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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 감독의 동물생태 다큐에 주목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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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 감독의 동물생태 다큐에 주목하는 이유

[뷰포인트] <어느날 그 길에서> <작별> 리뷰

영화는 종종 영화 자체보다는 영화를 만든 사람에게 관심을 집중시키는 경향이 있다. 최근 개봉됐던 황윤 감독이 만든 동물생태 다큐멘터리 <어느 날 그 길에서>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서울 대학로 하이퍼텍 나다와 극히 일부 극장에서 단관개봉 형식으로 상영중인 이 영화는 영화보다 황윤 감독이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작품에 대한 관심이 보다 필요한 것은 그때문이다. <어느 날 그 길에서>는 국내 다큐멘터리로는 보기 드물게 '로드 킬'의 문제를 끈기있게 좇아간 내용이다.- 편집자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어느 날 그 길에서>를 보고 있으면 세가지 점에서 놀라게 된다. 어린 시절을 6,70년대의 산업개발 시대로 살아 온 세대들에겐 한국은 여전히 황무지다. 한국의 국토라고 하면 머릿 속에는 잘자란 수풀보다는 까까머리 민둥산의 이미지부터 떠오른다. 때문에 거기엔 야생동물의 존재 같은 건 눈꼽만큼도 기억이 남아있지 않다.
황윤 감독

황윤의 다큐멘터리는 그 기억의 메모리를 업그레이드 시켜야 할 때라는 점을 지적해 준다. 어쨌든 첫번째 놀라게 되는 것은 한국에 이렇게 야생동물이 많은 가라는 점때문이고(심지어 중학교 때쯤 배웠던 소설 <삵>의 그 삵, 그러니까 살쾡이까지 나온다. 한국에서는 이 삵의 존재가 사라진 줄 알았다) 두번째로는 그런 야생동물들이 이렇게나 많이 죽어 나가고 있다는 사실때문이다. 세번째로는 야생동물이 많은 지도 모르고, 많이 죽어나가는지도 모르는 우리들과는 달리 이들 야생동물의 비참한 삶을 보호해 주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때문에 놀라게 된다. 이건 나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 얘기같은데 그 다름의 주체가 사실은 그들이 아니라 나 스스로임을 알게 된다. 다큐멘터리 속 '그들'은 나와 다르려고 한 적이 없는데 나는 '그들'과 끊임없이 달라지려고 애써왔다는 자각이 드는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가 종종 사포처럼 거칠게 느껴지면서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일순 반성하게 만드는 건 그때문이다. <어느 날 그 길에서>는 '로드 킬'에 대한 얘기를 다루는 작품이다. '로드 킬'이란 도로 위를 돌아다니다가 차에 치어 죽는 동물들의 상황을 뜻하는 말이다. 동물의 생태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는 TV프로그램을 통해 이렇게 저렇게 봐 온 흔하디 흔한 것일 수 있지만 황윤의 이 작품은 다소 특이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그 특이함은 꼭 '로드 킬'이란 문제를 다뤘다는 이유때문만은 아니다. 그건 오히려 소재주의의 함정에 빠지는 일일 수 있다. 이 영화의 특이함은 '로드 킬' 문제를 진지하고 끈기있게 다루고 있는 작가의 '태도'에서 찾아진다. 모든 것은 태도가 내용을 결정하는 법이다. 다큐멘터리 작품의 완성도는 바로 이 '태도'에서 나온다. 내세우는 주제를 얼마나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가, 일관성이 있는가, 대안을 만들기 위한 실천적 자세를 겸비하고 있는가 등등이야말로 작품의 진정성을 아우르는 핵심적인 요건들이다. <어느 날 그 길에서>는 그 같은 다큐의 원칙과 정신을 끝까지 지켜내려 한 작품으로 평가받을 만 하다.
어느날 그 길에서
<어느 날 그 길에서>와 함께 동시상영중이거나 혹은 이미 상영된 황윤 감독의 2001년 작품 <작별>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는 다큐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점이 아니라 사람을 바라보는 동물의 시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 날 그 길에서>처럼 소재가 남다르게 느껴지지만 이것 역시 그 같은 특이한 발상때문이 아니라 철창 안의 동물들을 철창 밖 자유로운 사람들의 삶과 동일시하려 했다는 휴매니티의 정신 면에서 평가 절상이 이루어져야 하는 작품이다. 두 작품을 통해 황윤 감독이 궁극적으로 물으려 했던 것은 동물들의 '상황'이 아니다. 우리가 동물들에게 어떤 짓을 저지르고 있는 가의 문제가 아니라 동물들을 그렇게 만드는 우리들은 과연 어떤 동물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어떤 짓을 저지르고 있는 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이건 동물 생태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라는 얘기다.
작별
두 영화는 오랜만에 헝그리 정신이 넘쳐나는 다큐멘터리를 만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도 높이 평가할 수 있는 작품이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영화를 미학이나 정신의 산물로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이나 상품으로 받아들인다. 황윤은 영화라고 하는 것, 특히 다큐멘터리라고 하는 것은 철저히 소유가 배제된 무산(無産)의 의식의 산물일 수 있고 또 그렇다는 점을 강조한다. 영화는 돈이 많고, 여건이 풍부해야 도전할 수 있는 높은 산 같은 존재라고? 천만에. 일단 도전부터 하고 그런 소리를 하라고 황윤 감독은 슬쩍 웃으며 얘기한다. 그의 그런 충고에 살짝 부끄러움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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