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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년 월드컵 '저먼 더비'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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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년 월드컵 '저먼 더비'의 추억

[프레시안 스포츠] 남북 축구 대결, 6.15공동선언은 어디에?

최근 내달 평양에서 펼쳐질 예정인 축구 남북대결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동아시아 대회에서 혜성과 같이 등장한 북한 정대세의 인기에다 북한이 애국가 연주와 태극기 게양에 반대하면서 더욱 그렇게 돼 가고 있는 국면이다.

제3국이 아닌 평양에서 경기를 펼쳐야 이 경기의 의미가 더해질 수 있지만 현재로는 북한이 FIFA(국제축구연맹)의 결정을 받아 들이기는 쉽지 않은 상황. 때문에 김일성 경기장에서의 남북 축구 대결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개최지가 어디가 됐건 '코리언 더비'는 1974년 월드컵에서 펼쳐진 동서독 대결 이래 가장 축구 외적인 요소가 뉴스의 초점이 될 수 있는 경기다. 당시 동서독 축구 대결은 여러 면에서 얘깃거리가 많았다. 동서독의 상황과 지금 남북한의 상황이 다소 다르긴 하지만 분명 74년의 '저먼 더비'는 앞으로 펼쳐질 '코리언 더비'의 영원한 닮은 꼴이다.

72년 서독 뮌헨에서 열렸던 올림픽에서 동독은 20개의 금메달을 따내며 13개의 금메달을 획득한 서독을 제쳤다. 동독은 이 대회 개막식에서 최초로 국기와 국가를 앞세우며 등장했다. 주적인 서독을 적지에서 제압했다는 환희에 동독은 취해 있었다. 동방정책으로 유명한 서독의 빌리 브란트 수상은 "동독 사람이 금메달을 따면 우리도 승리하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동족"이라고 했지만 동독은 이 대회를 통해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데에 주력했다.

2년 뒤 동독은 서독과 월드컵 본선의 조별예선에서 맞닥뜨렸다. 이미 동독과 서독은 다음 라운드 진출이 확정된 상태였다. 하지만 두 팀의 경기는 김 빠진 축구 경기가 아니었다. 신경을 잔뜩 곤두세웠던 두 팀 선수들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특히 서독은 너무 조심스럽게 경기를 펼쳤다. 동독에서 코치생활을 하다 서독으로 건너간 헬무트 쇤 감독이 너무 이 경기의 승리에 집착한 면도 서독 선수들을 경직시키게 만들었다. 베켄바워는 코너킥을 준비하던 한 동독 선수에게 "내가 너 셔츠를 잡아당길까봐 걱정돼"라고 말하자 그 동독 선수는 "난 네가 그렇게 하지 못할까봐 걱정인데"라고 응수했다. 이처럼 동독 선수들이 심리적인 면에서 서독을 압도했다.

동독 선수에게 한 방 먹은 베켄바워는 동료들에게 고함을 치며 독려했다. 서독은 경기 전까지 승리를 위해 똘똘 뭉쳐 있는 것 같았지만 막상 경기에 들어 와서는 자신을 위한 플레이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동독의 첫 골이자 결승골이 터졌다. 함부르크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공산당원 가운데 선발된 약 2000명의 동독팬만이 동독의 국기를 흔들고 있었다. 국제적 관심을 모았던 '저먼 더비'는 막을 내렸다.

내심 축구만큼은 동독에 훨씬 앞서 있다고 자부하던 서독 축구계는 이날 패배로 충격에 빠졌다. 반면 동독 축구계는 신바람이 났다. 이미 올림픽에서 서독을 압도했던 동독은 축구에서마저 서독을 이기자 "스포츠로 우리가 독일을 통일했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74년 월드컵에서 서독은 우승을 차지했다. 훗날 서독의 주장 베켄바워가 술회했듯이 동독 전의 패배는 서독에 보약이 됐다. 하지만 서독 축구는 동독 전의 패배로 생긴 오점을 영원히 지울 수 없었다. 서독과의 A매치에서 승률 100%를 유지하려는 동독 축구협회가 그 뒤 서독과의 경기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독이 된 뒤 밝혀진 얘기지만 '저먼 더비'가 끝난 뒤 서독 선수들은 동독 선수들과 유니폼을 바꿔 입지 못했다. 공산당원들로 구성된 동독팬들의 눈을 피해 2명의 동독 선수들만 라커룸 근처에서 유니폼을 교환하는 해프닝을 연출해야 했다. 두 명의 용감한 동독 선수들을 제외하면 이념의 대결이 '축구의 아름다운 전통'을 무참히 짓밟았던 셈이다.

월드컵 예선 남북대결에서 양국 국기 대신 한반도기를 사용하자는 북한의 제안은 기본적으로 FIFA 규정에 어긋난다. 북한은 한반도기를 흔드는 게 6.15공동선언에 부합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6.15공동선언에는 '우리민족끼리'도 있지만 그 밑바닥에 깔린 기본 정신은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는 것이다. 1974년 '저먼 더비'에서도 함부르크 경기장에는 동독 국기가 나부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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