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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위기는 소설의 위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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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위기는 소설의 위기에서

[오동진의 영화갤러리]

정(正)교수가 아닌 사람들에 관한 한 수업 연차에 제한이 있어서 임용 여부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일단 새학기 새수업을 시작했다. 한두시간 더 가르치다가 초빙교수는 3년까지라는 규정 때문에 갑자기 폐강을 하고 학교를 떠나야 할지 모른다. 그걸 모르고 새강의를 시작했으니 나도 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아이들을 만나는 건, 기분이 꽤 좋다. 아이들은 방학만 지나고 나면 완전히 새로운 모습이 되서 나타난다. 특히 여학생들이 그렇다. 얼굴 성형을 하거나 몸매 교정을 한 것도 아닐텐데 여자 아이들은 그야말로 '확' 바뀐다. 강의실 복도에서 지나치는 여학생들을 몰라보고 지나치는 건 그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배시시, 인사를 한다. 자신들도 자신들이 변한 것이 쑥스러운 모양이다. 그동안 아이들에게 영화를 가르친다고 했지만, 가르친 게 별로 없다. 속으로 늘, 뭐 아는 게 있어야지 하는 자조섞인 마음이 있기도 했지만 사실은 영화란 게 워낙, 뭘 가르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가르치려고 했던 것은 정작 무엇이었을까. 단골메뉴는 아마도 다치바나 다카시 얘기였던 것 같다. 동경대 교수 가운데 다치바나 다카시라는 인물이 있거든, 이 사람이 쓴 책 가운데 '동경대생은 죽었는가'라는 게 있는데, 우리시대에 필요한 것은 스페셜리스트가 아니고 제너럴리스트라고 했어, 그러니 너희들도 (스페셜한) 영화에 매달리기 이전에 (제너럴한) 인문학부터 섭렵하는 게 순서야, 알았지? 등등. 그래서 지난 시간에도 코맥 맥카시의 책을 수업시간에 가져갔었다. 코헨 형제감독 영화 본 사람,하고 물었다. 스크린수가 너무 적어서인지 손을 드는 아이들이 많지 않았다. 잘됐다,싶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맥카시의 책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먼저 보라고 했다. 내친 김에 영화 <어톤먼트>를 보기 전에 이언 매큐언의 '속죄'를 먼저 보는 것도 좋다고 했다. 먼저 보라고 하고 싶은 책이 한도끝도 없이 많았지만 꿀꺽, 그쯤에서 멈췄던 것 같다.
데어 윌 비 블러드

<가족의 탄생>을 만든 김태용 감독과도 비슷한 얘기를 나눴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니까 미국 감독들은 너무 행복하겠다고 그에게 말했다. 수상작들이 죄다 원작이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나 <어톤먼트>말고 <데어 윌 비 블러드>도 업톤 싱클레어의 '오일'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니까. 김태용 감독은, 거기에 비해 여기는 감독들이 '쌩으로' 시나리오를 써야 한다면서 그 고통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워낙 조용한 성격이고 대화도 자분자분 하는 스타일이어서 살짝 미소까지 지으며 한 얘기이긴 하지만 김태용 감독의 말은 그냥 지나쳐 버려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서점에 나가 수도없이 새로 만나게 되는 작품들은 일본소설이다. 미야베 미유키는 왜 이리도 계속해서 써대는지, 기리노 나쓰오는 또 어떻고, 일본 작가들은 다들 미친 것 같다고 생각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작품들이 나올 때마다 덜커덕 판권계약을 하는 쪽은 바로 국내 영화계다. 따지고 보면 <올드보이>도 일본 것, <권순분여사 납치사건>도 일본소설 '대유괴'의 번안판 영화였다. 국내에는 언제부턴가 영화제작의 '샘물'같은 역할을 할 '소설이 죽어버린 것'이다. 김태용 감독은 그래서, 영화진흥위원회가 영화제작지원만 할 것이 아니라 소설창작 지원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영진위가 할 수 없으면 문화콘텐츠진흥원 같은 기구가 해야 할 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영화계가 위기라느니 어쩌느니, 얘기가 많지만 궁극적으로 그 원인은 인문학의 뿌리가 흔들렸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국내 소설이 인기를 얻고, 소설가가 힘을 얻을 때 영화가 비로서 다양한 얘깃거리를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새학기다. 아이들이 영화를 많이 보기를. 그보다 도서관이든 학교 벤치든, 빈 강의실에서든 아이들이 항상 책을 끼고 다니며 독서삼매경에 빠져들기를 바란다. 영화의 미래는 아이들의 책읽기에 달려있다는 말은 백번 강조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 글은 영화주간지 '무비위크'에 실린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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