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7일 처음 20m 상공으로 올라갔던 박현상 GM대우비정규직지회 조직부장이 지난 29일 건강 문제로 내려온 뒤 이대우 GM대우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이 이날로 35일째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저 위가 어떤 공간인지 너무 잘 알아서, 시간이 지나면서 느낄 수밖에 없는 고립감도 너무 잘 알아서 가슴이 참 아픕니다."
4일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박현상 조직부장은 '100일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그는 두 달 하고도 꼬박 보름을 있고도 아무 성과도 쥐지 못한 채 한 '동지'가 내려오고, 바로 연달아 다른 '동지'를 올려 보낼 수밖에 없어서 마음이 "답답하다"고 했다.
두 사람이 이어 온 100일의 농성, 그 시작은 작은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이어 온 100일의 농성, 노동자의 요구는 거창하지 않았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조합 설립'을 하려다 줄줄이 해고된 35명 조합원의 원직복직과 노동조합 인정 요구가 전부였다. (☞관련 기사 : '새해'에 들떠있는 지금 당신의 이웃은…, "비정규직 해법이 '경제성장'? 3년 흑자여도 해고")
그 요구를 위해 노조는 원청인 GM대우와 하청업체들을 상대로 18차례나 교섭을 요청했지만 원청과 하청 그 누구도 단 한 번도 교섭에 응하지 않았다. 원청인 GM대우는 "법적으로 우리는 사용자가 아니다"라며, 하청업체들은 "우리 회사엔 조합원이 1명 뿐이다", "우리는 아예 폐업을 했으니 모르는 일"이라는 등의 다양한 핑계를 대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방관은 노동부도 마찬가지였다. 박현상 부장은 "처음 해고가 시작될 때부터 지속적으로 경인노동청 북부지청을 상대로 특별근로감독도 요청하고 근로감독관과 동행 조사도 요구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며 "노동부 주선으로 하청업체들과 면담 자리를 한 번 갖긴 했지만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만든 자리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열쇠 쥔 원청은 '법적 책임 없다'만, 노동부는 '앞뒤 안 맞는' 결론만
그 과정에서 일부 조합원들은 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해고 판정까지 받았다. 하지만 지노위는 "업체가 폐업을 한 만큼 신규업체가 고용을 승계할 의무는 없다"고 덧붙였다. '부당해고긴 하지만 복직명령은 안 된다'는 '앞뒤 안 맞는' 결론이었다.
하청업체에서 발생하는 해고 등 문제의 경우, 그 열쇠는 원청이 쥐고 있다. 원청과의 도급계약을 통해 일을 하는 하청업체가 원청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기 때문이다. 최근 1년 여의 복직 투쟁 끝에, 다른 업체로의 신규채용을 보장하기로 노사가 합의한 삼성SDI 부산공장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례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관련 기사 : 삼성에 맞선 여성 비정규직의 '큰' 승리)
이 소식을 듣고는 박현상 씨는 "삼성 특검과 기름유출 사건 등이 맞물리면서 삼성이 사회적으로 공격을 받는 상황이다보니 가능했던 합의"라고 생각했다. 그는 "결국 사내하청 노동자 문제는 사회적으로 쟁점화가 되지 않으면 어렵다"고 말했다.
고공농성은 사회 쟁점을 만들고자 시작한 일이었다. 경기도 인천시의 한 구석에서 벌어지는 이 "부당하고 억울한" 일을 사람들에게 알려, 공장 안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물론 고공농성만 한 것은 아니었다. GM대우비정규직지회는 한강대교에도 올라갔고, 마포대교 난간에 밧줄에 몸을 기대 '하상(河上) 시위'도 해 봤다. (☞관련 기사 : GM대우 비정규직 3번째 '하늘시위', "MB가 칭찬한 '노사화합' GM대우의 실상을 보라")
하지만 부질없이 시간만 흘렀다. 세월이 지나니 관심을 갖는 사람도 줄어들었다. 그는 "아무래도 고공농성이 길어지면 처음에 보이던 사람들의 관심도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100일이 돼서야 처음 열리는 금속노조의 투쟁 문화제
무심한 것은 '딴 동네' 사람들만이 아니다. GM대우비정규직지회가 속해 있는 금속노조는 15만 조합원의 대형 산업별노동조합이다. 보수언론에 의해 걸핏하면 '귀족 노동자'라고 지탄받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을 품어 안겠다"며 야심차게 산별노조의 깃발을 들었다.
현실은 쉽지 않았다. 여러 차례 언론을 타며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았지만, 금속노조는 그 흔한 '규탄 대회' 한 번 열지 않았다. 고공농성 100일 만인 4일 저녁에야 처음으로 금속노조 차원의 '투쟁 문화제'가 GM대우 부평공장 앞에서 열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금속노조가 해고자들에게 지급해 주는 '신분보전기금'이 있어 차비와 라면값 정도는 걱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27세에서 46세에 이르는 조합원들은 모두 여기에 기대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에게도 언젠가 과연 봄이 올까요?"
박현상 씨는 65일의 고공농성 '후유증'을 아직도 앓고 있다. CCTV 철탑 위는 좁은 것도 문제지만, 중간에 자리 잡은 기둥 때문에 몸을 똑바로 펼 수가 없다.
그는 "조금만 무리를 하면 오른쪽 어깨, 목, 다리, 팔 등이 집중적으로 아프다"고 말했다. 의사 말로는 "너무 오랜 시간 한 쪽으로 삐딱하게 앉아 지내다 보니 한쪽 근육과 신경만 많이 피로해져 그런 것"이란다. 근육을 장기간 못 쓰고 지낸 탓에 아직도 뛰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얼마 전까지 자신이 머물던 20m 상공 위를 바라보는 마음은 그래서 더 착잡하다. 봄이 와 그나마 차가운 겨울바람이라도 피할 수 있어 다행일까?
"'우리도 언젠가는 봄이 오겠지' 싶은 희망보다는 '봄이 왔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똑같은 겨울이구나' 싶어서 답답합니다."
법이 보호하고 있는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가 일터마저 잃어버린 이들에게, 100일이 넘도록 공장 옆 20m 상공에서 사람이 먹고 자고 있는데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척 하고 있는 '노사 화합 기업' GM대우에게, 봄은 언제쯤 찾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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