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 그는 일본 프로야구를 만드는 산파 역할을 했다. 일본의 전후 고속성장과 맞물린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역사적인 9연패(1965~73)는 아직도 깨지기 힘든 전설로 남아 있다. 프로야구의 인기에 힘입어 요미우리 신문은 1977년 아사히 신문을 제치고 일본내 최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1등 신문의 자리를 굳혔다.
요미우리의 아이러니
일본 야구의 특징은 '스몰볼'이다. 교과서적인 중계 플레이, 주자를 한 베이스 진루시키기 위한 작전, 발로 하는 야구 등이 주요 특징이다. 지난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일본이 우승할 때 오 사다하루(왕정치) 감독이 표방한 야구도 '스몰볼'이었다.
하지만 다른 일본 팀에 비해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지금까지 슬러거의 홈런 한 방에 많이 의존했다. 쉽게 말해 '빅볼'의 팀이다.
현 요미우리 구단 회장인 와타나베 쓰네오는 2002년 요미우리의 상징인 마쓰이 히데키에게 6년 동안 6천4백만 달러의 파격적인 계약조건까지 제시하며 그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말렸다. 하지만 마쓰이는 뉴욕 양키즈로 떠났다. 와타나베 회장은 오릭스가 이치로를 미국에 내줄 때, 메이저리그를 흑선을 이끌고 일본을 개항시킨 페리 제독에 비유하며 독설을 퍼붓기도 했었다.
여기에 요미우리의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일본에서 가장 미국 야구에 가까운 팀으로 변해 있고, 가장 힘이 센 구단 요미우리. 하지만 더 큰 시장인 메이저리그에는 한 없이 작은 존재로 비쳐질 수밖에 없는 현실. 플레이 스타일로도 요미우리는 일본에서는 빅볼이지만 미국에서 볼 때는 여전히 스몰볼에 가깝다. 이 두 가지 관점은 '국제화'가 가속화 되고 있는 상황에서 계속 충돌할 수밖에 없다.
역사상 최고의 '빅볼' 라인업은 요미우리의 짐
현재의 요미우리 타선은 역사상 최고의 '빅볼' 라인업이다. 이승엽을 축으로 한 요미우리 타선은 개개인만을 놓고 보면 최상급이지만 스몰볼을 할 만한 선수가 거의 없다. 요미우리의 톱타자인 다카하시는 4번 타자 출신으로 기동력의 야구를 할 수 없다. 오히려 그는 중장거리포를 쏘는 선수다. 정말 중요한 기회에서 진루타를 뽑아내는 데 장기를 갖고 있는 선수는 드물다.
3일 주니치와의 경기는 왜 요미우리가 '빅볼' 라인업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요미우리는 7회말 1-5로 뒤져 있었다. 하지만 1번 타자 다카하시가 동경 6대학리그 시절부터 라이벌이었던 주니치 선발 가와카미로부터 3점 홈런을 뽑아냈다. 그 뒤 두 차례 대포가 터지면서 6-5의 역전 드라마를 완성시켰다. 요미우리가 구단 역사상 최악의 개막 5연패 사슬을 끊는 순간이었다.
역전패를 당한 주니치의 오치아이 감독의 말처럼 야구에서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 문제는 3일과 같은 역전극은 한 시즌에 그리 많이 찾아 오지 않는다는 점. 더욱이 중량감 있는 타선의 힘에만 의존하는 팀은 부침이 심하다. 타격은 춤을 추듯 상승곡선과 하강곡선을 반복하기 때문. 일본 야구를 경험한 선동렬 감독이 삼성의 지휘봉을 잡을 때 "삼성은 성격을 바꿔야 산다. 홈런 빵빵 때려서 하는 야구로는 승리할 수 없다"는 말도 이와 맥이 닿아 있다.
평범한 수비수 잭 찰튼의 교훈
1966년 월드컵을 앞두고 잉글랜드의 알프 램지 감독은 잭 찰튼을 대표팀에 불러 들였다. 그의 동생 보비 찰튼은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였지만 잭 찰튼은 사실 대표팀에 들어갈 만한 실력이 안 된다는 게 영국 축구계의 일반적 시각이었다. 실제로 잭 찰튼은 수비수로서 빠르지도 않고, 공격의 길목을 지키는 감각이 뛰어나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램지 감독은 명언을 남겼다. "잭을 대표팀에 뽑은 이유는 그의 개인기술 때문이 아니다. 잉글랜드 팀을 조화롭게 하기 위해 우리는 잭이 필요했다". 잭 찰튼은 잉글랜드의 주장 보비 무어와 수비에서 좋은 호흡을 보이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투지로 똘똘 뭉친 그는 팀을 위해 희생할 줄 알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축구를 한다고 자부하는 '축구종가'의 도도한 잉글랜드 선수들에게 쉽게 찾기 힘든 장점이었다.
이처럼 한 팀에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하기 마련. 하라 감독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경기가 안 풀릴 때 장타가 아닌 작은 야구로 흐름을 반전시킬 수 있는 카드가 없다는 것은 요미우리가 올 시즌 끝까지 짊어지고 가야 할 난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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