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단체연석회의, 진보네트워크,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사회단체는 22일 서울 광화문 외교통상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주장은 허구"라며 비자면제프로그램 가입을 규탄했다.
"오히려 비자심사는 강화되는 꼴"
지난 20일 이 대통령의 방미에 동반했던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 마이클 처토프(Michael Chertoff)와 한국의 미국 비자면제프로그램 가입을 위한 양해각서(MOU)에 함께 서명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인들도 빠르면 올해 안에 관광과 사업 등의 목적으로 90일 이내 단기체류를 위해 미국을 방문할 경우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이명박 대통령은 이번 양해각서 체결을 미국 방문의 성과 중 하나로 평가했다.
이에 대해 천주교인권위원회의 조백기 활동가는 "정부가 추진하는 비자면제프로그램은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편익성 뒤에 국민에 대한 기만을 감추고 있다"며 "이를 국민들이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진보네트워크 센터의 김승욱 활동가는 "이 제도는 비자면제라는 미명 하에 오히려 비자심사를 강화하는 꼴"이라며 "한국 국민들의 개인정보가 미국 정보기관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심각한 인권침해를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비자면제프로그램이 실제로는 '비자면제'가 아닌 또 다른 형태의 '전자비자'라고 지적했다.
미국을 방문하려는 한국 국민들은 지금까지는 대사관에 직접 방문해 심사를 받고 비자를 발급 받았지만 이 프로그램이 도입되고 나면 여행사에서 표를 사는 순간 미 정부의 심사를 받게 된다. 항공사 전산을 통해 여행객 개개인의 전과와 인적 사항 등이 자동으로 처리되면서 입국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전자여행허가제'라 불린다.
비자면제프로그램에 가입한 국가의 국민은 직접 상대방 국가의 대사관으로 가는 번거로움을 더는 대신 정부가 자신의 정보를 여행사 측에 제공하는 것을 용인해야 한다. 비자면제프로그램에 따라 이전보다 더 많은 정보를 외국 정부에 제공해야 한다는 점에서 입국심사가 오히려 강화된다는 것이 인권단체의 지적이다.
한편, 개인정보를 미국 정보기관에 공개하는 것은 '여행자정보공유협정'이 포함된 비자면제프로그램에 가입하기 위한 필수 사항이다. 외교통상부는 이 협정에 대해 '미국과 협정을 통해 가입국 국민의 미국 여행 시 미국의 안보와 복지에 위협을 주는지 여부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인권단체들은 "개인의 전과 등의 인적 사항은 한국에서도 검찰과 경찰만이 조회해볼 수 있는 정보"라며 "이것을 미국 정보기관에 제공하는 것은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주장했다.
"지문날인을 여권에 담는 건 '인권포기' 다름 없다"
이들은 비자면제프로그램 가입에 따라 기존의 사진전사식 여권이 지문을 날인하는 전자여권(생체여권)으로 바뀌는 것에 대해서도 "지문날인을 하고 이를 여권에 담는 것은 인권침해를 넘어 인권포기라고 부를 만하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생체정보가 기존의 개인정보와 결합할 때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정부에 의해 감시될 수 있다"며 "또 전자여권이 교통카드처럼 비접촉식(RFID)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방식이기 때문에 멀리서도 정보를 유출해낼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외교통상부는 원거리에서의 정보유출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그렇다면 가까운 거리에서는 가능하다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참석자들은 종로구청으로 이동해 사진전사식 여권을 발급받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들은 "정부가 무리하게라도 2010년 전자여권 전면화를 실시하게 될 경우 그전까지 전자여권보다 인권침해의 소지가 적은 사진전사식 여권을 발급받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앞으로 △지문정보가 수록될 전자여권 발급 거부 △미국 비자면제프로그램 이행을 위한 전자여권 발급 거부 △전자여권 재발급이 전면화되기 전 사진전사식 여권 발급 등의 대응 행동을 전개해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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