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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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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혈통?

석원정의 '우리 안의 아시아' <51> "이주노동자와 한국인의 생김새, 의외로 닮았다"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이주노동자 상담도 잘 하려면 경륜이 필요하다. 경륜 있는 이주노동자 상담활동가와 초보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차이를 대려면 어디 한두 가지이겠는가.
  
  그런데 이주노동자 상담활동가들이라면 누구나 스스로 인식하는 차이가 하나 있다.
  
  처음에 상담을 시작하면 이주노동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허둥지둥하기 마련이다. 알고 있던 것도 다 잊어먹고 말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같은 나라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갈 텐데, 여러 나라 사람들을 보면서도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들도 심심찮게 있다.
  
  만약 일하는 단체에 다국적의 사람들이 찾아온다면 언어 구별하는 것도 저절로 되지 않는다. 어차피 영어 외에는 다 외국어이지 않은가.
  
  그러다가 두어 달 정도 지나면 조금씩 사람들의 눈코입과 골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언어도 귀에 들어오기 시작해서 '어, 저건 어느 나라 말이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기 시작한다. 그때쯤이면 국가별로 사람들도 조금씩 구별이 가기 시작한다. 이럴 즈음이면 상담업무에 약간씩 흥미를 갖게 된다. 사명감도 새록새록해지고.
  
  그렇게 해서 1년 정도 지나면. 처음 보는 외국인이라 해도 척! 보면 '어느 나라 사람이겠구나' 하는 것이 머릿속에 착 들어온다.
  
  그래서 '어느 나라 사람이죠?'라고 아는 척을 해주면 그 외국인은 아주 반가와하면서 '어떻게 알았어요?'라고 반색하고 단번에 친근감이 확 조성된다.
  
  자주 만나는 국가의 사람들이라면 한두 마디 그 나라 말이 선명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때쯤이면 웬만큼 쉬운 케이스 몇 개 정도는 성공적으로 해결한 경험도 갖기 마련이다. 그러면 제법 그럴싸한 상담활동가가 된 듯한 자부심마저 생기기도 한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이다.
  
  상담을 한지 1년이 좀 지난 어느 일요일. 그 즈음에 우리 단체에는 파키스탄과 중동지역 이주노동자들이 자주 찾아왔었다. 가끔 중국인들이 왔었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문을 열고 두 사람의 남자와 뒤이어 세 사람의 남자가 들어왔다.
  
  앞서 들어온 남자들은 척! 보아도 파키스탄인들이었다. 평소처럼 '파키스탄인이죠?'라고 친한 척하면서 반겨주었다. 그런데 뒤이어 들어온 세 사람의 남자는 국적이 가늠이 되지 않았다.
  
  중국인 같은데, 아닌 듯도 했다. 그래서 '어느 나라에서 오셨어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맨 앞에 서 있는 남자 왈, '한국에서 왔는데요.'
  
  그 세 남자는 한국인이었다. 우리 단체에서 딴 사람을 만나기로 약속해서 찾아온 것이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종종 한국인들을 외국인으로 착각했다. 몽골인들이 자주 우리 단체를 찾으면서부터 그런 증상이 더욱 심해졌다. 착각하는 외국인도 다양해졌다.
  
  심지어는 여러 상담단체들이 함께 진행하는 교육에서 강의를 하면서 베트남인을 위해 통역해주고 있는 한국인 자원활동가에게 '베트남인이시죠?'라고 해서 좌중을 웃긴 적도 있었다.
  
  나의 그런 착각을 너그럽게 이해해주는 한국인들도 있었지만, 때로는 그걸 불쾌하게 여기는 한국인들도 있었다. 그러면 정말 미안해진다. 그렇게 여러 번의 실수를 저지르고 나서 한 가지 규칙을 깨달았다.
  
  특정 국가의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면 한국인들 중 누군가를 그 나라 사람으로 착각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이란인들의 상담을 여러 차례 하다 보면, 길가다가 한국인을 이란인으로 착각하는 식이다. 그런데 좀더 알고 보니 그게 단지 착각만은 아니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은 다른 상담단체의 스태프와 얘기를 하다가 '이란인 같다'고 말했더니, 그 스태프 왈 '전에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갔었는데, 이란 사람이 나한테 길을 묻더라'고. 자신은 이란인과 비슷한 데가 있다는 것이다.
  
  그 스태프의 말에 나는 박수를 치면서 '맞아 맞아'를 연발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건 일부 한국인들의 핏속에 이란인들의 피와 비슷한 뭔가가 섞여 있다는 것이다, 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보니 나의 착각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문화인류학이나 생물학적인 관점에서는 어떻게 보는지 모르겠지만, 경험으로 보면, 분명 한국인들 중에는 외국인과 비슷한 골격과 이목구비를 가진 사람들이 정말 많다.
  
  나도 그 범주에서 예외는 아닌데, 중국에서 살다온 어떤 지인은 나를 보고 '상해에 가면 상해 사람들이 길을 물어볼 거다'라고 장담했다. 그러면 나의 먼 조상 누군가에게 중국 상해인의 피가 섞여 있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여튼, 이렇게 한국인을 보면서 외국인으로 착각하는 것은 꽤 오랫동안 유지된다. 그러다가 한 5년 정도 지나면, 이번에는 외국인을 보면 '한국인과 비슷해보이지만 어느 나라 사람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고, 반대로 '어느 나라 사람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한국인'이라는 생각도 들게 된다. 그 정도 되면 웬만하면 착각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인종에 관한 전문가는 아니니 베테랑 상담활동가라고 자부하는 요즘도 한국인들을 보면서 가끔씩 외국인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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