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시험을 봐서 등수 매긴다는 자체가 마음에 안 들고 못하는 애들은 얼마나 상처를 받고 부모님들께 혼나는지 어른들은 모른다. 이거 하나 못 봤다고 엄마한테 아빠한테 조낸 쳐맞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나 이러는 건지…. 이봐 요즘 학생들이 얼마나 불쌍한지 알아? 요즘 애들 학교-학원-숙제야. 하루 종일 공부에 썩어가며 살고 있다고 알겠냐? 아무리 공부 잘하면 뭐하니 행복하지 못한데. (지난 6일 일제고사를 치른 서울 영등포의 한 중학교 학생이 밝힌 소감)
14살 아이들이 지난 6일 전국 일제고사를 봤습니다.
처음 중학교에 들어와 어리둥절 낯설기만 한데, 막 사춘기를 겪으며 몸과 마음이 싱숭생숭하기만 한데, 따뜻한 배려, 친절한 안내는 없이 '시험'으로 무지막지하게 때리고 억누르는 방식으로 시작합니다.
시험은 등수가 되고, 중학교에서 처음 만난 아이들은 이미 서로에게 적이 됩니다. 일등짜리와 꼴등짜리로 나뉘어, 영재와 꼴통으로 나뉘어, 승리자와 패배자로 나뉘어 서로에게 등을 돌려야 합니다. 교실만이 아닙니다. 전국 시험이니, 학교도 등수가 매겨집니다. 학교 등수에 따라 아이들은 속병을 앓습니다.
14살 뿐이 아닙니다. 11~13살 아이들도 전국 시험을 곧 본답니다. 이런 전국 시험을 초·중·고 모든 학생들이 1년에 몇 차례씩 보고, 등수가 공개되고, 우리 아이들은 그 등수에 따라 모진 채찍질을 당합니다.
자율과 다양성을 중시하겠다더니 시험 하나에 전국의 모든 학생들을 '선다형 찍기 공부'와 '선착순 달리기 학습'으로 내달리게 해 오히려 획일적인 고통을 강요하고 말았습니다.
시험공부는 올바른 공부가 아닙니다. 더더욱 등수를 매기는 것은 학생들을 분리수거하겠다는 천박한 발상입니다. 등수 올리기 경쟁은 끝도 목표도 없는 죽음의 경쟁입니다. 이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아토피, 게임중독, ADHD(자폐성 장애 및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왕따, 폭력적 일탈, 가출과 자살충동에 내몰리며, 친구 대신 휴대폰과 정서 공감을 느끼는 기형적인 인간이 되어갑니다.
부모님들께 호소합니다.
이 처절한 학벌과 학력 사회에서 부모의 희망이 오직 '공부'로만 집착하는 것을 탓할 수 없지만 그래도 자녀 사랑의 근본을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어떤 아이가 내 아이가 되길 바랍니까? 취미도 특기도 친구도 그 자신의 삶도 다 버리고 오직 공부만 해서 얻을 것이 무엇입니까? 명예와 권력? 돈과 출세? 이런 것입니까? 그러나 이런 것은 이미 정해진 아이들이 갖습니다. 등수(서열) 게임은 개천에서 용 나는 그런 감동적인 역전 드라마를 만들지 않습니다.
등수는 단순한 암기 학습, 선다형 문항식 시험, 문제풀기 중심의 전국 일제고사 같은 '시험'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 같이 공부해서는 승산이 없습니다. 학교를 떠나, 남 모르게, 남보다 어릴 때부터, 남보다 많이, 남보다 높은 수준으로 사교육을 해야 승리합니다. 결국 '돈'이 결정합니다. 그렇습니다. 서열 게임은 원정 출산하고 태교부터 영어 몰입교육을 하는 부류들이 패거리를 지어 학벌의 천국으로 가는 길이고, 지금 우리 모두는 그 길에 들러리 서고 있습니다.
등수(서열)교육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무한 낭비의 교육, 1등 이외는 모두 실패로 귀결되는 패배의 교육, 인간 상호 신뢰가 무너지는 절망의 교육, 경쟁도 경쟁력도 결국 일등만을 위한 불신의 교육, 등수에 몰두함으로써 다른 여타의 정신을 잃어버리게 하는 노예의 교육, 결국 아이들을 죽이는 교육입니다.
아이들의 기를 살리고, 부모와 자녀가 모두 행복해지는 교육, 그것은 등수(서열) 교육을 거부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전국 일제고사, 등수 매기기와 공개하기 같은 저급한 정책이 초중등 교육 정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이 모든 미친 짓이 학벌 사회와 대학 서열 체제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임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아니다!'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진정으로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라면, 자녀가 스스로 행복하고 부모와 함께 즐거우며 친구들과 어울리고 인간으로서의 덕목과 삶의 가치를 배우며 자기 내부의 힘을 키우면서 자라나길 바랄 것입니다.
그런 교육을 위해 저희들도 '아니다!' 외치며 나서겠습니다. 부모님들과 학생들의 고통에 동참하며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교육'을 위해 겸손과 정성으로 함께 하겠습니다.
* 필자는 30여년 동안 중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쳐왔으며, 전교조 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진보신당(준)에서 교육 분야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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