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비리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출범한 조준웅 특검팀의 수사 의지에 대해 회의적인 목소리가 높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 씨가 삼성 경영권을 넘겨받는 과정의 핵심 고리로 꼽히는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사건에 대한 수사가 다소 진전됐지만, 특검이 현 수준에서 더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삼성 구조조정본부(구조본, 현 전략기획실)의 책임은 인정하면서도, 이건희 회장 일가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묻지 못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에 해당하는 셈.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의 핵심인물을 수사하라"
하지만 이런 분위기를 뒤집으려는 몸짓이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25일 이건희 삼성 회장, 이학수 삼성 부회장, 김인주 삼성 전략기획실 사장, 최광해 삼성 전략기획실 부사장 등 삼성 수뇌부 인사들을 추가 고발했다.
"이들 4명이 삼성 계열사 전체의 업무를 총괄해 왔으며, 삼성SDS와 삼성에버랜드의 사실상 이사로서 해당 주식관련 사채(CB, BW) 저가발행 사건의 가장 핵심적인 행위주체였다"라는 사실이 특검 수사 결과 드러났다는 게 고발의 계기다. 그리고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들 4명이 기존 고발에서 일부 누락돼 특검이 이들에 대한 인지수사를 하지 않을지 모른다"라는 게 고발의 직접적인 이유다. 특검팀 외부에서 계속 고발하지 않으면, 특검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배경에 놓여 있는 셈이다.
경제개혁연대가 이날 제출한 고발장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과 김인주 사장, 최광해 부사장은 막대한 상장차익이 기대되는 삼성 SDS의 주식을 이재용 등 이건희 회장 일가와 이학수, 김인주 등이 헐값에 취득하게 하려는 계획 하에 삼성SDS 이사들과 공모했다. 이들은 1999년 2월 기존 거래실례를 무시하고 주식의 실제가치보다 현저히 낮은 평가액(상속세및증여세법상 보충적 방법)을 적용해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하여 발행당일 이를 이재용 등이 인수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인수자들이 얻은 이익, 즉 삼성SDS 주식의 실제 가치와 행사가격의 차액은 고스란히 삼성SDS의 손해로 전가됐다.
이처럼 계열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결정에 해당 기업 이사들이 가담한 것은 삼성 구조본의 조직적인 개입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개입은 이재용 씨가 삼성 계열사를 장악하는 밑천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뤄졌다.
시민단체와 언론이 꾸준히 제기해 왔던 이런 의혹이 특검 수사를 통해 사실로 드러나고 있으므로, 이런 사실에 기초해 추가적인 고발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경제개혁연대의 판단이다.
"삼성과 특검의 밀약 의혹, 엄정한 수사로 해소하라"
경제개혁연대는 이날 성명에서 "그간 특검 수사를 통해 구조본의 주도 사실이 확인된 만큼 특검이 핵심관련자들에 대한 엄정한 수사와 추가기소를 통해 총체적 진실규명에 나섬으로써 항간의 삼성과의 밀약 의혹을 일소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특검과 삼성의 밀약 의혹'은 경제개혁연대가 하루 전인 24일 낸 논평에 자세히 서술돼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24일 논평에서 "이학수 부회장이 유석렬 사장(1996년 삼성에버랜드 CB 발행 당시 구조조정본부 재무팀장, 현 삼성카드 사장)을 내세워 김인주 사장을 보호하고 나선 저의가 각종 불법행위를 통해 진행해온 이재용 씨로의 경영권 승계과정을 김인주 사장을 통해 마무리하려는 것이며, 특검이 이를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인주, 이재용을 보호하기 위해 이학수, 유석렬이 부분적인 책임을 뒤집어 쓰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하기로 묵계가 이뤄져 있다는 의혹이다.
그리고 이런 의혹은 조준웅 특검이 배석자 없이 이학수 씨 등 삼성 수뇌부 인사들과 '독대'를 거듭하면서 증폭돼 왔다.
삼성이 진정 바뀌기를 원한다면…
이런 의혹대로라면, 삼성 관련 의혹의 정점에 서 있는 이건희 회장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게 된다. 또 이재용 씨를 위한 후계 구도를 설계한 김인주 씨 역시 법적 책임에서 벗어나게 된다. 현 회장인 이건희 씨, 그리고 후대 회장이 될 이재용 씨와 그의 핵심 가신인 김인주 씨가 면죄부를 얻게 된다면, 삼성의 후계구도는 견고하게 유지된다. 이건희 일가의 이익을 위해 계열사가 자발적으로 손해를 감수하는 관행 역시 바뀌기 어렵다.
지난해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 이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논란이 아무런 성과 없이 마무리되는 셈이다.
경제개혁연대의 고발장을 접수한 조준웅 특검이 향후 취할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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