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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장관의 저급한 盧정부 흔적 지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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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장관의 저급한 盧정부 흔적 지우기

<고성국의 정치분석ㆍ36> 집권여당 원내대표라는 사람마저…

새정부의 구정권 흔적 지우기가 부쩍 속도를 내고 있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전 정권 때 임명된 기관장들은 물러나라'고 깃발을 들자 기다렸다는 듯이 유인촌 문화체육부장관, 이윤호 지식경제부장관이 뒤따랐고, 급기야 대통령 업무보고에 특정 산하기관장을 배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사퇴요구를 받은 인사들 중 일부는 사표를 냈으나 개중에는 법적으로 보장된 임기를 지키겠다면서 일전불사의지를 밝히고 있는 사람도 있고 대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상태로 있는 모양이다.

참으로 딱한 일이다. 정권이 바뀌었으면 미리 알아서 그만둘 일이지 그깟 자리하나에 연연해하다 내몰리는 처지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그러나 더 딱한 것은 내몰리는 사람들 보다 그것도 권력이라고 산하기관에 있는 사람들을 서슬 퍼렇게 몰아대고 있는 초보 장관들이다.

"끝까지 자리에 연연해한다면 재임기간 어떤 문제를 야기시켰는지 구체적으로 명시할 수밖에 없다"는 전혀 문화적이지 않은 문화부 장관의 발언이나, "끝까지 버티면 사정을 할 수도 있다"는 청와대발 경고에 이르면 승자의 여유도 없고 패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는, 우리 정치의 저급한 수준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아 더욱 보기 딱하다.
▲ ⓒ연합

"노무현 정권에서 호가호위한 정치식객들은 물러가라"는 막말에 가까운 몰아치기에 어떤 국정운영상의 고민이 깔려있는지, 어떤 선거공학적 고려가 내재되어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런 식의 거친 몰아붙이기가 국민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겠다.

설사 이명박 정부의 신임장관들과 한나라당 지도부의 몰아치기가 백번 맞다 하더라도 이 정도 일도 소리 안내고 세련되게 처리하지 못하는 정권에 대해 어떤 국민이 높은 점수를 주겠는가. 각설하고.

김윤환, 김원기, 천정배…

우리나라 정당정치사에서 가장 뛰어난 원내대표로 김윤환, 김원기, 두 사람을 꼽는데 크게 이견이 없을 것이다. 두 사람이 여·야의 원내총무로 활동하던 시기는 1988~1990년이었다. 전두환 정권은 무너졌으나 민주정부는 들어서지 못한 채 노태우 정부와 여소여대라는 불안정한 정치구도 속에서 민주화 이행이 추진되던 역동적인 정치발전기였다.

상황이 그러했으므로 거리의 정치도 매우 격렬해서 어떤 면에서는 외형적인 정치적 공간은 넓어졌으나 실질적인 정치공간은 여전히 협소한 이중적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바로 그런 때 여·야의 원내사령탑을 맡았던 두 사람은 끊임없는 물밑접촉을 통해 정치의 격랑을 해쳐가며 정국의 물꼬를 트곤 했다.

두 사람의 정치 리더십에는 공통적으로 인내심과 역지사지 정신이 내재되어 있었다. 오죽했으면 김원기의 별명이 "지둘려"가 됐겠는가. 지둘려의 김원기와 자신을 비워버린 '빈 배'의 김윤환이 어렵사리 만들어 낸 물줄기를 따라 우리 정치는 현대사에서도 가장 격렬했던 정치격동의 시기를 구비 돌아 지금에 이르렀다 하겠다.

그 후로도 줄곧 권력에 의해 임명돼 원내 심부름이나 하는 자리로 인식되었던 원내총무직을 당 대표에 버금가는 투톱 중 하나로 격상시켜 명실상부한 원내사령탑으로 만든 것은 열린우리당이었다. 비록 3년 여의 정치실험 끝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리긴 했지만, 원내정당과 정책정당의 기치를 높이 들고 원내정치의 전권을 원내대표에게 부여한 열린우리당의 과감한 실험정신은 높이 평가받을 만 한 것이었다.

열린우리당은 1987년 직선제 개헌 후 치러진 4번의 총선거 중 유일하게 과반의석을 확보한 집권당이었으므로 그 당의 원내정치를 총괄할 원내대표의 정치적 비중이 어떠했을런지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해찬과 천정배간의 원내대표 경선은 노무현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이해찬을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범주류연합 후보였던 천정배의 승리로 끝났다.

원내대표 경선에서 패배한 이해찬을 곧바로 총리로 임명함으로써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독특한 인사스타일과 이 때 총리로 임명된 이해찬이 대통령의 신임에 힘입어 역대 총리 중 최고의 실세 총리로 행세한 일은 그 후의 일로써 여기서 따로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아무튼 천정배 원내대표 체제를 보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심정은 몹시 착잡했을 것이다. 원칙주의자인데다가 누구보다도 강성의 개혁주의자인 천정배가 과반의석을 확보한 열린우리당의 원내대표가 되었으니 열린우리당의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가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바야흐로 보수세력의 정치적 위기가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한나라당이 17대 원구성 교섭단계에서부터 거세게 버틴 것도 이런 절박한 위기의식이 작용한 탓이 컸다.

그리하여 모두가 정국의 파행을 예상하고 있을 때,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천정배의 승부수가 던져졌다. 그때껏 단 한 번도 집권당이 양보했던 적이 없는 법사위원장을 한나라당에 양보한 것이다. 법사위원회는 다른 상임위원회와 달리 모든 법률의 최종적 축조심의를 하는 위원회다. 집권당의 관문역할을 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천정배의 승부수는 곧 과반의석을 확보한 열린우리당이 절대적으로 고수해야 할 수문장 자리를 상대에게 넘겨주는 파격적인 양보였다. 그것도 수많은 개혁 입법과제를 앞에 둔 절체절명의 시점에서 말이다. 말 그대로 발상의 전환이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과반의석을 확보했다 하나 정치는 대화와 타협으로 하는 것이다. 야당을 존중하고, 야당을 설득함으로써 정국을 타협적으로 운영하면 되는데, 수문장이 여면 어떻고 야면 어떠냐."

천정배의 대담한 타협의 리더십은 그 후 6개월을 못가 네거티브 정치에 함몰되었고 그와 함께 천정배의 대권 꿈도 사실상 좌초되고 말았다. 천정배는 열린우리당 내 강경파로부터는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이상주의자'로 비판받았고 온건파로부터는 '원칙밖에 모르는 탈레반'으로 공격받았다. 또한 한나라당으로부터는 '이른바 "4대 악법"을 몰아붙인 원흉'으로 규정되었다.

천정배의 자진사퇴로 결론난 2004년 12월의 '4대입법 파동'은 천정배가 당내 양세력의 협공과 당 밖의 한나라당과 범우파 세력의 포위 속에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이부영 당의장과 함께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 김덕룡 원내대표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여 마지막까지 대화를 통한 타협을 끌어내려고 분투한 한국 의회정치 사상 참으로 눈물겨운 정치협상의 현장이었다고 하겠다.

집권여당 원내대표의 리더십이란

한국정당정치의 흐름 속에서 두 번의 원내대표 사례를 살펴 본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이명박 정부시기의 바람직한 여·야관계와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완만한 하락세와 통합민주당의 미미하지만 의미 있는 상승세가 교차하면서, 애초에 도무지 경쟁이 될 것 같지 않던 4·9총선이 의외로 수도권과 충청권의 혼전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한나라당의 과반의석확보는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곧 향후 한나라당의 원내 사령탑이 어떤 리더십에 의해 운영되는가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기조와 여·야관계 등이 심각하게 영향 받을 것이라는 점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마인드와 철학에 따라 국회가 이전투구와 정쟁의 장으로 전락할 수도 있고, 생산성 높은 민의의 전당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명박 정부시기 여·야관계에 대한 전망과 관련해 일차적으로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리더십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원내대표, 특히 집권당 원내대표에게 꼭 필요한 것은 국민통합적 국정운영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민주주의는 대화와 타협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정치철학이다. 원내대표 리더십의 기본요건으로 역지사지와 화이부동의 마인드와 자세를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지사지는 대화와 설득의 리더십의 핵심이다. 대화와 설득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생각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생각과 감성을 충분히 이해한 위에 그 생각과 감성까지 존중하면서 상호이해와 타협을 끌어내는 것이라면 그렇다. 역지사지 리더십이라면 파국을 예정한 모양갖추기식 협상이나 밀어붙이기를 위한 명분축적용 대화 따위의 소모적이고 전근대적인 행태들을 지양해 갈 수 있을 것이다.

화이부동 리더십은 다름에 대한 적극적 인정과 다양성에 대한 주체적 수용을 핵심으로 한다. '군자는 서로 다르나 같이 어울리고, 소인은 같으나 서로 반목한다'는 말대로 화이부동 리더십이야말로 융합과 통섭을 통해 진정한 국민통합적 리더십을 구현해 가는 통 큰 리더십이라 할 것이다.

안상수 발언 유감

이러한 문제 틀에서 볼 때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지난 11일 발언은 매우 잘못된 것이었다.

"지난 10년간 국정을 파탄시킨 세력들이 야당과 정부조직, 권력기관, 방송사, 문화계, 학계, 시민단체 등 각계의 요직에 남아 새 정부 출범의 발목을 잡고 개혁을 방해하고 있다. … 국무위원 후보에 대한 흠집내기로 아직도 조각조차 못하고 있다."

안상수 원내대표의 논법은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해 온 극우집단의 갈등지향적 선동구도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런 식의 논법은 국민통합적 국정운영에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여·야간 생산적 경쟁과 경쟁적 협력관계 정립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나라당 지도부로서는 17대 국회도 이미 끝났고 딱히 야당의 협조를 구할 일도 없으며 공천탈락자들에 대한 자리도 서둘러 만들어야겠고 한 달 남은 총선거를 위해서도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을 끌어들여 공세적으로 대립구도를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정치적 계산을 했을 법하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원내대표만은 금도를 지켜가는 것이 꼭 필요하다. 원내대표 자리는 양당간 최소한의 신뢰를 근거로 그 역할과 영향력이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논법도 논법이지만,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문화계, 학계, 시민단체에 대한 인식이다. 어떻게 해서 그가 문화계, 학계, 시민단체의 요직에 국정파탄 세력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과연 문화계, 학계, 시민단체에 정치권이 물러가라 마라 할 자리가 있는가 하는 것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대통령이나 장관, 또는 정치권이 물러가라 마라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독자성을 가진 문화계, 학계, 시민단체가 아닐 테니 하는 말이다.

백보 양보해 그의 말대로 노무현과 코드를 맞춘 인사들이 일부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치자. "나는 우리 사회의 문화의 다양성, 학문의 개방성, 시민단체의 자정능력을 믿는다. 비록 전 정권에 의해 임명돼 우리와는 코드가 다른 사람들이 일부 문화계, 학계, 시민단체의 요직에 있으나, 그들이 그 자리에서 직분을 잘 수행하는 것이 국가 전체의 균형 잡힌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므로 정권이 바뀌었다고 위축되지 말고 소신껏 일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는 못하는 것인가. 정녕 우리 정치권에게는 이런 통 큰 정치, 국민 우선 정치, 통합과 포용의 정치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국민여론에 대한 잘못된 시각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전 정권과 코드가 맞는 사람들이 국무위원 후보자들에 대한 흠집내기에 일관해 아직 조각도 못하고 있다 했는데, 그는 과연 정말로 자진사퇴한 세 사람이 흠집내기로 인해 억울하게 낙마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했을 뿐인" 후보자나 오피스텔을 선물로 받은 통 큰 후보자 모두 부동산 투기의혹보다는 그들의 해명성 발언이 국민을 더욱 분노케 하고 실망케 한 결과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는 것일까. 그리고 바로 그들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분노로 인해 취임한지 불과 2주일 만에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지지도가 48.5%로 급락했음을 정말로 모르는 것일까.

공감의 정치력이 아쉽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정책의 실패보다는 정치의 실패였다고 할 수 있다. 국민과의 소통실패, 지지자들과의 교감실패, 당·정·청간 조정실패, 대야당 설득실패가 노무현 정부 실패의 핵심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과연 노무현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국민과 소통하고, 지지자들과 교감하며, 당·정·청간 원활한 조정과 유기적 협력을 통해 국민에게 안정감을 부여하고 지지자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며, 야당에 대한 설득력을 높여 여·야간 협력적 경쟁관계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

2007년 12월 19일 이후 지금까지 이명박 대통령과 새정부, 그리고 한나라당이 보여준 모습은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청와대도 새정부도 그리고 한나라당도 국민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부정적 평가의 주요 근거이다.

이미 현실에서 드러나고 있듯이 효율과 성과를 중시하는 실용주의 정부는 국민과 소통하고 공감을 나누는 것보다는 밀어붙이는 쪽으로 경사될 가능성이 높은 정부다.

그런 만큼 국민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집권당의 정치적 역할이 더욱 중요해 질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한나라당의 원내사령탑이 갈등지향적 리더십이 아니라 통합지향적 리더십이 되어야 하는 것은 정권의 성공과 성공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선결요건인 것이다. 4·9총선 후 있을 한나라당의 원내 지도부 구성과 권력구도 재편이 주목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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