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대통령 선거당시 여당 후보에게 일괄적으로 투표하라는 군부대 내에서의 부정 투표와 함께 이를 거부한 사병을 구타로 숨지게 한 사실이 의문사위 조사결과 밝혀져 큰 파문이 일고 있다.
***의문사위, 87년 대선 당시 군 부대 부정투표 거부하다 숨진 사병 의문사로 결정**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87년 12월 4일 정연관(당시 20. 상병)씨가 군 부재자 투표에 조직적인 부정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지시불복종을 이유로 가해진 구타 때문에 숨진 사실을 밝혀내고, 정씨에 대해 의문사 결정을 내렸다고 14일 밝혔다.
의문사위 결정문은 당시 정씨가 복무하던 경기 고양시 육군부대에서는 간부들에 의해 공개투표 등 부정선거가 저절러졌으며, 정씨는 자신이 속한 내무반에서 야당에 투표한 사람이 3명 나왔다는 이유로 기합을 받던 중 맞아 숨진 것으로 밝혔다.
좀더 구체적으로 결정문을 살펴보면 당시 중대장 K씨는 내무반장 H씨와 병장 B씨를 불러 "야당 찍은 놈이 3명이나 나왔다"며 질책했다. 내무반장 H씨는 내무반원 10명을 집합시킨 후 "왜 교육받은 대로 여당을 찍지 않았느냐, 야당 찍은 놈들이 누구냐"고 추궁했고, 교육 담당이던 병장 B씨가 이들을 구타하던 중 정씨가 숨진 것으로 조사됐다.
***보안사 등 군부대, 정씨 사망 은폐-왜곡 시도**
한편 부당한 명령에 저항하다 정씨가 숨졌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군은 이 사건을 단순 구타로 인한 사망으로 은폐를 시도했던 사실도 아울러 밝혀졌다.
당시 중대장은 정씨의 사망을 단순 구타사고로 왜곡했다. 의문사위는 "대통령 선거를 며칠 앞두고 보안사령부 지시로 이뤄진 담당 보안대의 조사 과정에서도 사건을 은폐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병장 B씨는 의문사위에서 "중대장이 내무반원들한데 '정 상병이 부재자 투표와 관계없이 전술훈련을 앞두고 군기를 잡기 위한 기합을 받다 단순 구타사고로 숨졌다고 헌병대에 진술하라'고 지시했으며, 모두 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했다. 또 내무반원들은 헌병대 조사 도중 보안대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사건의 진상을 그대로 밝혔으나, '입조심하라'는 강요를 당했다고 진술했다. 내무반장 H씨도 "보안대 요원이 '군 부재자 투표와 전혀 관련이 없는 것으로 진술하고, 이 사실을 절대 외부에 누설하지 말라'고 강요했다"고 진술했다.
한편 의문사위는 "당시 보안대 담당자들이 의문사 조사에서 이런 사시을 부인하고 기무사(보안사의 후신)의 비협조로 추가조사가 이뤄지지 못했으나, 보안사가 이 사건을 은폐·조작하려 했던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의문사위는 ▲군 부재자 투표에 대한 부대의 위법한 운영이 정씨 사망의 원인으로 작용한 점, ▲정씨가 권위주의적 통치로부터 참정권을 지키기 위해 저항한 점 등을 들어 의문사로 결정했다.
이밖에 의문사위는 "당시 군 간부들은 투표자에서 민정당 노태우 후보의 기호 1번이 위로 올라오도록 접어 1번을 찍도록 유도하거나, 투표용지를 책상 위에 펼쳐 놓고 도장을 찍게 했다. 심지어 투표한 용지를 검사하기도 했으며, 투표를 앞두고 매주 '정신교육'이나 개별면담 등을 통해 사병들한데 여당을 찍도록 교육시켰다"며 87년 대선당시 군 부대에서 조직적으로 여당 몰아주기 투표를 강요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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