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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쫌팽이'들의 세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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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쫌팽이'들의 세상을 위하여

[최광희의 휘뚜루마뚜루 리뷰] <마츠가네 난사사건> 리뷰

우리는 가끔, 참 별 것 아닌 것을 가지고 찰지고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재주꾼들을 만나게 된다. <마츠가네 난사사건>의 야마시타 노부히로가 그렇다. '난사사건'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제목만으로 이 영화의 어디쯤에 피가 튀는 총격전이 나올 것이라는 상상은 해도 좋고 안해도 좋다. 그런 상황이 충분히 나올법한 이야기, 그러니까 엄청난 사건이 벌어질 만한 설정이되, 사건은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벌어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말하자면 어정쩡한 것인데, 사실 이 영화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그렇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태도로 주어진 삶에 툭툭 내던져지는 돌발 상황들을 견뎌내야 하는 이들이다.
마츠가네 난사사건
마을 경찰관 코타로가 주인공이다. 그러나 사건의 주인공은 코타로의 천덕꾸러기 쌍둥이 형 히카리다. 어느날 눈 쌓인 거리에서 한 여자가 히카리가 몰던 차에 치이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러나 여자는 죽지 않았다. 게다가 금세 깨어난다. 여자의 야쿠자 애인은 우연히 마주친 뺑소니 범인 히카리를 위협해 얼음으로 뒤덮인 이 마을 호수 속의 금괴를 찾아낸다. 그러고도 모자라 히카리의 할아버지가 살던 집에 눌러 앉는다. 벙어리 냉가슴만 앓던 히카리는 아쿠자에게 '빙신처럼' 대들다 흠씬 두들겨 맞는다. 또 다른 사건이 벌어진다. 범인은 코타로의 난봉꾼 아버지다. 주책 맞게도 그 나이에 동네 소녀를 임신시켰다. 하지만 마을의 유일한 공권력이자 가문의 기둥인 코타로는 이 모든 사건을 해결할 수 없다. 그가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유일한 일은 파출소 지붕 위를 뛰어 다니는 쥐새끼들을 박멸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그조차 쉽지 않다. 끝내 세 방의 총성이 울린다. 야마시타 노부히로의 이 소품 영화는 블랙 코미디다. 사건 그 자체의 전개 과정보다 난데 없는 사건에 휩싸여 버린 인물들의 대응 방식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대응이란 게 보잘 게 없다. 모두들 잔뜩 겁을 먹고 있다. 주저하고 머뭇거린다. 한마디로 좀팽이들이다. 말하자면, <마츠가네 난사사건>은 좀팽이들의 열전이다.
마츠가네 난사사건
감독은 마츠가네라는 공간에서 벌어진 작은 소동극을 통해 흔히 우리가 '일본적 소통방식'이라고 느끼는, 진심과 표현이 일치하지 못하는 데서 파생되는 우스꽝스러운 풍경을 펼쳐 보인다. 그 풍경에 더 의미부여를 해보자면, 어디에서도 명쾌한 정당성을 얻을 수 없는 세상의 공모된 부조리이며, 그 안에서 허우적 대는 인간들의 처절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모두가 공범인데, 누가 누굴 탓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는 작은 이야기로도 꽤 많은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는 것은 확실히 재주다. 이야기의 힘은, 이래서 위대하다. 그런 감탄을 안고 극장 문을 나섰지만, 명동 CQN에서 외로이 개봉한 이 영화를 불과 몇 사람이 킥킥 대며 보고 있자니, 영 안쓰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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