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지만 이제 떠난다"며 이용득 전 한국노총 위원장이 남긴 마지막 말이다.
28일 서울 용산구 용산구민회관에서 열린 한국노총 이·취임식 장에서 이용득 전 위원장은 "한국노총 조합원으로, 이 땅의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 살아 왔던 내 삶에 대한 긍지와 보람은 결코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얼핏 들으면 4년 가까운 시간 동안 앉아 있었던 한국노총 위원장 자리를 떠나는 사람의 소회처럼 들렸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정계 입문을 둘러싼 각종 비난을 의식한 '변명'이었다.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여의도 입성을 위한 채비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전 위원장은 이날 이임사에서 "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남과 동시에 28년을 치열하게 살아 왔던 현장의 운동에서도 한 발쯤 비켜 서 있게 될 것"이라며 정계 입문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관련 기사 : 이용득의 변신은 무죄?)
신임 장석춘 위원장 "우리가 경제살리기에 앞장 선다"…이명박 '코드 맞추기' 부심
이 전 위원장은 이날 이임사에서 "지금 이 시점에도 과거와 같은 상황이 연출된다면 또 다시 분연히 일어서서 감옥 생활과 해고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그는 출범 전부터 노골적으로 드러난 이명박 정부의 노동 배제 전략은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새 정부의 실사구시 정신은 다양한 정책과 사업을 통해 그 형태를 드러낼 것"이라며 기대감을 피력했다.
한나라당과 새 대통령에 대한 '믿음'은 이날 새로 취임한 장석춘 한국노총 신임 위원장도 마찬가지였다.
장석춘 위원장은 "한국노총은 이명박 정부와 협력과 비판을 병행하는 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무게는 "파트너로서의 협력적 관계"에 실려 있었다.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은 제1의 국민적 과제가 됐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자주 하는 주장을 그대로 옮기기도 했다.
장 위원장은 "한국노총은 사회의 책임 있는 경제주체로서 경제살리기에 앞장 서겠다"고 재차 다짐했다. 친기업 행보를 이어가며 노동계에게는 '경제 살리기를 위한 협조'만을 요구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에 '코드 맞추기'에 부심하는 모습이었다.
강재섭 "밖에서 '한국노총이 돌았나' 하더라도 함께 체온을 맞추자"
전임과 신임 위원장의 이 같은 노력에 한나라당도 적극 화답했다.
이날 이취임식에 참석한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한국노총이) 우리와 정책 연대를 했다 하니 사람들이 '저 분들이 살짝 돌았나'고 하지만 우리는 함께 체온을 맞춰 '경제 프랜들리'를 하자"고 호소했다. 강 대표는 "기업 프랜들리와 노조 프랜들리를 다 해야 경제 프랜들 리가 된다고 믿는다"며 "그 동안 한국노총과 호흡을 같이 하는 연습을 많이 해 왔다"고 자신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강 대표는 최근 한국노총의 최대 관심사인 총선 공천과 관련해서도 '선물'을 잊지 않았다. 강 대표는 "정책 연대를 제대로 하기 위해 한국노총에서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이 국회 현장에도 제법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참석한 대의원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강 대표는 이어 "한국노총이 추천하는 분을 배달 사고 없이 전해드려 잘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관련 기사 : '李 짝사랑' 한국노총, '무조건' 한나라 지지)
"한국노총 대의원대회인지 한나라당 전당대회인지…"
현재 한국노총 출신 가운데 한나라당 공천을 기대하는 사람은 모두 5명이다. 당초 11명이 공천을 신청했지만 일부가 이미 탈락하고 최종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김성태 한국노총 부위원장, 이용범 한국노총 전 사무처장, 이화수 한국노총 경기본부장 등이다.
최근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만을 지지하기로 결정한 바 있는 한국노총은 이날 이취임식장에 이들 예비 후보들을 무대 위로 올려 일일이 인사시키기도 했다.
이처럼 이날 이취임식의 화두는 오직 '이명박과 한나라당'이었다. 무대 오른편에는 '대통령 이명박'이라는 글자가 선명히 적힌 큼지막한 화환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를 두고 한국노총 내부 관계자조차 "한국노총 대의원대회가 아니라 한나라당 전당대회인 줄 알았다"는 자조 섞인 농담을 하기도 했다. 노동계 안팎에서는 새 정부 출범과 18대 국회와 함께 문을 여는 새 한국노총 집행부가 "본격적으로 '우향우'를 시작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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