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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섬', 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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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섬', 칠레

[손문상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ㆍ<8>] 떼무꼬, 꼬이뿌이

떼무꼬(Temuco)시의 풍경은 한국의 그것과도 비슷하다. 전체적으로 칠레의 자연 풍광과 사람 사는 곳의 모습은 한국과도 많이 닮아있는데 우리는 놀랐다.

발디비아에서 버스로 약 세시간 반 거리의 떼무꼬는 활기찬 도시였다. 사람들은 목재 관련 산업, 그리고 상업에 종사한다. 떼무꼬 시내 중심가에는 복대기는 도떼기 시장이 넓게 형성되어 있다.

도시의 우중충한 분위기와 걸맞지 않게 우리는 철길 옆에 있는 까사 블랑까(Casa Blanca, '하얀 집'이라는 뜻)에 숙소를 정했다.

숙박료는 뿌에르또 몬뜨에 비하면 훨씬 쌌고, 또 훨씬 쾌적했다. 친구도 만났고, 정원이 딸린 예쁜 호스텔에 묵으며 환대를 받았던 발디비아와는 반대로 모든 것이 또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는데, 떼무꼬는, 이를테면 가장 칠레적인 도시일 거라 생각했다. 뿌에르또 몬뜨와 발디비아는 어쩌면 칠레답지 않은 곳일 수도 있고.

낯선 곳에 도착하고, 새로 사람들을 만나고, 물과 음식에 적응하는 과정은 언제나 두렵다. 여행의 피로란 대개 그런 데서 오는 것이리라.
▲ 바쁜 떼무꼬(Temuco)의 상인들, 노동자들 틈바구니에서 솜사탕을 파는 아저씨가 무료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다. 떼무꼬 중심부의 아르마스 아니발 삔또 광장(Plaza de Armas Anibal Pinto)
ⓒ손문상

아옌데, 네루다, 빌토르 하라의 나라

우린 먼저 엘 디아리오 아우스뜨랄(El Diario Austral) 신문사를 방문했다. 하지만 이곳 신문사 역시 에르네스또에 관한 다른 새로운 기록 따위는 없다고 설명해 주었다. 에르네스또는 칠레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또 많은 경험들을 했지만 칠레인들은 그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여행길에 만난 누군가의 말대로 칠레는 '남미의 섬'이라 하지 않았던가? 체 게바라를 조명하는 열풍이 전 남미에 강하게 불고 있는 요즘이지만, 칠레에서만큼은 다르다.

나는 떼무꼬를 벗어날 즈음부터 체 게바라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다녔는데, 이 방식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티셔츠를 보고 체 게바라에 관해 내게 말을 거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여정이 증거해줄 것이지만, 우리는 체 게바라에 대한 칠레인들의 다양한 생각을 접할 수 있었다.

칠레에서만큼은 체 게바라는 영웅이 아니다. 오히려, 살바도르 아옌데나(Salvador Allende),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그리고 빅토르 하라(Victor Jara) 등의 사람들이 이들의 뇌리에 더 깊이 박혀 있다. 당연하게도.
▲ 칠레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도시 떼무꼬(Temuco). 목재 산업이 발달한 도시며, 철도의 도시로도 불리운다. 아버지가 철도노동자로 일했던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칠레 시인,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내며 시성을 키운 곳이다. ⓒ손문상

원주민에게서 전통을, 정복자에게서 자부심을

떼무꼬는 마뿌체(Mapuche) 원주민들이 많이 사는 도시다. 마뿌체 족과 관련된 여러 관광 상품들을 파는 시장인 메르까도 무니시빨(Mercado Municipal)이 크게 형성되어 있다.

여담이지만 언제나 시청이나 시청 관련 기관들을 사람들에게 물을 때마다 발음에 신경쓰게 되는데, 아주 조심해야 한다. 무니시빨... 시빨... 특히 억센 된소리와 뒤에서 두 번째 있는 억양덕에 우리는 멋들어지게 한국어로 욕을 하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물론 아무도 신경쓰지 않지만 간혹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기도 한다. 칠레 사람들은 마뿌체 원주민들의 문화를 상품으로 파는 등, 자신의 뿌리로 여기고 있으면서도 원주민들에게 관대하지 않다.

우리가 라틴아메리카에 도착하기 전이었던 지난 1월 3일에는 마띠아스(Matias)라는 마뿌체 청년이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했던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마띠아스는 이곳 떼무꼬에서 대학을 다니던 23살의 학생이었다.

이러한 극단적인 일들 말고도 마뿌체 족에 대한 칠레인들의 인식이 곱지 않다고 하니, 무서운 일이다. 어느 도시엘 가든 박물관에는 마뿌체 원주민과 백인 정복자가 동시에 전시되어 있다. 피부 색에 개의치 않는 듯 보이는 일상 생활 속에서도 암암리에 원주민들은 소외되고 있다.

이는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 벌어지는 인종갈등과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아니라 원주민과 정복자의 관계다.

아마도 칠레인들(남미 모든 국가가 안고 있는 복잡한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자신들의 빈약한 뿌리를 채워주는 것이 '전통'을 가장한 마뿌체 문화이고,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으로 포장한 근대 문화의 자부심을 채워주는 것은 정복자의 문화일 것이다. 이질적 심성의 불안전한 공존.
▲ 떼무꼬는 전통적으로 마뿌체족 인구가 많은 도시다. 전통은 원주민 문화에서 찾고, 문화적 자부심은 정복자의 코드에 맞추어져 있는 아이러니는 이 동상에도 담겨 있는 듯 하다. 떼무꼬 중심부의 아르마스 아니발 삔또 광장(Plaza de Armas Anibal Pinto) ⓒ손문상

먼지 피어오르는 '아르마스 광장'에서 만난 사람들

우리는 떼무꼬의 중심가인 '아르마스 광장'에 앉아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풍경을 감상했다. 하얀 피부의 솜사탕 파는 아저씨는 우리가 신기한지 자꾸 눈길을 보냈다.

광장에는 곳곳에 키스하는 젊은이들이 있었고, 유모차를 끌고 담배를 피우는 아주머니와 브라질 전통 무예인 까뽀에라를 연습하는 청년들이 있었다.

'디어사이드(Dicide)'니, 아이언 매이든(Iron Maden)이니 하는 서구 록 밴드들의 요란하고 고풍스러운 티셔츠를 입고 기타를 메고 다니는 친구들도 눈에 많이 띈다.
▲ 빠르게 성장하는 떼무꼬라도 뜨거운 태양이 걸려 있는 한낮 도심의 풍경은 여유롭다. 떼무꼬 시내 일상풍경. ⓒ손문상

아주머니와 꼬마 아이가 구걸하고 지나간다. 꼬마 아이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우리에게 자꾸 말을 건다. 아주머니가 큼지막한 손으로 '그러지 말라'며 꼬마 아이의 머리를 '퍽'하고 친다. 그래도 아이는 웃는다.

즐기는 사람들과 노동하는 사람들, 세련된 신사들과 부랑자들, 억세게 보이는 원주민들과 두리번 거리는 관광객들이 도로 확장 공사를 위해 뜯어놓아 맨살을 드러내고 있는 땅 위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먼지들 사이에서 유영한다.

거대 자본이 장악한 철도

떼무꼬는 또한 철도의 도시다. 우리는 이후 일정인 로스 앙켈레스(Los Angeles)에서 만났던 친구에게 왜 이렇게 긴 나라에서 철도의 이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는지에 관해 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덩치 큰 석유회사나 버스회사가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칠레 역시 고속철을 들여올 계획이지만, 의회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고 했다. 칠레에서 가장 큰 버스 회사 중 하나로 꼽히는 뚜르(Tur)나 뿔만(Pullman)의 최고급 버스들의 내부 시설과 서비스는 비행기의 그것을 방불케 할 정도인데, 이 나라 운송 시장의 대부분은 그런 버스회사들이 차지하고 있다.

싼 기름값이 거기에 한몫 하고 있기도 하다.(아르헨띠나의 휘발유 가격은 약 2.5뻬소, 즉 우리 돈으로 700원이 채 안 되고, 칠레의 휘발유 가격은 조금 더 비싸서 약 550뻬소, 즉 우리 돈으로 1100원이 조금 넘는 정도다.)

이런 복잡한 상황 와중에 철도의 도시라고 자부하는 떼무꼬의 철도는, 거의 박물관 수준이다.

무임승차 막기 위해 철창이 달린 열차

거기에 떼무꼬의 철도 노동자를 아버지로 두었던 네루다의 어린 시절 추억을 살짝 버무리면 '파블로 네루다 철도박물관'이라는 어정쩡하고 기이한 관광상품이 또 탄생한다.

우리는 다음 날 이 박물관을 찾기로 했다. 도시 외곽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데, '1500뻬소 이상 부르면 택시 타지 말라'고 충고해주었던 한 친절한 분의 도움을 받고 박물관에 도착했다.
▲ 떼무꼬는 아버지가 철도 노동자로 일했던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칠레 시인,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내며 시성을 키운 곳이다. 파블로 네루다 국립 철도 박물관(Museo Nacional Ferroviario Pablo Neruda)에 전시되어 있는 오래된 열차. ⓒ손문상

네루다의 시가 새겨진 작은 비석과 입구에 있던 건물에 커다랗게 박힌 네루다 사진, 그리고 입장하면서 봤던 7분짜리 비디오 외에 네루다의 네자도 찾을 수 없었지만, 비디오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시작은 이런 나래이션으로 들어간다. "누군가 내게 시가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수 없지만, 시에게 내가 누구나고 묻는다면 시는 대답해 줄 것이다."

그리고 철도 노동자를 묘사한 비장하고 신비로운 느낌의 시 구절들이 이어진다.

비디오 감상을 마치고 나와서 본 철도 박물관은 아담했다. 원형 건물의 가장자리에 철도가 중앙을 보고 빙 둘러 서 있고, 가운데에는 360도 돌아가게 만든 플랫폼이 있었다. 필요한 열차를 하나씩 꺼내 쓸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그 중에 노동자들을 실고 다녔던 기차가 눈에 띄었는데, 우리는 이 기차를 '죄수용'으로 오해했었으나, 박물관 직원은 창문에 달린 '철창'은 무임승차를 막는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 파블로 네루다 국립 철도 박물관(Museo Nacional Ferroviario Pablo Neruda)에 전시되어 있던 열차. 철도 도시 떼무꼬에서 이 열차는 노동자들을 실어 나르는 일을 했다. 철창은 돈을 지불하지 않는 사람들이 기차를 얻어타는 것을 방지하고, 도둑을 퇴치하는 용도라고 한다. ⓒ손문상

꼴리뿔리? 꼬이뿌이!

우리는 떼무꼬를 출발해서 1시간 반 정도 거리의 다음 목적지인 꼬이뿌이(Colli Pulli)로 향했다. 발음은 참 어렵다. 영어식 '빠다' 발음에 익숙해 있는 우리는 열심히 '꼴리뿔리'라고 설명했지만 아무도 알아듣는 이가 없었다.

이 곳에는 '칠레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높다고 생각하는' 커다란 철교가 있다. 에르네스또와 알베르또의 '포데로사'는 이 철교 밑을 지나다가 숨을 거둔다.
▲ 게바라는 이 철길을 두고 '칠레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생각하는 철교'라 표현했다. 떼무꼬와 로스 앙켈레스(Los Angeles) 사이에 위치한 작은 시골 마을 꼬이뿌이(Colli Pulli)에 위치한 이 철교 아래서 포데로사는 생을 마감한다. ⓒ손문상

꼬이뿌이는 관광지도 뭣도 아니다. 그냥, 예를들면, 전북 고창군 무장면 정도를 옮겨다 놓은 듯한 분위기의 작은 시골마을이다.

에르네스또는 헐떡이는 포데로사를 품고 이 마을에서 묵었다. 터미널은 정말 한산했고, 매표창구 직원, 그리고 작은 매점 아주머니 두 분이 쓸쓸히 지키고 있었다.

화장실은? 역시나, 매점 아주머니 한 분이 키를 들고 안내해 준다. 동전을 세보니 140뻬소, 내가 1000 뻬소짜리 지폐를 꺼내자 웃으면서 무려 10뻬소나(!) 깎아주었다.

젊음은 위험을 동경한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노란색 철교를 찾았다. 나중에 로스 앙켈레스에 가서 안 사실이었지만, 이 철교는 에펠탑을 만든 그 에펠이 설계한 것이라 한다.

왠지 우리가 봤던 풍경이 멋져보이기 시작하는, 이 얄팍한 문화 수준, 간사한 안목. 여하튼 우린 내친김에 철교 위에 올라 보았다.

담력을 시험하러 오는 젊은이들이 연인에게 수컷의 멋진 '뻘짓'을 보이며 즐거워한다. 여자들이 기꺼이 비명을 질러주는 센스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이다.

젊은이는 일부러 육지에서 더 멀리 떨어져 본다. 발 아래는 아찔한 낭떠러지다. 튼튼해 보이는 철봉을 잡고 공중에 매달리는 무모한 짓도 서슴지 않는다.
▲ 사랑은 위태로움도 확인하며 가는 것이다. 철교 위의 연인. ⓒ손문상

어른들은 언제나 젊은이들의 위험한 행동에 우려를 갖는다. 하지만 물가에 나가지 말라는 어른들의 말을 뿌리치고 젊은이들은 언제나 위태한 곡예를 공연한다.

내 생명은 내 것이고, 내 안전은 내가 더 잘 안다고 시위하는 듯이. 하지만 어른들은 언제 젊은이들이 스스로 담력을 시험하게 내버려두었는가? 사실 젊은이들은 언제나 잘 하고 있다.

젊은 에르네스또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죽은 포데로사를 끌고 가며, 이 철교를 쳐다보았을 것이다. 에르네스또에게 여행이 새로운 단계를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묵묵한 표지처럼 노랗고 딱딱한 철교가 서 있다. 기차가 지나간다.

이번에는 한 가족이 철교를 보러 왔다. 난간에 올라서려던 어린 아이를 어머니가 뜯어 말리며 엉덩이를 때린다. 아이는 끝내 울음을 터뜨린다.
▲ 철교 밑은 약 150미터 정도 깊이의 계곡이다. 하지만 그 위를 능숙하게 걷고 있는 이 사람은 이 지역 주민이라 했다. ⓒ손문상

▲ 이곳 젊은이들은 모두 멋쟁이다. 평범한 듯 하지만 비범한 패션을 자랑하는 젊은이. ⓒ손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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