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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한 자들을 위한 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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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한 자들을 위한 송가

[뷰포인트] <삼국지:용의 부활>이 담고 있는 진짜 의미

조조의 손녀 조영(매기 큐)과 봉명산에서 마지막 혈전을 준비하는 상산 조자룡(유덕화)의 허리춤에는 이미 화살이 깊히 박힌 상태다. 그에게 봉명산은 이제 곧 무덤이 될 터이다. 봉명산으로 떠나기 전 제갈량은 그에게 사실상 '옥쇄 전투'를 명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자룡은 조영과의 목숨을 건 일합을 겨루기 위해 말위에 오르면서 수십년전 젊은 시절 고향 상산에서부터 온갖 전투에서 동고동락해 왔던 선배 나평안(홍금보)에게 이렇게 말한다. "형님 우리 고향 상산으로 가 이렇게 전해주시오. 나 조자룡, 결국 큰 원만 돌다가 간다고." 명나라 시대 나관중이 쓴 세기의 명작 '삼국지연의'를 원작으로 한 영화 <삼국지:용의 부활>은 소설 '삼국지'의 세상과는 사뭇 다른 그림을 그린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체득한 수많은 사자성어의 원전인 소설 '삼국지'는 철저하게 유비와 관우, 장비의 세상이었다. 영웅들의 세상이었다. 이들 의삼형제가 책사인 제갈량과 함께 또 다른 영웅이자 간웅으로 그려지는 조조에 맞서 액션 스펙타클을 벌이는 이야기가 기둥이었다.
삼국지:용의 부활
하지만 이번에 만들어진 이인항 감독의 <삼국지:용의 부활>은 영웅은 영웅이로되 여럿 장수 중에 하나로 여겨져 왔던 조자룡의 시선으로 삼국의 혈전을 그린다. 그리고 그 혈전의 주요 시대는 유비와 조조가 살아있던 시대가 아니고 이들 시대의 영웅이 모두 거(去)하고 2세와 3세의 각축전이 어지럽게 벌어지던 때이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엔 한 시대의 끝과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 열리는 그 접경에서 우연찮게 두 시기의 교각에 서있는 한 노장의 쓸쓸한 정서가 짙게 배있다. 퇴장하면서 아름답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애쓰지만 통렬한 자성의 언어들이 마음 속을 어지럽히는 법이다. 상산에서 온, 이제는 노장에 불과한 조자룡은 말의 박차를 가하며 명예롭게 죽어, 다시금 부활하기를 꿈꾼다. 자신은 죽지만, 자신이 지키려 했던 시대의 가치는 남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것조차 헛된 꿈일지 모른다고 그는 생각한다. 한때 세상을 호령했지만, 모든 것이 일장춘몽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누구나 세상에서 홀연히 사라져야 하는 것을 자각하기란 꽤나 비통스러운 일이다. 조자룡은 과연 당대의 시대를 바꾸는데 성공했는가. 관우, 장비와 함께 중국의 대륙을 휘젓고 다니며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고 호언했지만 과연 그러했는가. 세상의 평화를 위해 세상과 맞서 싸웠다지만 오히려 자신 역시 세상을 어지럽힌 장본인에 불과했던 것이 아닌가. 머리가 하얗게 센 채 이제 죽음밖에는 자신의 자존심을 지킬 것이 없는 조자룡은 문득 깨닫는다. 자신이 한 일은 결국 제자리로 돌아 온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래서 평안에게 유언으로 남긴 말처럼 '큰 원만 돌다가 떠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영화 <삼국지>는 패배한 자들을 위한 송가다. 패배한 자들 뿐만 아니라 이제 막 패배하고 있는 자들에게 남은 삶의 규칙을 알려준다. 비가(悲歌)이긴 하지만 여기엔 비장함이 담겨져 있다. 신파이지만 남은 자존심의 웅장함 같은 것이 숨겨져 있다.
삼국지:용의 부활
영화 <삼국지>는 그런 면에서 지나치게 가치절하된 작품으로 보인다. 무려 200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만들어진 대하 서사 블록버스터인 것만이 내세워짐으로써 이 영화에 숨어있는 진짜 '그림'을 소통시키는데 실패했다. 유덕화, 매기 큐, 적룡 등을 내세운 스타 마케팅은 오히려 영화의 값진 의미를 낮추게 했을 뿐이다. 중국과 한국의 합작영화로 사실상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우리 쪽에서 지원했다는 얘기 역시 이 작품을 '영화'보다는 '산업'으로 치부하게끔 하는 역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영화 <삼국지>는 영화든, 시대든 보다 비중있는 주제를 중의적으로 다루려 노력했던 작품이다. 시대의 아이콘에서 한낱 소품거리로 전락한 듯한 영화의 쓸쓸한 퇴장이 이 작품엔 담겨져 있다. 홍콩영화는 한때 '홍콩 누아르'를 통해 세상의 영웅이 된 적이 있었다. 유덕화는 당시의 명장급 배우였다. 유덕화 역시 조자룡처럼 스스로 '큰 원'만 돌다가 떠나가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어디 홍콩영화 뿐이겠는가. 한국영화도 같은 처지일 수 있다. 이 영화는 동시에 격동의 시대를 관통하며 어떻게든 세상을 개혁하려 했던 지식인들의 쓸쓸한 퇴장의 내면 풍경을 담아 내고 있다. 조자룡은 과연 '큰 원'만 돌다가 떠난 것일까. 우리의 많은 노력은 결국 '큰 원'만 그린 것에 불과했던 것일까. '용의 부활'처럼 우리가 부활을 꿈꾼다면 숱한 타협과 야합에 굴복하지 말고 조자룡처럼 스스럼없이 옥쇄를 선택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200년대의 얘기였던 '삼국지'가 2000년대인 지금 새삼스럽게 가슴에 와닿는 것은 많은 질문들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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