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후 1시경. 서울시청 앞에 수십 명의 상인이 모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상인들은 '서울시의 폭력 진압 사과'와 함께 오세훈 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이들은 동대문운동장 풍물시장의 노점상인이었다.
노점상의 반발은 서울시의 동대문운동장 철거 작업 때문에 일어났다. 서울시는 오세훈 시장이 들어서면서 동대문운동장을 허물고 이곳에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건립을 추진 중이다. 서울을 '명품도시'로 만들겠다면서 오세훈 시장이 추진하는 사업 중 하나다.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기 위해 풍물시장 상인들은 제기동 옛 숭인여중 부지로의 이전을 요청받았다. 전체 890여 명의 상인 중 100여 명이 반발했다.
서울시는 반발하는 상인들을 제외하고 협상을 계속했다. 많은 상인들이 제기동 풍물시장 터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반발하는 상인들은 '상인협회'를 조직하고 "풍물시장 이전 반대"를 주장했다. 서울시는 "협상이 이뤄졌다"며 반발하는 상인들에게 운동장을 떠날 것을 요구했다. '상인협회'는 이름을 '풍물시장 사수대책위(대책위)'로 바꾸고 동대문운동장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양연수 대표는 조명탑에 올라가 19일간 농성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 "오세훈 시장 업적 위해 우리가 죽어야 하나")
16일 새벽 3시 30분 경, 아직 요구에 따르지 않는 상인들을 몰아내기 위해 서울시는 500여 명의 용역 직원들을 동대문운동장에 투입했다. 진압은 30여 분 만에 완료됐다. 대부분의 상인이 운동장 밖으로 밀려나왔다.
'당연히' 진압에는 폭력이 동원됐다. 조기준 씨(60)는 얻어맞아 오른쪽 눈 부위가 함몰됐다. 여자라고 예외가 없었다. 선병숙 씨는 목뼈를 다쳤다. 상인들은 서울시를 "깡패집단"이라고 비난했다.
"굶어 죽나 싸우다 죽나 마찬가지"
이날 회견장에서 풍물시장 사수대책위(대책위) 양연수 대표는 오세훈 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그러나 시청 진입은 불가능했다. 경찰이 방패를 들고 문 앞을 사수하고 있었다. 분노한 상인 일부가 경찰을 밀치고 진입을 시도했다. 훈련을 받은 앳된 모습의 경찰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나이 든 상인들이 시청 문을 열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할머니들, 거기서 뭐해요? 다 올라와요! 이제 굶어 죽으나 여기서 죽나 마찬가지 아니요!"
경찰들의 방어는 이들을 더 흥분시켰다. 오세훈 시장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상인들을 동대문운동장으로 이주시킨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서도 비난이 쏟아졌다. 동대문운동장 풍물시장 상인 대부분은 과거 청계천 근방의 노점상이다. 이 대통령이 동대문운동장에 지금의 풍물시장을 만들고 이들을 이곳으로 흡수했다.
한 시간가량이 지나 서울시 관계자들이 양 대표에게 면담을 요구했다. 그러나 협상 과정에서 달라진 것은 없었다. 김민걸 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서울시는 우리를 협상 상대로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며 "폭력은 용역업체의 과잉진압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서울시의 책임이 아니라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시위 길어질 수도
동대문운동장 풍물시장으로 들어가는 길은 이미 막혀 있었다. 커다란 컨테이너 박스 두 개가 입구 앞에 놓여 있었다. 진입로 곳곳에 경찰들이 자리를 잡고 서 있었다.
장사하던 곳에서 쫓겨난 상인들은 정문 앞에 천막을 쳤다. 여러 명의 상인이 이곳에 모여 목을 축이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 이들을 쳐다보곤 했다.
상인 간의 이권 경쟁도 있는 듯 보였다. 김 위원장은 "다른 상인들이 우리 자리를 노리고 있다"며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공감해주면 좋겠다"고 한탄했다. 실제 주변 노상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은 이번 진압 문제에 큰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시에서 옮기라면 따를 것'이라는 게 길에서 만난 상인들의 입장이었다.
서울시의 동대문운동장 철거는 시작됐다. 하지만 이들의 반발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 집행위원장은 "장사 투쟁 등을 계속 해나갈 것"이라며 "상권도 안 좋은 제기동 풍물시장으로 이전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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