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통첩성 발언이라고도 한다. 영남권과 서울 강남권의 공천 결과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경우 분당에 준하는 탈당을 감행할 수 있음을 시사한 발언이라고 한다. 정리하자면 박근혜 전 대표가 '겨누는 칼'을 꺼내들었다는 얘기다.
박근혜, 칼을 겨누긴 했는데…
그럼 어떨까? 과녁이 된 이명박계는 무서워할까? 박근혜 전 대표가 '겨누는 칼'을 '찌르는 칼'로 용도변경할까봐 벌벌 떨까? 그래서 최후통첩을 수용할까?
관건은 용도변경 가능성이다. 이명박계가 박근혜 전 대표의 탈당을 '있을지도 모를 사태'로 바라본다면 한 발 물러설 공산이 크다. 총선 전이든 후이든 박근혜계가 떨어져나가 한나라당이 원내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하면 몰골이 처참해진다. 정부는 안정적 국정운영을 할 수 없고 한나라당은 야당의 등쌀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표의 탈당이 '가능하지 않다'고 확신한다면 태도는 달라진다. 박근혜 전 대표의 경고를 가슴에 담을 이유가 없다.
이렇게 보면 한나라당 공천갈등을 진단하는 잣대를 바꿔야 한다. 박근혜 전 대표의 의지가 아니라 처지를 우선 살펴야 한다.
그닥 좋지 않다. 오갈 데가 별로 없다.
박근혜 전 대표가 탈당을 감행할 경우 반드시 이뤄야 하는 성과는 원내교섭단체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차기를 노리는 자신의 존재감을 이어갈 수 있다. 자유선진당에 합류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이회창 총재가 버티고 있기 때문에 박근혜 전 대표는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 '여럿 가운데 하나'가 된다. 그럴 바에는 한나라당에 남아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의 이미지를 살리는 게 낫다.
헌데 쉽지가 않다. 때를 놓쳤다. 박근혜계가 공천 데드라인으로 주장했던 2월말은 이미 과거가 돼 버렸다. 영남권 공천은 여전히 안개속이다. 3번 연거푸 심사가 연기된 상태다. 자파 인사들을 이끌고 탈당해 정당을 창당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비례대표를 얻을 수 없다.
같이 보따리를 쌀 인사가 몇 명이 될지도 확신할 수 없다. 선택의 기로에선 대개가 흔들리는 법이다. 더구나 집권여당 프리미엄을 앞에 두고 있기 때문에 진폭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설령 여러 인사가 같이 보따리를 싼다 해도 당선을 보장할 수 없다. 어차피 탈당 대열에 합류하는 인사의 상당수는 공천 탈락자가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공천 불복자가 된다. 이런 인사들을 유권자가 곱게 봐준다는 보장이 없다.
어찌어찌해서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한다 해도 장기적으로 득 될 게 없다. 박근혜 전 대표의 존재감은 유지되겠지만 그렇다고 위상을 끌어올릴 수는 없다. 오히려 이회창 총재처럼 특정지역 정파의 수장으로 격하될 소지가 다분하다.
진퇴유곡…살아남는 게 목표다
박근혜 전 대표의 처지가 이렇다.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진퇴유곡의 형국이다. 어쩔 수 없다. 처지가 진퇴유곡이라면 계곡 안에서 끝장을 봐야 한다. 물론 이 경우 싸움의 목표는 전진이 아니라 보존이다. 땅따먹기 싸움이 아니라 살아남기 싸움이다. 버티고 버텨서 한 명이라도 더 살아남게 만들어야 한다.
비유를 약간 틀면 이런 얘기가 된다. 박근혜 전 대표는 이명박계의 잽 연타에 그로기 상태가 돼 코너에 몰려있다. 가드를 올리고 버티는 것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그래야 KO패를 면할 수 있다.
물론 칠전팔기의 역전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KO든 판정이든 지는 건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면 가드를 내리고 카운터펀치를 날릴 수 있다.
그래서인가 보다. 한나라당 공천심사위가 영남권과 서울 강남권의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진을 빼는 이유가 그것인가 보다. 젖 먹던 힘까지 빼기 위해서….
* 이 글은 김종배의 뉴스블로그 '토씨(www.tosee.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