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e삼성 지분을 사들인 삼성 계열사 직원과 주주들이 속상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해당 회사 경영진에게 책임을 묻는 것도 당연하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할 경영자들이 회사 바깥에 있는 이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쳤으니까.
삼성특검, e삼성 사건 피고발인 전원 불기소 처분
하지만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이런 상식이 법조계에서는 간혹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삼성 비리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조준웅 특별검사팀이 13일 발표한 내용이 이런 경우다.
삼성특검은 이날 e삼성 사건 피고발인 28명 모두에 대해 "증거가 불충분해 혐의가 없다"며 불기소 처분했다. "삼성 계열사 경영진이 구조본의 지시에 따라 e삼성 지분을 인수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인정했음에도, 특검은 이런 결정을 내렸다.
오로지 이재용 씨가 부담할 손실을 대신 부담하기 위해서만 내려진 결정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또 해당 계열사 내부에서 자체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거쳤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 'e삼성' 사건 관련 기사 ☞ 삼성특검, 이재용 주도 'e삼성' 수사 착수 ☞ "삼성의 2001년 e삼성 관련 해명도 짜맞추기" ☞ "핵심은, 구조본이다" ☞ "핵심은, 이재용이죠" |
"김용철 증언 무시한 특검의 판단, '의도적인 봐주기'를 위한 결론일 뿐"
이재용 씨 등 e삼성 사건 관계자들을 배임죄로 고발했던 참여연대, 경제개혁연대 등이 강하게 반발하는 게 당연하다. 참여연대와 경제개혁연대는 이날 성명을 통해 특검의 불기소 방침을 조목조목 비판하며, 항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참여연대는 이날 성명에서 "특검의 판단은 상식적으로도 모순될 뿐더러 의도적인 봐주기를 위한 결론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약 380억 원 대 이상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되는 e삼성 청산 과정이 삼성 계열사 경영진의 자발적 결정에 따른 것일 리 없다는 판단에 따른 지적이다.
이어 참여연대는 "김용철 변호사가 '구조본의 지시로 이재용 씨의 손실을 메우려 한 지분인수였다'라고 밝힌 범죄 동기를 철저히 무시한 결정이 아닐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가 명시적으로 밝힌 내용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는 것.
☞ 참여연대 성명: e 삼성 특검수사, 봐주기 결론에 짜맞춘 불기소 결정 ☞ 경제개혁연대 성명: 무책임한 e-삼성 수사결과, 삼성특검은 면죄부특검으로 전락하려는가 |
e삼성 지분, 높은 가격으로 계산한 근거는?
그리고 "e삼성 인수가격에 대해 회계법인의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라는 삼성특검의 발표 내용에 대한 반박도 뒤따랐다.
참여연대는 "설립된 지 1년 정도밖에 안 되는 회사의 가치는 평가하기 어렵기에 평가 의뢰자의 주문에 따라 변동 가능하다. 그래서 최근 법원에서도 회계법인의 사전 평가만으로 의사결정의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판결도 나온 바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참여연대와 함께 항고하겠다는 뜻을 밝힌 경제개혁연대는 이 부분에 대해 보다 자세한 설명을 곁들였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날 성명에서 삼성 계열사들이 e삼성 사업 관련 회사를 인수하면서 사용한 자산가치평가 방식을 문제 삼았다. 삼성 계열사들이 적용한 순자산가치평가법은 "당시 생존여부가 불확실했던 인터넷 기업의 가치평가방법으로 결코 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라는 게 경제개혁연대의 판단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세계적인 증권회사인 메릴린치 증권은 해당거래와 인접한 시점, 삼성SDI 분석보고서를 통해 'e-삼성인터내셔널과 같은 벤처회사는 현재 순자산가치에서 30~40% 할인돼 팔리고 있다'고 하여 순자산가치에 따른 인수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바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제개혁연대는 "이재용 씨로부터 계열사들이 인터넷 기업의 지분을 인수한 시점은 코스닥 지수가 50~70선까지 하락했던 시기로서 생존능력이 있었던 코스닥 등록업체들의 주가조차 이재용 씨가 투자했던 시점에 비해 약1/4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삼성 계열사가 e삼성 관련사 지분을 인수할 무렵은 벤처 열풍이 식으면서 우량 벤처기업조차 주가가 떨어지고 있던 시기라는 설명이다.
"구조본 지시로 계열사 경영진이 부적절한 평가방법 동원했다"
하지만 이재용 씨는 자신이 매입한 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지분을 팔 수 있었다. 게다가 이재용 씨가 소유하고 있던 e삼성 관련사들은 수익모델조차 불분명한 상태였다.
여느 벤처기업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거래된 e삼성 관련사들에 대해 의혹의 눈길이 쏠리는 게 당연하다.
이어 경제개혁연대는 "부실 인터넷 기업인 피인수회사의 지분을 취득한 제일기획, 삼성SDS 등 삼성계열사 등의 지분 취득원가와 2004년말 공시된 장부가액 또는 순자산가액을 비교하면 불과 3년 만에 380억 원 이상의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삼성특검이 발표한 것과 달리, 삼성 계열사들이 부실기업인 e삼성 관련사들의 지분을 인수한 결정은 자연스런 내부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근거다.
그래서 경제개혁연대는 "e삼성 사건의 경우, 구조본의 지시로 이사들이 선관의무와 충실의무에 위반하여 부적절한 평가방법을 이용하여 이재용 씨의 이익을 도모한 것으로 보아야 할 충분한 정황이 있다고 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재용 불기소에 대한 비난, 서울고검에 떠넘기나"
한편, 이날 쏟아진 성명 중에는 "공소시효를 앞두고, 항고 기회를 주기 위해 미리 불기소 여부를 밝혔다"라는 삼성특검의 발표 내용을 꼬집는 대목도 있다.
관련 법에 따르면 고발인인 경제개혁연대와 참여연대는 특검의 불기소 처분을 통보받은 뒤 30일 안에 서울고검에 항고해야 한다. 그리고 서울고검이 항고를 받아들이면, 재수사가 가능하다.
서울고검이 항고를 기각하면, 고발인들은 검찰총장에게 재항고할 수 있다. 서울고검은 공소시효가 끝나는 26일까지 항고 수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서울고검이 기각한 항고를 검찰총장이 수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이재용 씨 등 e삼성 사건 관계자들에 대한 기소 여부는 사실상 서울고검이 결정하게 된다. 그런데 서울고검이 독립수사기관인 특검의 불기소 결정을 뒤집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참여연대가 이날 "e삼성 사건을 불기소로 처리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비난을 고등검찰에 떠넘기려는 것에 불과하다"라고 지적한 것도 그래서다. 사업은 구조본이 주도하고,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은 계열사에 뒤집어 씌웠던 e삼성 사건과 쏙 빼닮은 결정이라는 지적이 나올 법하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