는 24일 이런 내용이 담긴 논평을 발표했다. (☞ 논평 전문 보기)
이날 논평에 따르면, 특검이 1987년 차명상태로 이건희 회장에게 상속됐다고 판단한 51.75% 가운데 최소 3.75%, 최대 26.00%의 지분의 행방이 묘연하다.
한국신용평가정보 자료에 따르면, 신세계와 제일제당의 삼성생명 지분율은 1988년 절반으로 줄었다. (신세계: 29.00%→14.50%. 제일제당: 23.00%→11.50%)
이는 1988년 9월, 삼성생명이 실시한 주주배정 방식의 유상증자(자본금 30억 원에서 60억 원으로 증자)에서 신세계와 제일제당이 실권하면서 빚어진 결과다.
따라서 이들 2개 법인주주가 유상증자에 참가하지 않아서 발생한 실권주 26.00%(신세계의 실권주 14.50%와 제일제당의 실권주 11.50%의 합계)를 누가 인수했는가에 따라 1988년 9월, 즉 이병철 선대회장 사망 이후 이건희 회장 재임 시점에 이루어진 차명지분의 규모가 확인될 수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날 논평에서 "1999년 9월 당시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소속 정세균 의원이 발간한 '재벌개혁의 방향과 정책과제 - 기업구조조정의 성과를 중심으로'에 따르면, 1994년 1월 현재 신세계와 제일제당의 삼성생명 지분은 각각 14.50%와 11.50%로 1988년 9월의 유상증자 이후 변동이 없으며, 두 법인주주의 지분 26.00%와 삼성특검이 차명이라고 확인한 삼성그룹 전현직 임직원들의 지분 51.75%를 제외한 나머지 지분 22.25%는 이건희 회장(10.00%, 187,200주), 삼성문화재단(5.00%, 93,600주), 삼성에버랜드(2.25%, 42,100주)와 고 이종기 전 삼성화재 대표이사(5.00%, 93,600주)가 보유한 것으로 확인된다"고 지적했다.
"3.75~26% 지분, 행방이 묘연하다"
이어 경제개혁연대는 신세계와 제일제당 지분, 특검이 차명으로 확인한 삼성 전·현직 임직원 지분을 제외한 나머지 지분의 합 22.25%와 실권주 26.00%의 차이에 해당하는 3.75%의 행방을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검과 삼성 측의 설명을 사실로 인정하면, 논리적 모순이 생긴다는 지적이다.
결국, 행방을 알 수 없는 삼성생명 지분 3.75%는 이병철 선대회장이 사망하고, 이건희 회장이 재임하던 시기인 1988년 9월 유상증자 시점에 만들어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물론 이는 신세계와 제일제당의 실권주 26.00% 가운데 일부인 22.25%를 이건희 회장, 삼성문화재단, 삼성에버랜드, 고(故) 이종기 전 삼성화재 회장 등이 인수했다는 가정을 따른 경우다.
만약 이건희 회장, 삼성문화재단, 삼성에버랜드, 고(故) 이종기 전 삼성화재 회장 등이 실권주를 전혀 인수하지 않았다고 가정하면, 전체 지분의 26.00%(신세계와 제일제당의 실권주 전체)의 행방이 묘연해진다. 그리고 이 지분 역시 이병철 선대회장이 사망하고, 이건희 회장이 재임하던 시기인 1988년 9월 유상증자 시점에 만들어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어떻게 가정하건, "삼성생명 차명주식 전부가 임직원명의로 차명된 상태에서 이병철 선대회장이 작고한 1987년에 이건희 회장에게 상속됐다"라는 특검과 삼성의 주장은 사실로 볼 수 없게 된다.
"왜 '1988년 9월'인가?"…이건희, 삼성생명 상장 차익 노렸나
여기서 눈에 띄는 대목이 '1988년 9월'이라는 시점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이 시점에 대해 "교보생명과 삼성생명을 포함한 생명보험사의 상장 움직임이 가시화되던 때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삼성생명을 둘러싸고 일어난 일을 정리하면, 이렇다.
"삼성생명의 상장 움직임이 본격화되던 무렵,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그런데 삼성 계열사인 법인주주가 막대한 기대이익을 포기하고 실권했다. 그리고 총수 및 그의 영향력 아래 있는 이들이 실권주를 인수했다. 또 임원들의 명의를 빌려 지분을 인수해 관리했다."
낯익은 장면이다.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 씨가 재산을 불린 수법을 떠올리게 한다. 이재용 씨는 에스원, 제일기획 등 삼성 계열사의 상장 직전에 법인주주를 대신해서 지분을 취득하고 상장 직후 매각하는 방법으로 막대한 이익을 거뒀다.
'이재용 재테크'와 비슷한 수법…"검찰의 추가수사를 요구한다"
1988년 9월, 삼성생명을 둘러싸고 일어난 일들에 대해 경제개혁연대는 "결국 상장차익을 이건희 회장이 취득할 목적으로 진행된 것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경제개혁연대는 "더군다나 유상증자 → 실권 → 제3자의 실권주라는 부당한 재산취득과정을 통해 취득한 재산이라면 이를 선대회장의 상속재산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일"이라고 못박았다.
이런 내용을 설명하며, 경제개혁연대는 "특검과 삼성그룹의 명확한 해명과 검찰의 추가수사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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