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날씨가 좋건 나쁘건 덴마크에서는 여름만 되면 도심에서 덴마크 사람 만나기가 어렵다.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모두들 여름휴가를 가기 때문이다. 관공서나 개인기업체의 사무실에는 필수 인원만 교대로 남아있는 상태이고 상점들도 거의 문을 닫는다. 평소에 즐겨 가는 식당에 무심코 갔다가 문이 굳게 잠겨있는 것을 보고 돌아서기 일쑤이고 동네의 서점이며 음반가게, 고깃간이며, 치즈 가게, 꽃가게 등은 적어도 2주, 길게는 한 달 동안 문을 닫는다. 물론 슈퍼마켓이나 백화점, 관광객이 몰리는 시내 중심가의 상점들은 문을 열지만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대개는 임시 고용인이기 쉽다.
7월 중순 이곳의 유명한 가구 회사인 프릿츠 한슨의 공장을 가 볼 기회가 있었다. 여름휴가 기간이라 몇 사람 밖에 남아있지 않은 공장이 한산해 보였는데 그 다음 주부터 2주간은 모든 기계가 멈추고 공장이 완전히 문을 닫는다고 했다.
한국에서 모처럼 손님이 왔다. 간신히 1주일의 휴가를 받아 그 먼 거리를 온 것이다. 그 손님에게 덴마크 식 식당으로 안내하려 해도 웬만한 곳은 문을 닫아 여간 실망스러운 게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집에서 마련한 식탁에서, 시내를 구경하고 온 손님이 "덴마크 사람들은 왜 이렇게 뚱뚱하냐"는 질문을 던졌다. 평소에 자전거를 많이 타는 덴마크 사람들이라 뚱뚱한 사람이 거의 없는데 이상하다 하고 생각해보니 그 분은 시내에서 관광객들만 본 것이었다.
여름 휴가철이 시작되는 6월이 되면 모든 덴마크 사람들은 휴가에 대한 기대로 들뜨기 시작한다. 그동안 꽉 짜인 일상을 잘도 참아왔다는 듯, '이번 휴가에는 아무도 없는 바닷가 오두막집에서 푹 쉬어야지' 하고 말하는 동네의 직장인 아줌마 얼굴이 사뭇 해방감으로 설레어 보였다. 그리하여 휴가가 시작되면 마치 게가 사방으로 흩어져 제 집 속으로 들어 가버리듯 가족끼리 바닷가나 휴양지로 달려가서 휴가가 끝날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여름휴가는 덴마크인들에게 매우 소중한 것인데 이는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에서 벗어나 온전히 가족이 시간을 함께 보내며 삶의 활력소를 얻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현재 덴마크의 모든 직장인은 연간 6주의 유급 휴가를 누릴 수 있다. 이중 특히 5월 1일부터 9월 30일 사이의 여름 휴가기간에는 본인이 원하면 3주를 계속 쉴 수 있는 권리가 보장 되어있다. 이에 따라 덴마크 인들은 대개 여름휴가에 3~4주를 보내고 나머지 2~3주의 휴가는 크리스마스 기간이나 각자 필요할 때 사용한다.
그러나 덴마크 인이라고 해서 그들이 태고적부터 이런 권리를 누린 것은 아니다. 전번 주 코펜하겐 영자 주간지에는 '여름휴가는 모든 사람의 권리이다'라는 제목 아래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1928년 덴마크 정부의 통계조사에 의하면 22만4000명 중 휴가를 갈 수 있는 사람은 8만5000명에 불과했고 그 당시 가장 큰 산업이었던 제철노동자들의 유급 휴가가 3, 4일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후 10년 동안 노동조합의 끈질긴 압력이 결실을 맺어 1938년 의회에서 역사적인 법을 통과시켰는데 즉, 휴가에 관한 법규로서 모든 임금 노동자가 2주간의 유급 휴가를 갈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2주의 유급휴가 제도가 시작된 지 15년만인 1953년, 정부는 유급 휴가 기간을 3주로 늘렸다. 1971년에는 여기서 1주일이 더 늘어났고 1979년 지금과 같은 5주의 유급 휴가제도가 확립되었다.
이제 한국에서도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된 듯하다. 우리 직장인들의 휴가는 얼마나 될까. 우리는 덴마크의 1938년, 1953년, 1971년, 1979년 어디에 해당할지 궁금하다. 또 우리가 언제 덴마크의 1979년에 도달할 지도.
(이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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