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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 없는 '과학입국'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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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 없는 '과학입국' 불가능"

[아시아 과학자를 찾아서] 아리마 아키토 박사

<프레시안>은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와 공동으로 2008년 특별한 기획을 마련한다. 대만, 베트남, 중국, 일본, 필리핀 등 아시아 각국의 과학자를 직접 만나 그들의 생생한 육성을 통해서 이른바 '아시아에서 과학자로 살아가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따져보기로 한 것.

이 기획을 통해 독자들은 오랫동안 긴밀하게 교류해왔고, 앞으로도 어떤 식으로든 공동체를 꾸려갈 수밖에 없는 아시아 각국의 과학 현실을 직접 살피고, 현장 과학자의 생생한 고민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기획의 첫 주인공은 일본의 세계적 물리학자 아리마 아키토(有馬朗人·78) 박사다.

아리마 박사는 말 그대로 일본의 '대표' 과학자다. 그는 24세 때인 1954년 '원자핵의 자성(磁性)'을 규명한 논문으로 전 세계 물리학계의 주목을 받으며 학계에 등장했다. 그 후 37세 때인 1967년, 원자의 구조를 설명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면서 세계적인 물리학자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그의 이런 업적은 모두 교과서에 그의 이름과 함께 올라 있다.

아리마 박사는 이처럼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중요한 과학자일 뿐만 아니라 교육, 과학 행정가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도쿄대학교 총장, 일본이화학연구소(RIKEN) 이사장 등을 맡은 데 이어, 2001년 문부성과 과학기술청이 통합돼 출범한 문부과학성의 초대 장관을 역임했다. 그는 현재 일본과학재단 이사장과 무사시대학교 총장을 맡고 있다.

<프레시안>은 지난 1월 9일 무사시대학 총장실에서 두 시간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통역은 RIKEN의 김유수 박사가 맡았다. 다음은 인터뷰를 정리한 내용이다.

▲아리마 아키토 일본과학재단 이사장. 그는 2008년 3월 현재 무사시대학 총장도 겸임하고 있다. ⓒ사이언스북스

과학입국(科學立國)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

프레시안 : 이 인터뷰는 아시아 각국 과학자에게 지금 아시아에서 과학 활동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시아에서 과학자로 살아가는 게 과학자 자신에게, 공동체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을 묻고 더 나아가 아시아의 과학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바람직한 미래상을 찾고자 마련되었습니다.

아리마 : 그 질문은 아주 흥미롭습니다. 사실 1950년까지 아시아 사람은 아시아에서 과학이 가능할까, 이런 의문을 품고 있었습니다. 중국, 인도, 일본,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나라는 상당히 훌륭한 문화를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시아 사람은 자기들 고유의 문화가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 자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서양 문화'와 맞닥뜨려야 했습니다.

17~19세기 전 세계로 뻗어나간, 과학기술의 뒷받침을 받은, 서양 문화에 아시아 사람은 주눅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과학, 기술에 대한 자신감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일반 민중이 계속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는데도, 19세기 말부터 일본, 중국, 한국의 교육기관에서 서양에서 확립된 과학기술을 그대로 수용해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이런 사정 탓입니다.

이렇게 20세기 들어서 과학기술을 본격적으로 수용하면서부터 일본, 중국, 한국 등은 '아시아도 과학을 할 수 있다', 이런 자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아시아 각국은 과학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다, 아니 발전시켜야 한다는 자신감, 필요성을 더욱더 절감하게 됐지요.

프레시안 : 인터뷰를 위해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찾아보니 요즘에 널리 쓰이는 '과학입국(科學立國)'이라는 말이 제일 먼저 쓰인 게 1920~1930년대 일본이었습니다. 이 말은 곧 한국, 중국에서도 널리 쓰이게 되었지요. 이 말이 널리 쓰이게 된 배경을 염두에 두면, 아시아에서는 처음부터 과학을 부국강병의 수단으로 인식했던 것 같습니다.
▲아리마 아키토 일본과학재단 이사장. ⓒ사이언스북스

아리마 :
맞습니다. 한 가지 예부터 볼까요? 유럽 대학에는 공과대학이 없는 곳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유럽에서 공과대학이 본격적으로 생기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입니다. 반면 일본에는 이미 19세기 말에 도쿄대학교에 공과대학이 있었지요. 일본, 중국, 한국은 이미 그때부터 공과대학, 농과대학 등 응용과학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하버드대학에는 공과대학이 없습니다. 프린스턴대학에 공과대학이 생긴 것도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정리를 하자면, 전통적으로 유럽, 미국에서는, 특히 대학에 초점을 맞춘다면, 기초과학이 중심이 돼오다 최근에서야 응용과학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지만, 일본은 이미 19세기에 응용과학의 중요성을 깨달았던 거지요.

이렇게 된 데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서양과 접촉이 잦아지면서 일본 사람들이 충격을 받은 것은 바로 서양의 기술, 특히 경이로운 기술의 결과로 탄생한 온갖 인공물이었습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후에는, 일본은 전쟁에 진 것이 아니라 바로 기술에서 졌다, 이런 인식이 널리 받아들여졌지요.

20세기 초부터 일본에서 '과학입국'이라는 말이 유행한 것이나,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일본이 기술을 발전시키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은 이런 배경에서였습니다. 일본의 이런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공해서, 1980년대에 일본은 기초과학보다는 응용과학, 특히 산업에 쓰이는 기술이 강한 나라로 인식될 정도가 되었지요.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아시아 각국의 과학 현실을 살펴보면 기초과학이 응용과학보다 훨씬 더 강했습니다. 물리학은 그 한 예입니다. 1930년에 인도의 라만(C. V. Raman) 선생이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1949년에는 일본의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 선생이 노벨상을 받았지요.

인도, 일본에 비하면 좀 늦긴 했습니다만 중국도 1957년에 리정다오(李政道), 양전닝(楊振寧) 선생이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인도, 중국, 일본의 과학자가 서양 과학자 못지않은 큰 업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서양 문화가 아시아에 충격을 주기 전부터 이곳에 대단히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 특히 기초과학의 전통이 존재한 탓입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일본에서는 다시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 들어 일본의 경제, 산업의 위기가 계속되면서 기초과학의 뒷받침 없이 산업에 당장 쓰일 수 있는 기술만 강조하다가는 언제든지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1995년부터 일본은 본격적으로 기초과학을 육성하려는 다양한 노력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기초과학 뒷받침 없이는 상업화도 어려워

프레시안 : 방금 유럽, 미국 대학 연구의 추이가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최근 과학의 흐름은 기초과학의 축소, 응용과학의 확대로 요약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과학의 상업화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진리 탐구, 공공 기여와 같은 문제의식이 과학 연구에서 갈수록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보십니까?

특히 한국, 일본, 중국 등에서는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도 당장 성과가 나타나는 과학 분야를 지원하는 분위기가 아주 강합니다. 여기서 성과는 대개 돈벌이로 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지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 기초과학에 지원이 줄어드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큰 것도 사실입니다.

아리마 : 과학의 상업화 문제를 거론하자면 먼저 시장 중심의 지구화와 연관시켜 봐야 할 듯합니다. 1980년대부터 특히 1990년대 들어 시장이 선도하는 지구화의 압력에 전 영역이 노출되었습니다. 과학 역시 무관하지 않지요. 그 전형적인 상징이 바로 미국의 실리콘밸리입니다.

'실리콘밸리'는 과학과 기술의 관계에서 기술의 승리를 상징하는 곳이자, 모든 연구 활동이 바로 상업 활동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지구화 시대 과학의 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 이런 상황이 앞으로 더욱더 심해질 게 뻔한데, 이걸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단 나는 괜찮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정말 진리 탐구, 공공 기여와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이들은 돈과 상관없이 기초과학에 온몸을 던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2002년 노벨상을 수상한 고시바 마사토시(小柴昌俊) 선생이 '뉴트리노'라는 소립자를 검출하고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연구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연구는 결코 돈이 될 수 없는 연구지요.

당장 내가 평생을 걸쳐 해온 원자핵물리학도 결코 돈벌이와 관련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연구할 때, 이게 돈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연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불가사의한 자연현상을 이해하는 데 흥미가 있었을 뿐입니다. 이처럼 앞으로도 단지 기초과학이 좋아서 그런 연구에 평생을 바치는 이들은 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렇게 기초과학자들이 하고 있는 일들이 '어떻게 세상에 도움이 되는가?',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 것은 사실입니다. 한국, 일본, 중국에서 정부가 기초과학을 홀대하는 게 아닌가, 이런 우려가 나오는 것도 지적한 대로입니다. 나 역시 이 점은 걱정스럽습니다. 아까도 언급했듯이, 기초과학의 뒷받침 없이는 돈을 벌 수 있는 연구도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어떤 기초과학 연구는 전혀 뜻밖의 응용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광촉매 연구가 그렇습니다. 애초 후지시마 아키라(藤嶋昭) 선생 등이 물질 표면 특징을 파악하려는 순수한 목적에서 시작한 이 연구는 이제 에너지, 환경 분야의 각광받는 산업으로 응용되는 분위기입니다. 애초 후지시마 선생의 연구가 없었다면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항상 균형을 잘 맞추는 게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지구 온난화, 에너지 문제 등처럼 시급히 대응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연구가 있습니다. 이 연구는 당장 성과가 나타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정부가 이런 연구에 좀 더 우선순위를 두고 연구비를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반면에 당장 어떤 성과가 나타날지 불확실하지만, 연구자 개개인의 호기심, 관심사에서 비롯된 여러 가지 연구가 있습니다. 정부는 대학, 연구기관 등에서 진행되는 이런 연구 활동이 축소되지 않도록 연구비 지원과 같은 배려를 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가 잘 균형을 이룰 때, 지구화 시대에도 과학이 성공적으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학은 보편적…… 세상 바라보는 눈은 동·서양 달라

프레시안 : 앞에서 서양과는 다른 아시아 과학의 특수한 역사적 배경을 쭉 설명했습니다. 선생님은 아시아에서 과학자로 산다는 것, 즉 아시아에서 과학 활동을 하는 게 아시아와 다른 지역, 즉 유럽, 미국에서의 그것과 특별히 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아리마 :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나는 과학의 보편성을 확신합니다. 과학 자체는 전 세계적으로 똑같은 가치를 가집니다. 한국에서 진실이면 일본, 미국, 유럽에서도 진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아시아에서의 과학 활동이 유럽, 미국에서 하는 과학 활동과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동양과 서양이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차이가 있긴 합니다. 많은 서양 과학자와 교류하면서 여러 번 느끼는 경험을 얘기해볼게요. 유럽 사람은 전통적으로 좌우대칭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일본 사람은 그렇지 않아요. 예를 들면 유럽 정원은 대단히 아름답게 좌우대칭이 이뤄져 있어요. 그러나 일본에서는 그런 정원을 찾기 쉽지 않아요.

1950년대 물리학계에서 양자의 대칭성을 놓고 논란이 벌어진 적이 있었어요. 유럽 과학자는 절대로 대칭성이 붕괴되는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중국 과학자는 대칭성이 깨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어요. 결국 중국의 과학자가 양자의 대칭성이 붕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증명했지요.

반면, 유럽의 과학자는 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별 연구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각 나라별로 과학자가 성장한 문화 배경에 따라서 생겨난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이 다른 관점이 서로 보지 못하는 다른 면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줄 수는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유럽의 과학자는 설사 무신론자라고 하더라도 마음 한구석에는 반드시 기독교적인 사고방식이 남아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그 예입니다. 그는 인격적인 신성이라는 것은 믿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 역시 창조주를 믿은 흔적이 곳곳에서 보입니다. "신은 주사위 게임을 하지 않는다." 이 말도 그 한 예입니다.

자연에 대한 사고방식, 바라보는 관점을 볼까요? 예를 들어 유럽에서는 하느님, 인간, 동물, 식물, 기타 이런 식으로 자연에 인간 중심적으로 위계질서를 나눕니다. '휴머니즘'을 강조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인간을 중심에 둔 사상이지요. 그들이 '평등'을 얘기할 때, 거기에 동물, 식물은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아시아 과학자는 다신교적인 사고방식을 많이 갖고 있는 듯해요. 설사 기독교를 믿는다 해도 그 사고방식이 유럽 사람처럼 체화돼 있지는 않지요. 그게 자연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사람과 자연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요. 윤회를 믿지요. 동물, 식물에도 영혼이 깃들어 있다, 이런 식으로 말이지요. 한국도 그렇지 않나요?

마지막으로 이 주제와 관련해 한 가지만 더 얘기하지요. 각 나라마다 고유한 역사가 있는 탓에 과학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태도에 차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한국을 예로 들면, 유학을 하는 선비를 우대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좀 더 넓게 생각하면, 학자를 우대하는 전통이 있었던 것이지요. 이런 전통이 과학자를 존중하는 분위기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유럽에서는 이학 박사는 존경을 받았지만, 공학 박사는 그다지 존경을 받지 못했어요. 반면 일본에서는 이학 박사, 공학 박사 할 것 없이 사회로부터 존중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도 각 나라가 처한 상황에 따라 과학자를 바라보는 태도가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프레시안 : 한 가지만 더 짚고 넘어가지요. 한국에서는 황우석 씨가 이 말을 인용해서 유명해지긴 했습니다만, 파스퇴르 선생이 했다고 알려진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 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평소 과학자로 살면서 '일본' 과학자라는 걸 깊이 의식하고 살아오셨나요?

아리마 : 글쎄요. 우선 파스퇴르 선생의 말은 이런 의미가 아닐까요. 아까 얘기했듯이 과학은 보편성을 가지지만, 과학자 자신은 누구나 나고 자란 고향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각 과학자가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건 당연할 거예요. "과학자에게 조국이 있다." 이 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이 사실을 새삼 강조하는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프레시안 : 아까 종교 얘기를 잠깐 언급하셨습니다만, 특히 서양에서 이런 경향이 많은 것 같은데, 상당수 과학자, 지식인은 발달한 과학에 의존해 신의 존재를 부정하려고 합니다. 정작 세계 대부분의 사람이 어떤 식의로든 신의 존재를 믿는 상황에서 이런 현상은 흥미롭습니다. 혹시 선생님께서는 종교가 있습니까?

아리마 : 본질적으로 불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에도 흥미가 있습니다. 신의 존재와 관련한 논란은 아주 어려운 질문입니다. 개인의 견해를 말하자면, 나 역시 아인슈타인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인격적인 신의 존재는 부정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신의 흔적에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빅뱅'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과학자는 빅뱅이 신을 만들었다고 하지는 않아요. 자, 그렇다면 도대체 빅뱅의 기원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는 대답을 못하는 실정입니다. 지진, 벼락이 신이 만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지금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과학자들이 과학으로 증명하지 못하는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테고요.
▲아리마 아키토 일본과학재단 이사장. ⓒ사이언스북스

자유로운 연구 분위기는 훌륭한 업적으로 이어져

프레시안 : 자, 이제 화제를 바꿔볼까요. 선생님은 공히 일본을 대표하는 성공한 과학자입니다. 자신의 삶을 회고해볼 때, 과학자로서 정체성을 형성하는 특별한 경험을 한 가장 결정적인 시기는 언제였습니까?

아리마 : 과학자가 되고 싶다, 이런 꿈을 처음 품은 것은 초등학교 때였던 것 같아요. 모터, 라디오를 직접 만들면서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을 했지요. 그렇게 꿈을 키우다 물리학과를 들어가게 됐지요. 그러나 아무래도 본격적인 물리학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것은 학부 4학년 때였습니다.

일본에서는 학부 4학년이 되면 특정 실험실에 배치가 돼 졸업 연구를 하게 됩니다. 내가 학부를 졸업하던 1950년대 초에도 그랬고, 그 전통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일본은 패전 직후였기 때문에, 당시에는 원자핵물리학을 전문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선생님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독학으로 공부해야 했지요.

그때 독학으로 공부하는 과정에서, 서너 살 위의 친구를 포함한, 여러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정기적으로 모여서 새로운 논문을 읽고 아이디어를 교환했지요. 그런 자유로운 토론 결과 원자핵에 자석의 성질이 있다는 것을 밝혀내는 성과로 이어집니다. 그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해서 석사 1학년 때 전 세계 물리학계의 큰 주목을 받았지요.

프레시안 : 이렇게 학문 동료와 자유롭게 토론하는 전통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까?

아리마 : 아직도 있습니다. 원래 이런 전통은 유카와 히데키 그룹에서 시작한 전통입니다.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는 훌륭한 성과를 내는 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 물리학 교과서에도 나오는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업적을 24세에 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 덕이었습니다.

내가 몸담았던 도쿄대학교 물리학과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37살 때, 나는 도쿄대 물리학과 조교수로 있었습니다. 그곳 역시 대단히 자유로운 분위기여서, 일개 강사라도 독립적으로 자기 연구실을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학과는 교수-부교수-조교수-강사, 이런 식의 도제 제도가 확실할 때였는데도 말입니다.

도쿄대학교 물리학과처럼 젊은 연구자의 독립적인 연구를 보장해주면, 그에 상응하는 성과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때 같이 활동하던 젊은 연구자가 2002년에 노벨상을 받은 고시바 마사토시입니다. 물론 나도 그런 분위기 덕분에 나를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게끔 만들어준 자랑할 만한 업적을 그때 이룩할 수 있었지요.

아시아 공동 연구 기관 설립이 절실해

프레시안 : 선생님의 업적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일본은 이미 1950~1960년대에 몇몇 분야에서는 세계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지금도 일본의 과학 수준은 아시아에서 가장 높다고 해도 무리가 아닙니다. 일본은 명실상부한 아시아 과학을 선도하는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한국,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 연구자는 일본이 아닌 미국, 유럽을 찾습니다.

아리마 : 네, 주로 미국으로 가지요. 그런데 그 미국도 항상 유학생을 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194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의 유능한 학생, 연구자는 전부 유럽으로 갔습니다. 당시는 미국뿐만이 아니라 일본, 인도, 중국, 한국의 유능한 연구자도 유럽으로 공부를 하러 갔습니다. 이런 흐름이 바뀐 것은 1950년대 이후입니다.

이젠 유럽 연구자도 미국으로 갑니다. 정치, 경제, 문화, 과학 등 미국이 모든 분야의 중심인 현실에서 아시아 각국의 연구자가 일본이 아닌 미국을 찾는 것을 놓고 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오히려 미국보다 유럽이 여전히 강점을 보이는 부분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유럽에는 전 세계 과학자들이 모여서 공동으로 연구할 수 있는 연구 기관이 많습니다. 스위스에 위치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아시아에도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이렇게 아시아 각 나라의 연구자들이 모여서 공동으로 연구를 할 수 있는 연구 기관입니다. 나는 이런 생각을 1980년대 초 아시아물리학회를 창설하자고 처음 제안했을 때부터 갖고 있었습니다. 1983년 싱가포르에서 아시아물리학회를 처음 열었는데, 이것이 결국 1997년 APCTP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됐지요.

CERN이 독일, 프랑스가 아닌 스위스에 위치했듯이 이런 공동 연구 기관이 아시아 어느 나라에 설치되는지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아시아 어느 나라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공동의 관심사를 가진 아시아 과학자들이 모여서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기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일본에도 그런 데 신경을 쓰는 연구 기관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RIKEN도 국제 공동 연구를 장려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일본 정부가 만든 것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아시아의 여러 나라가 연합해서 그런 대형 연구 기관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아시아 각국 과학자의 교류를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레시안 : 혹시 아시아에서 유럽연합(EU)과 같은 정치 공동체가 형성되는 게, 선생님께서 바라는 그런 과학자 공동체의 교류에도 도움이 될까요?

아리마 : 궁극적으로는 EU와 같은 국가 간 연합이 아시아에서 탄생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각 나라마다 정치, 경제, 문화, 인구가 다른 현실을 염두에 두면 실질적으로 그런 국가 간 연합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정치와 관계없이 과학을 매개로 아시아 각국이 대형 연구 시설을 만들자고 제안합니다.

이공계 기피, 고등교육 강화에서 해법 찾아야

프레시안 : 한국에서는 몇 년 전부터 이공계 기피가 큰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아리마 아키토 일본과학재단 이사장. ⓒ사이언스북스

아리마 :
일본도 이공계 기피 현상이 있습니다. 이 이공계 기피 현상도 잘 따져봐야 합니다. 적어도 초등학교, 중학교 과정에서 이공계 기피 현상은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 과정의 학생들 중에는 여전히 과학자, 공학자의 꿈을 갖고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문제는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직업을 진지하게 고민하면서부터 발생합니다.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만, 똑똑하고 야심 찬 젊은이들이 돈, 힘을 외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는 경영인 대부분이 문과 출신입니다. 일본 경영인의 3분의 2가 대학에서 경영학, 법학을 전공한 것으로 나왔어요.

바로 이런 상황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이공계를 기피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미국, 유럽의 예를 보면 정치인, 경영인 중에서도 이공계 출신이 굉장히 많습니다만, 일본, 한국은 그렇지 않지요. 이처럼 장래에 좋은 대우를 받는 직업이 과학기술자에게 보장되지 않으면 앞으로 젊은 사람이 이공계를 선뜻 선택하기 쉽지 않을 듯합니다.

과학 영재 교육을 아무리 한들 과학기술자에게 밝은 미래가 열려 있다는 보장이 없다면, 젊은이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지요. 그런 점에서 보자면, 한국이나 일본은 큰 문제가 있습니다. 고등 교육에 대한 나라의 투자가 너무 적습니다. 양국 모두 국내총생산(GDP) 대비 0.5퍼센트 수준에 불과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바닥권입니다. 미국, 독일은 공적 자금만 GDP 대비 1퍼센트 수준입니다.

이공계 기피를 해결하는 일차적인 방법은 고등 교육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것입니다. 왜냐고요? 아까도 얘기했듯이 어느 시대에나 큰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냥 과학이 좋아 과학을 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들이 자유롭게 연구하고, 교육하는 공간을 보장해줘야 합니다. 바로 대학이 그런 공간이 되겠지요. 연구비, 교육비를 크게 늘려서 그들의 숨통을 터줘야 합니다.

프레시안 : 말씀하신 대로 여전히 과학이 좋아서 과학을 공부하려는 후배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어떤 분야를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아리마 : 여전히 흥미로운 분야가 아직 많습니다. 얼른 생각나는 것 몇 가지만 열거해볼까요. 빅뱅 직후 우주는 어떤 상태였을까? 우주 전체의 질량은 어디에서 기원한 것일까? 이 두 번째 문제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모든 별의 질량을 다 합해도 우주 전체 질량의 일부분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또 있습니다. 물질의 가장 최소 단위는 무엇인가? 생명이란 과연 무엇인가? 생명의 기원은 무엇인가? 어떻게 기억이라는 게 생기게 되었을까? 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열거하다 보면 끝이 없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모르는 것으로 가득하고, 그만큼 인류가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지요.

프레시안 : 평생을 과학자로서 살아왔습니다. 과학자가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리마 : 거짓말하지 말라. 과학자뿐만 아니라 모든 직업,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아무리 감추고 속이려 해도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과학만이 인류의 밝은 미래 보장할 수 있어

프레시안 :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금 세계는 아주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 에너지 위기, 전쟁, 기아, 빈부 격차 등. 이런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과학이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질문 앞에서도 선뜻 긍정적인 대답을 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아리마 선생은 과학이 이런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고 봅니까?

아리마 : 과학기술을 발전시키지 않으면 인류는 방금 열거한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일례를 들자면 미국 사람 한 명은 중국 사람 여덟 명분의 에너지를 소비합니다. 한국 사람, 일본 사람, 영국 사람은 중국 사람 네 명분의 에너지를 소비합니다. 아무리 선진국이 에너지를 절약한다 해도, 중국, 인도 사람이 한국, 일본 수준으로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는 상황이 조만간 올 것입니다.

전 세계인이 그렇게 나선다면 세계는 극심한 에너지 부족에 시달릴 게 뻔합니다. 당연히 석유, 석탄 같은 천연자원은 훨씬 더 빨리 고갈되겠지요.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 가스 배출도 갑자기 증가할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과학기술만이 유일한 정답입니다.

우선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방법을 개발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 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기술을 개발해야 할 테고,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에너지원을 개발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과정에서 태양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프레시안 : 선생님은 지구의 미래를 아주 낙관하시는군요?

아리마 : 그렇습니다. 방금 얘기했던 그런 노력이 쌓이면 지구 온난화, 에너지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구의 미래는 밝습니다.

(이 기사는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에서 발행하는 웹진 <크로스로드>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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