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비리 의혹에 대한 수사가 김용철 변호사가 지난해 제기한 핵심 의혹들을 대부분 건드리지 않은 채 마무리될 전망이다. 정ㆍ관ㆍ법조계 불법 로비 의혹, 삼성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가 계열사에 비자금 할당량을 부과하고, 계열사들은 조직적으로 회삿돈을 빼돌렸다는 의혹 등 국민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끌었던 의혹이 대부분 규명되지 않은 채, 수사가 마무리되리라는 것.
삼성특검, 18~21일 수사 결과 발표
조준웅 특별검사팀은 현재 수사 결과 발표문을 작성하고 있다. 특검팀은 이르면 18일, 늦어도 오는 21일에는 수사 결과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삼성 비리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이건희 회장에게 횡령 혐의가 적용될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차명계좌 및 차명주식으로 관리돼 온 수조 원 가량의 자금이 삼성 계열사에서 빼돌린 돈이라는 게 밝혀지면, 이 회장은 횡령 혐의를 피할 수 없다. 하지만 특검팀 안팎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모아보면, 특검팀은 "차명으로 관리된 자금은 이병철 선대 회장의 유산"이라는 삼성 측 해명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될 경우, 이 회장은 조세 포탈 등 혐의가 적용돼 불구속 기소돼 벌금을 물게될 가능성이 높다. 이 회장에게 쏟아진 다양한 의혹에 비하면, 매우 가벼운 처벌이다. 이재용 씨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던 특검이 이 회장에게도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특검은 이 회장의 부인 홍라희 씨에 대해서도 '무혐의'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 구조본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가 지난해 양심고백을 하면서 불거진 소용돌이에서 이건희 회장 가족이 빠져나가게 되는 셈이다.
삼성 계열사 비자금 조성 관련 증언과 보도, 모두 무시?
하지만 "차명으로 관리된 자금에 삼성 계열사에서 빠져나간 돈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삼성 측 주장을 그대로 믿는 이들은 거의 없다. 단지 이병철 회장의 유산이라고만 하기에는 차명으로 관리된 돈의 규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 고백 이후, 삼성 계열사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이 있다는 증언과 보도가 여러 차례 나왔었다. 특검이 삼성 측 주장을 일방적으로 수용한다면, 이런 증언과 보도는 모두 무시되는 셈이다.
물론 삼성 계열사들이 비자금 조성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입증하는 일은 까다롭다. 수사관이 기업 내부의 업무 관행에 정통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 관련 증거를 수집하는 것도 쉽지 않다. 삼성 계열사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사내 전산망의 자료와 전자우편을 삭제했다.
하지만 특검이 비자금 조성에 가담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삼성 계열사들에 대해 수사 의지를 밝힌 경우도 드물다. 한때 특검은 삼성생명이 보험금 미지급금 등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하기도 했으나,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특검, 검찰에 의혹 사건 인계할 가능성 낮아
또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이 쏠렸던 불법 로비 의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삼성이 정ㆍ관ㆍ법조계 인사들에게 정기적으로 돈을 뿌려왔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특검은 조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다. 김용철 변호사의 잇따른 명단 공개에도 불구하고, 특검이 관련 당사자들은 한 번도 소환하지 않은 게 그 증거다.
그렇다면 특검 기간이 만료된 뒤, 검찰이 수사를 이어받아서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실제로 김용철 변호사도 이런 방안을 지지했다.
하지만 이런 방안이 실현될 가능성 역시 높지 않아 보인다. 특검 관계자는 14일 "특검법상 수사 범위 안에 있는 것은 우리가 종결짓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의혹이 남아 있는 사건들을 검찰에 인계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렇게 되면, 특검이 현재 취하고 있는 입장이 삼성 비리 의혹에 대한 최종 결론이 될 수밖에 없다. 삼성이 원하는 방향대로 수사가 마무리되는 셈.
이 경우, 조준웅 특검은 "'삼성 특별검사'가 아닌 '삼성 특별변호사'"라는 비아냥을 피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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