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스 닷신 감독 | |
1911년 미국 코네티컷주 미들타운의 러시아계 가정에서 태어난 닷신 감독은 40년대 말 동적이면서도 필름누아르적인 멜로드라마 <잔인한 힘(Brute Force)>(1947)과 <벌거벗은 도시(The Naked City)>(1948)로 큰 인기를 누렸다. 특히 <벌거벗은 도시>는 경찰 스릴러영화로, 다큐멘터리적인 접근 방식은 이후 많은 모방작을 양산했다. 할리우드의 잘 나가는 영화감독이었던 닷신의 인생을 바꿔놓은 것은 1950년대 이른바 매카시 파동. 진보파였던 닷신은 1950년 초반 매카시 상원의원이 주도하는 반미행동조사위원회에서 공산주의자로 지목돼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더 이상 미국에서의 활동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린 닷신은 유럽으로 망명했고, 프랑스 고몽영화사와 손잡고 1954년 탁월한 범죄스릴러 <리피피>를 세상에 내놓게 된다. 망명 영화인 닷신의 인생은 1955년 칸영화제를 계기로 다시 한번 극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영화제에서 <리피피>로 감독상을 수상한 그가 그리스의 매력적인 영화배우 멜리나 메르쿠리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 것. 닷신의 나이 마흔셋, 메르쿠리는 서른 넷이었다. 부부가 된 두 사람은 1960년 <일요일은 참으세요(Never On Sunday)>란 히트작을 내놓는다. 그리스의 모든 것에 열광하는 미국의 청년 고고학자가 유쾌하고 낙천적이기 짝이 없는 창녀 일리아를 바른 길로 '계도'하려다가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는 로맨틱 코미디다. 제목의 <일요일은 참으세요>는 주인공 일리아가 주중엔 아무리 남의 손가락질을 받는 일을 하지만, 일요일엔 쉬면서 인생을 만끽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스 냄새가 물씬한 음악과 메르쿠리의 농염한 매력이 함께 어우러진 이 작품은 흥행에 대성공하는 한편 미국 아카데미 감독상 등 여러 부문에 지명을 받았다. 공산주의자로 몰려 고국으로부터 내쳐지다시피 했던 닷신 감독으로선 금의환향이었던 셈. 2년 뒤 닷신은 앤소니 퍼킨스 주연의 비극적 러브스토리 '페드라'로 다시 한번 인기를 모았다.
페드라 | |
닷신은 67년 그리스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자 아내와 함께 프랑스로 이주해 반군부독재 운동을 펼쳤다. 74년 민정 복귀후 닷신 부부는 귀국했고, 그 해 메르쿠리는 국회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진출한다. 메르쿠리는 할아버지가 아테네 시장, 아버지는 국회의원, 삼촌은 사회당 당수를 지내는 등 그리스의 저명한 정치가문 출신이었다. 81년 메르쿠리는 사회당 정부가 출범하자 문화장관직을 맡았고, 닷신 감독은 같은 해 미국 국적을 버리고 아내의 나라 그리스의 국적을 정식으로 취득하게 된다. 닷신 감독의 마지막 작품은 1980년작 <서클 오브 투(Circle of Two)>. 캐나다 자본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60대의 리처드 버튼이 십대 중반의 테이텀 오닐과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의 범작이다. 말년의 닷신 감독은 자신보다 먼저인 1994년 세상을 떠난 아내를 위해 '멜리나 메리쿠리 재단'을 설립해 전세계에 흩어진 그리스문화재의 반환운동을 주도해왔다. 그가 특별하게 관심과 열정을 기울였던 것이 이른바 '엘긴 마블'로 불리는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품들이다. 닷신과 메르쿠리 부부를 비롯한 수많은 그리스 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9세기초 영국의 7대 엘긴 백작(본명 토머스 브루스)이 약탈해간 문화재들은 여전히 200여 년동안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영국 정부와 대영박물관 측은 '엘긴 마블'이 그리스만이 아닌 인류전체의 문화유산이며, 대기오염으로 악명높은 아테네에 돌려줄 경우 훼손이 우려된다는 등의 이유로 지금까지 반환을 거부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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