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은 보건의료단체연합과 공동으로 <식코>를 직접 본 국내 보건의료인의 감상을 몇 차례에 걸쳐 싣는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다른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함께 봐요 '식코'"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김형성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사무국장(치과의사)이 첫 번째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스윙댄스를 추는 동호회에서 한 줄의 글을 읽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신들이 증오하는 그들보다 더 재미있고 더 유쾌하게 살면 되는 것이다."
그래, 유쾌하게 행복하게 보란 듯이 살아버리는 것. 증오가 행복으로 바뀌는 얼마나 명쾌한 대답인가. 우리 동호회 회원은 대개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고 비정규직이며 가난한 문화예술인이 많다. 하지만 어디든 록큰롤 음악이 있으면 스윙스텝을 밟으며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런데 하루는 한 친구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발가락 골절로 얼마간 춤을 추지 못한다고 하소연을 했다. 어떻게 새끼발가락이 부러졌는지 우스갯소리가 오가는 댓글 사이로 잠시 손가락 절단으로 병원을 찾은 한 미국인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미국인은 전기톱에 나무를 자르다가 중지와 약지 끝마디가 잘려나간 중산층 남자였다. 보험 보장 범위를 넘어선 그가 약지를 붙이려면 1200만 원, 중지는 6000만 원의 비용이 필요했다. 결국, 그는 약지 하나만 붙이기로 했다. 그의 중지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민간 의료 보험으로 유지되는 미국의 의료 시스템에서 이런 일은 다반사다.
국민건강보험을 적용받은 발가락 골절 스윙댄서 친구는 아마 별 탈 없이 치료를 받고 있을 것이다. 미국과 한국의 현실은 그만큼 구체적으로 달랐다.
잠시 국민건강보험 얘기를 해볼까. 우리는 국민건강보험이 감기약이나 싸게 해주는, 하지만 암이나 백혈병 같은 중대질환에 걸렸을 때는 여지없이 수천만 원의 치료비에 허덕이게 하는 무늬만 사회보험이라고 지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서 몇 해 전 시민·사회단체들이 '암부터 무상의료'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를 위해 싸우기도 했고, 중대질환의 보장성이 넓혀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감기약이나 싸게 준다지만, 그것도 만만하게 생각할 수는 없다. 감기에 걸렸다고 해서 꼭 병원에 가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감기처럼 심한 몸살을 동반하거나 노령이거나 장애가 있는 경우는 감기도 예사로 볼 수는 없다. 만병의 시작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만일 국민건강보험을 적용받지 못한다면, 지독한 감기에 걸려 병원을 찾았을 때 우리는 큰 낭패를 경험할 수 있다. 실제 '연세대 외국인 클리닉'의 경우, 현재 국민건강보험을 적용받지 못하는 외국인은 국민건강보험 진료비의 4배를 낸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국민건강보험 환자는 병원과 약국에 각각 본인 부담금 30%를 내면 되는데, 감기의 경우 약 5000원 정도이다. 연세대 외국인 클리닉의 경우, 약 13배(5000원×3.3×4), 즉 7만 원 정도가 소요되게 된다. 몇 번 더 치료하게 되면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치과 진료 못지않은 비용을 들여야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모두 돈 벌기에 혈안이 되어 천박한 자본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는 우울한 이야기를 전부 믿지는 않는다. '88만 원 세대'에게 짐짓 허세나 부리던 기억도 없지 않지만, 유쾌하게 행복하게 살아가려는 청년들과 놀다보면 행복해지는 일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유쾌한 인생에도 조건이 있는 것이다.
돈이 없어도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권리, 돈이 없어도 배울 수 있는 권리. 이 권리를 스스로 지켜내야 하는 것이 '유쾌 행복'의 조건인 것이다.
의료 산업화 전략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까지, 비록 건강보험 당연 지정제 폐지를 슬그머니 뒤에 숨겨두었지만, 이명박 정부는 곧 민간 의료 보험 전면화와 의료기관 영리법인화를 들고 미국식 의료 제도를 도입하려 할 것이다.
지금, 친구와 손을 잡고 마이클 무어 감독의 <식코>를 보러가자. 그리고 우리의 건강을 팔아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만들려는 한줌의 관료와 자본가를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하자.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