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열사의 분신으로 젊은 시절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는 새 정부 초대 노동부 장관에게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처음으로 당부의 말을 전했다. "(요즘은) 1970년대로 돌아가는 것 같아 속이 상한다"고도 덧붙였다.
이영희 장관이 31일 취임 후 처음으로 서울 종로구 창신동 전태일기념사업회를 찾아 '그 시절의 어머니'와 대화를 나눴다. 전태일 열사의 친구들과 이광택 전태일기념사업회 이사장 등이 동석한 환담 분위기는 내내 화기애애했다. '그때 그 시절'의 얘기가 끝날 줄을 몰랐다.
하지만 30여 분 동안 진행된 대화의 끝자락에 이소선 여사는 참았던 한 마디를 이 장관에게 전했다. 이 여사의 이 같은 당부에 이 장관이 "(노사 갈등 문제는) 노사 자율로 해결하자는 것이 우리 기본 입장"이라고 답하자 "자율 해결이 안 되면 장관이 직접 나서서 해결해야지, 공권력 투입 운운해서는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전태일' 강조해 온 이영희 장관 "법 보호 못 받는 사람 아직도 많다"
이 장관은 취임 전부터 여러 차례 전태일 열사와의 인연을 강조해 왔다. 이 장관이 대학 졸업 직후 한국노총 상근자를 지원했던 계기가 전태일 열사의 분신이었다는 것.
이 장관은 취임 전 국회 청문회에서도, 취임사에서도 "사회생활의 시작이 노동운동이었다면 그 끝을 노동행정으로 마무리하게 돼 기쁘다"며 전태일 열사와의 인연을 빠뜨리지 않았다.
이 장관이 그 시절 "함께 잡혀가고 함께 울던" 이소선 여사를 찾는 자리는 그래서 더 관심을 모았다. 이 여사뿐 아니라 "장관 후보 이름이 나올 때 그 때 그 이영희가 맞나 싶었다"(전태일 열사의 친구 이승철 씨)는 '노동자 친구'들도 함께 앉은 자리였다.
모처럼 마주 앉은 자리의 화제는 단연 '옛 이야기'였다. 이 장관은 "여기 오니 옛날 사람들을 다 본다"며 반가움을 숨기지 않았고 이소선 여사도 "학생들이 잡혀가기만 하면 큰일이 나던 시절인데 (이영희 장관이) 우리 때문에 잡혀 가서 형님이 두 번이나 찾아 왔었다"며 옛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이 장관은 "노동부 직원들에게 평화시장 시절 얘기를 많이 한다"며 "그 때 (전태일 열사의) 분신은 근로기준법이 16인 이하 사업장에 적용이 안 됐기 때문인데 아직도 우리 사회에 법의 보호를 못 받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이어 "법이 없다고 하지 말고 법으로 무엇을 보호할지 생각해보라고 직원들에게 강조한다"며 "그 부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실업이고 일자리 창출"이라고 말했다.
이소선 여사의 못다한 얘기 "시대가 거꾸로 가는 것 같아 절망" "처음 노동운동에 참여했던 초심을 잃지 않고 노동부 장관의 직분에 충실하겠다"고 다짐하는 이영희 장관을 바라보는 이소선 여사는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비록 짧은 만남을 마치고 인근의 봉제공장을 둘러보러 나서는 이 장관에게 가슴 속 담아뒀던 얘기를 살짝 꺼내긴 했지만 '비즈니스 프랜들리' 정권에서 전태일을 입에 담는 노동부 장관에게 더 하고 싶은 말은 없었을까? 이영희 장관이 다녀간 직후 이소선 여사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미처 풀어놓지 못한 말들을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새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서는 취임도 전부터 우려가 쏟아졌었다. 이영희 장관의 개인사(史)가 어떻다 한들, 전체적인 정부의 정책기조에서 크게 어긋나는 '소신'을 펼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상식 아닌 상식이다. 하지만 이소선 여사는 일단, "아직 겪어보지도 않았는데 미리 뭐라고 말하기는 좀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오히려 "전태일 때문에 노동부 장관까지 하게 됐다니 참 고마울 뿐"이라고 했고, "그래도 (새 정부 장관이) 모르는 사람이면 제대로 말이라도 할 수 있겠냐"며 기대를 나타내기도 했다. "70년대 그 암울한 시기에 같이 잡혀가 고생하던" 또 다른 '아들'에 대한 희망이었다. 그러면서도 이 여사는 "요즘은 걱정이 많고 자꾸 속이 상해서 밤에 잠이 잘 안 온다"고 말했다. "(태일이가 죽은지) 벌써 햇수로 40년인데 좀 달라지는 것 같더니 새 정부에서는 너무 희망이 없다"며 "요즘은 시대가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아 절망스럽다"고도 덧붙였다. "불법이면 무조건 연행? 비정규직 탄압의 신호탄" 그 이유를 물었더니 "비정규직이 다 죽게 생겼으니"라는 답이 돌아왔다. 지난해 여름 두 번이나 농성장에서 강제로 끌려 나간 이랜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얘기도 꺼냈고, 100일 가까이 공장 옆 CCTV철탑에서 고공농성 중인 GM대우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며 "한 번 찾아가보고 싶어도 차마 할 말이 없어서 못 간다. 이게 70년대와 무엇이 다르냐"고 말했다. 더욱이 이명박 대통령은 "떼법, 정서법은 안 된다"고 틈만 나면 얘기한다. 백골단 부활 얘기까지 나온다. 이소선 여사는 "말로는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문제 해결' 얘기하지만 그런 사람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냐"고 비판했다. "내가 보기에는 불법 집회하면 무조건 연행하겠다는 말은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 없다는 말이랑 똑같다"고 주장했다. "집회 좀 한다고 연행하겠다는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얼마든지 탄압하겠다는 신호탄"이라며 "그 말을 듣고 내가 요즘 잠을 못 잔다"는 이소선 여사. "경찰이야 자기들 맘대로 하든 말든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노동부 장관 입에서 '공권력 투입' 말이 나와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 그의 작은 바람을 이영희 장관은 들어줄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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