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불법체류자 만들고선 '나 몰라라!'하는 사업주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불법체류자 만들고선 '나 몰라라!'하는 사업주들

석원정의 '우리 안의 아시아' <57> "사업주의 작은 배려가 아쉽다"

몽골인 A씨는 경기도 소재 B 회사에 취직하였다. 정상적인 구직절차를 거쳐 고용지원센터의 알선으로 얻은 직장이었다. 직장이 확정되었으니 사업장 관할 고용지원센터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신고 및 신청을 해야 한다. 고용지원센터에는 사업장에 채용되었음을 신고하고, 출입국관리사무소에는 근무처변경허가 신청서를 내야 한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은 고용을 전제로 체류가 허용되므로 사업장 퇴사-입사와 같이 고용사실이 변경되는 것은 체류 자체를 좌지우지하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위와 같은 절차를 거치지 위해서는 고용되어 있다는 증명서가 필요한데, 고용허가서, 표준근로계약서 사본, 사업주 신원보증서, 사업자등록증 사본, 외국인등록증 및 여권 등이 필요하다. 이런 신청들은 사업장이 변경된 후 14일 이내에 해야 하고 이 절차는 원칙적으로 이주노동자 자신이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위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이주노동자가 하루나 이틀 동안 일을 쉬어야 하고 사업장 관련 서류 등이 필요하다 보니 사업주 측에서 절차를 대신 밟아주겠다면서 이주노동자들의 여권과 외국인등록증을 가져가서 필요한 신고를 해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업주나 관리자가 직접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종류의 서류대행을 해주는 사람에게 3만원 정도의 수수료를 주면서 맡기는 경우도 많다. 대신 그 수수료는 이주노동자에게 부담시키고 있다.

A씨의 경우도 그랬다. 사업주가 신고를 대신 해주겠노라고 했다. 그런데 일이 바빠서인지 어쩐지 사업주는 차일피일 신고를 미루었고, 그 사이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A씨에게 허용된 기간을 넘겨버렸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공백없이 체류자격을 유효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허용된 기간은 최대 3개월이다. 퇴사후 한달 이내에 고용지원센터에 구직자 등록을 해야 하고, 구직자 등록 후 두달 이내에 신규회사에 취직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주 예외적인 사유가 있어서 그 기간이 잠시 연장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이와 같다.

그 기간을 넘겨버리면 불법체류자가 되고 불법취업이 되고, 불법채용이 되고 만다. 때때로 납득할 만한 부득이한 사유가 있어서 신고가 늦어진 경우에는 법무부에서 아량을 베풀어 늦어진 기간만큼 벌금을 내고 합법체류자격을 회복하기도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간이 다 지나버려 졸지에 불법체류자가 되어버린 A씨는 초조해졌다. 이후에도 사업주에게 여러 차례 채근하였지만 사업주는 자꾸만 미루기만 했다. A씨의 정당한 근심과 억울함을 해결해주기 위해 사업주와 통화하였지만 사업주는 '알아서 한다'면서 제대로 상대해주지도 않았다.

이처럼 사업주가 정상적인 절차를 미룬 덕분에 멀쩡한 합법체류자가 불법체류자가 되어버리면 이후 사업주들은 어떻게 처신할까.

불법체류자를 채용한 꼴이 되어버린 사업주 중 어떤 사람들은 그 부담감 때문에 멀쩡한 이주노동자를 내쫓아버린다. '불법체류자가 됐으니 더 채용할 수 없다' 면서.

더 많은 수의 사업주들은 신고해태에 따른 벌금을 이주노동자에게 부담시켜서 합법체류자격을 회복시킨 후 계속 채용한다. 사업주의 잘못으로 불법체류자가 되어버린 것도 억울한 데 벌금까지 내야 하는 상황에 처한 이주노동자는 이중으로 억울해하지만 계속 고용되기 위해서 그냥 참고 만다.

A씨 전에도 이런 상담이 몇 번 들어오긴 했지만 다른 더 심각한 문제들과 경합되어 있는 경우이다 보니 심각한 순서대로 해결해나가면서 이 문제는 어찌어찌 뒷전으로 밀리곤 했었다. A씨의 경우는 경합된 다른 문제는 없었다.

그 간의 경험을 떠올리건대 사업주에게 부탁하고 어쩌고 한다고 해서 빨리 해결할 것 같지도 않았고, 그래봤자 (신고해주는 것이 인심 쓰는 기분이 드는지) 사업주는 아주 당연히 벌금을 이주노동자에게 물릴 것이 뻔히 예측되는 지라 이번에는 다른 방법을 썼다. 관할 고용지원센터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진정서를 보낸 것이다. 해결해달라고.

며칠 있다가 고용지원센터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고용지원센터에서 사업주에게 연락을 취하였고 사업주가 며칠 내로 신고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제도가 정상적으로 가동되기 위해서는 사업주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사업주의 비협조로 합법체류자가 불법체류자가 되어버리고, 그 피해를 이주노동자에게 지운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비상식적인 일이다.

우리 같은 지원단체에서는 수시로 이주노동자들에게 신고는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이니 사업주에게 일방적으로 맡기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지만, 사업주의 허락 없이 하루도 쉴 수 없고, 사업자등록증과 사업주 신원보증서를 이주노동자가 임의로 습득할 수도 없는데 신신당부가 무슨 효과가 있으랴. 뒷맛이 씁쓸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