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끝났다.
유난스러웠던 이번 총선을 거치면서 이 땅의 이주민들은 한국의 정치에 대해 색다른 관심들을 가지게 되었을 것 같다. 특히 결혼이주 여성들이 더 그러했던 것 같다.
우리 단체에서는 1주일에 한 번씩 한국인과 결혼한 몽골여성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교실을 열고 있다. 투표일 며칠 전에 있었던 수업에서 강사가 창조한국당의 비례대표로 나선 필리핀 출신 여성인 주디스 씨의 사례를 설명해주었는데 모두의 관심을 모았던 것이다.
주디스 씨 외에도 독일 출신으로 한국으로 귀화한 이한우 씨가 한나라당에 비례대표를 신청했었다고 한다. 이렇게 자신들이 후보로 나서는 것 외에, 지난 대선때 언론에 잠깐 언급되었던, 조선족 출신으로 한국인으로 귀화한 여성들이 결성한 '중국계 결혼이민여성유권자운동본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주여성의 권익보호후보 지지운동을 벌였다고 한다.
인터넷 뉴스를 검색해보았더니 결혼이주여성들이 한 표를 행사하는 모습과 소감들도 심심찮게 떠오른다. 아마도 다다음 선거쯤에는 이들은 성장하여 투표권을 가진 2세들과 함께 투표장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이들의 정치적 성향은 논외로 하고 어쨌든 놀라운 일이다. 말 그대로 새로운 구성원들이 우리 사회에서 자리 잡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 실감나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 새로운 장면 속에 이주노동자들은 없다. 영구거주가 예정되어 있지 않고 한국 국적 취득은 더더욱 예정되어 있지 않은 한시적 체류예정자들이니 이들의 모습이 그 속에 자리 잡을 여지가 있을 리 없다. 그렇긴 하지만 이들이라고 자신들이 터잡고 살고 있는 한국의 정치상황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다.
지난 대선과 이번 총선을 거치면서 사무실을 찾아오는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의 선거에 대하여 물어보곤 하였었다.
한국어를 잘 모르는 이주노동자들이야 TV를 봐도 신문을 봐도 알 수 없으니 뭐가 뭔지 모르고, 한국어를 잘 아는 이주노동자들이라고 해도 한국의 정치상황에 대해 사전지식이 없으니 잘 모른다. 정당-정책-인물 서로가 어떻게 다른지를 알기 힘들고 그 각각이 한국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는 더더욱 잘 모른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외국인력정책이 이들의 한국입국과 체류조건을 결정짓느니만큼 이와 관련 있는 공약이 나오는 한국의 선거라면 당연히 관심을 갖게 된다. 불법체류 상태의 노동자라면 불법체류 노동자 사면이나 외국인력제도 개선 같은 내용들이 공약 중에 있는지를 진지하게 물어본다. 대개는 그런 정도의 관심을 보일 뿐이지만 자국의 정치상황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이주노동자라면 한국의 정치상황에 대해서도 가볍게 넘기지 않는다.
한국어도 유창하고 정치적 의식도 높은 그런 이주노동자들을 만나기가 쉽지는 않은데, 그건 이주노동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한국에서 10년 넘게 살아서 한국인 뺨치게 한국을 잘 알던 어떤 이주노동자는 그 동안 한국의 정치상황에 대해서 진지하게 설명해주는 한국인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한다. 물어보면 아주 단편적인 내용만 얘기하거나 제대로 상대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정치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 자연스런 것이라면, 타국에서 산다고 해서, 설사 불법체류자라 하더라도 그 본성을 상실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열심히 일해서 돈 벌 궁리나 하지 뭐 그런 데 관심 갖느냐"라든가 "남의 나라 일에 뭐 그리 관심을 많이 갖느냐"는 등의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궁금증을 이해해주고 그 궁금증을 풀어주는데 약간의 배려를 기울여주는 친절한 한국인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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